키워드 동남아 - 30개의 주제로 읽는 동남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
강희정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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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동남아 여행지는 말레이시아다.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동남아시아에서도 꽤 먼 편에 속한다. 일본은 고사하고 제주공항에 착륙할 즈음에 멀미가 시작될 정도로 멀미대왕인 나는 쿠알라룸프루에 도착할 때 이미 떡실신 상태였다. '바나나 머니'로 시작되는 책의 첫장부터 등장하는 말레이 반도 덕분에 추억팔이로 시작하는 책읽기다. 


여행으로 얘기를 꺼냈지만, 이 책은 여행서가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에 대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읽다보면 재미있는 강연을 듣는 것처럼 어렵지 않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중학교 1학년 때 백과사전 전집을 소설처럼 읽은 시기가 있었는데, 그 당시 읽었던 내용보다 훨씬 재미있다.  








 
17세기 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자바섬에 심은 커피, 19세기 말 영국이 말레이반도에 심은 고무와 팜오일은 제국주의자가 동남아에 옮겨 심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고무와 팜오일의 경우 21세기인 지금도 전 세계 생산량 1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2위라는 부분에서 문득 아보카도가 생각났다. 과잉 생산과 환경 문제가 맞물려 이슈가 되기도 했던 이 열매나무 또한 신자유주의가 낳은 경제 식민의 다른 형태의 흔적이 아닐까싶다. 


유럽인들이 동남아시아에서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19세기에서 20세기 중국계, 인도계 노동자들을 동남아시아로 대거 유입시켰던 역사는 러시아가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대규모 강제 이주시킨 고려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우리 역사에 오구라 콜렉션이 있듯,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 역시 문화유산 약탈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강제 이주, 인플레이션, 전염병, 분열과 차별, 문화유산 약탈, 자원 갈취 등 제국주의가 남긴 흔적은 아직까지도 깊게 남아 있다. 그들의 명분이 늘 문명화였지만, 유럽 국가들이 동남아시아를 식민화하기 이전에 이미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수준이 그리 낮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양한 경로로 밝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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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자연 환경에 따른 농경 및 특산물 재배와 신대륙으로의 전파, 그에 따른 해상 무역과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 확산으로 인한 폐해 등 동남아시아 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한다. 각국의 특산물 혹은 주요 식자재가 갖는 의미와 음식 문화에서 알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과 문화적 혼종성, 그리고 각 나라의 사회적 환경에 따른 식생활까지, 거기다 전통 문화와 예술, 축제와 종교, 관광산업, 대중문화 등 비슷한듯 하지만 저마다 다른 문화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싱가포르의 식생활 문화, 아주 마음에 든다.) 


3장에서는 근현대 정치사에 대해 서술한다. 미얀마와 타이에서 독재자에 맞서 민주화를 위한 저항에 앞장서는 청년들, 작은 국가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똑똑한 다자외교를 통해 소국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국제사회에서 허울뿐인 지위보다는 실리를 더 추구하는 강소국 싱가포르, '독립적인 행동 외교' 원칙을 고수하며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방식을 채택하는 인도네시아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구에 종속된 역사와 정치가 아닌 현재 그들의 정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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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책의 후반부에 위치한 싱가포르의 정치와 외교정책, 그리고 효율과 실용을 중시하며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정부 조직 체계였다. 국가 전반에 흐르는 유교적 영향 때문에 연장자 우선, 서열과 권위의 문화가 적지 않음에도 실용 문화와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했던 바대로 우리나라가 세계 순위에 집착하며 몸뚱아리 부풀리기에 급급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사실 인도 아대륙만 들여다보기에도 상당히 복잡한 문화, 종교, 정치가 얽혀 있는데, 하물며 동남아시아에 관련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학구적으로 깊게 파고들겠다는 목적이 아니라면 이 책은 충분히 앎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고 내가 관심있는 부분을 먼저 선택해서 읽어도 무방하다. 적당하게 가볍고, 적당하게 무겁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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