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처 마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려 줘, 살려 달라고!" 


해초 한 쪼가리 보이지 않는 바닷물속에서 구명대를 지지삼아 부유하며 망망대해에 홀로 조난된 남자. 살기위해 배로 보이는 물체를 향해 헤엄치고 미친듯이 소리 지르며 발버둥치지만 돌아오는 건 그 자신의 헉헉대는 호흡과 물소리가 전부다. 머릿속에서 하나둘 떠올려지는 기억들. 자신이 살아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소설은 바다 한가운데서 조난당한 크리스토퍼 마틴이 조여오는 죽음의 공포에 대면한 현재와 그와중에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을 오가며 서술한다. 


그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로지 살아남는 데에 머리 회전이 돌아가고, 몸이 움직인다. 암석 위에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삿갓조개'처럼 몸을 웅크려야 하고, 물 한모금을 마시기 위해서는 바다표범처럼 몸의 앞쪽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내려놓은 채 가만히 있어야 한다. 생존에 초점이 맞춰진 모든 행위 앞에서 마틴은 스스로에게 지성인임을 꾸준히 각인시킨다. 그가 살겠다고 별짓을 다 하면서도 집착하는 한 가지는 '지성'이다.  


ㅡ 


"난 안 죽을 거야! 안 죽을 거라고!"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생각해"
"나는 지성적이다."
"쉼터, 쉼터를 마련해야 해."
"너 포기하면 안 돼."
"해야만 해. 해아만."
"정신 차리자. 교육과 지성으로."
"난 오늘 구조될 거야."
"나는 예전의 나 그대로다."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롭다고!" 


마틴이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지는 말들이다. 
머릿속 한 켠에서는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라고, 삶을 놓아주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삶의 끈을 놓지 못한다. 처절한 외로움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로 인해 마틴은 스스로를 광기로 몰아간다.  


그러던 중, 재킷 안쪽에서 다 젖은 소책자를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사진과 신분증을 보면서 마치 그동안 몰랐던 것인 양 자신이 영국 해군 대위 크리스토퍼 해들리 마틴이라는 사실을 각성한다. 그는 자신이 지성인임을 또다시 되뇌이며 바다를 향해 이기고 말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를 달리한다. 바닷물에 절어서 벗어던진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고, 거추장스러워 벗어버린 방수 장화가 아쉬워진다. 다 젖어버린 신분증이 다시 문명 세계로 향한 티켓인 것처럼.  



마틴은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암석에서부터 해군, 극단, 대학, 학창 시절, 지하실에 갇혔던 어린 시절까지 되돌아 간다. 그의 뇌리에서 친숙하면서도 떠나지 않았던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아직 미치지 않고 제정신인지 수시로 확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장 처한 상황에서 광기보다 나쁜 것은 제정신이라고 말하는 그는, 종단에 이르서 무엇이 더 나은 건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마틴의 절규처럼 우리를 으스러뜨리는 건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마틴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던 까닭이 그가 조난된 이유와 연관이 있을까? 마치 정신착란증세처럼 보이는 마틴의 모습은 조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의식과 무의식, 환시와 환청을 오가는 마틴에게 누군가가 묻는 한 마디.  


"이제 할 만큼 했나, 크리스토퍼?"
마틴은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다고 대답한다. 신도 천국도 인간이 지어낸 창조물이고, 지금 처한 현실을 이끌어낸 것 역시 인간 본인이라는 것. 즉 소설은 마틴의 상황을 극단적 설정했을 뿐 대부분의 인간은 소통의 부재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이를 지성인이라는 허위로 감추고 있음을 얘기한다.  



소설 속에서 마틴은 혼잣말의 대가다. 이 증상이 미쳐서인지, 미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인지, 그것도 아니면 생존하고 말겠다는 굳은 결의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마틴이 생존을 포기하지 말라고 스스르를 끊임없이 다그친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 작가 자신도 그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마틴,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아직까지는). 꽤 오래 전에 이 말을 했을 때 한 선배로부터 "넌, 인생이 살만한가보다"라는 조소 섞인 말을 들어야했다. 사람마다 '살만한' 인생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그것보다 죽는 게 더 무서웠으니까.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틴의 공포를 이해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파리 대왕>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비행기와 배만 다를 뿐 조난자라는 설정부터 인간이 갖는 야만성과 악, 그리고 살고자하는 갈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문명이라는 허위가 그렇다. 차이라면 개인과 집단에 있겠다. 아직 <파리 대왕>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두 권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사족 
마지막 문장에서 뜨악! 진정한 반전일세. 




118.
"전 살아남느라 바쁩니다. 이 암석을 이름들로 투망질해 두고 길들이고 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행동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어떤 것에 이름이 주어진다는 건 인장이자 사슬이 주어진다는 거거든요. 이 암석이 나를 제 방식에 맞추려고 들면 나는 거부하고 이 암석을 내 방식에 맞출 거예요.(...) 이 암석을 이름들로 묶어 둘 겁니다. 암석이 흡묵지로 나를 소멸시키려고 들며, 그럼 내 말들이 울려 퍼지고 현저한 소리들이 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시켜 주는 이 안쪽에서 말할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들을 자아내기 위한 정교한 공작 기계로서 내 뇌를 사용할 겁니다. 안위를, 안전을, 구조를. 그러므로 나는 내일을 생각의 날로 선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를테면, 그단스크 - 낯설지만 빛나는 도시에서
고건수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2.
삶에서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 기억이 깃들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인데, 그나마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대부분 소위 동유럽이라고 불리는 곳에 모여 있다. 지리적 위치와 역사에 대한 관심도 크지만 다른 이유를 들자면 문학 작가들에 있다. 산도르 마라이, 올가 토카르추크, 심보르스카, 헤르타 뮐러, 브루노 슐츠, 보후밀 흐라발 등 그들에게서 전해지는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정서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책이 여느 여행에세이나 건축에세이보다 마음이 들어가졌고, 읽는 동안 무척 즐거웠다. 


건축가인 저자는 어느 도시, 어느 건축물을 일방적으로 찬양하지 않고, 본인이 느꼈던 아쉬운 점도 털어놓으며 도시의 역사와 정서, 그리고 지역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문화적 인프라까지 함께 얘기한다. 








읽으면서 즐거웠던 지점들을 꼽아보자면,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성 마틴 대성당의 매력이 옆모습이라는 말에 예전에 전주 정동성당과 강화도 성공회성당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물론 내가 사진을 잘 못찍기 때문일 수 있지만 아무튼, 사람의 매력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건물의 매력도 마찬가지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라디오 빌딩이 인상적이었는데 당시 건축계의 유행과 공산주의 이념이 맞물린 건축물로서 호불호가 크다고. 그럼에도 내부 사진은 꽤 매력적이다. 조각상 지도가 따로 있을 정도로 브라티슬라바의 구도심은 소소한 이야기로 가득하단다. 동상이나 조형물들이 유명인이 아닌, 그 시기에 그곳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잔잔한 감동이 인다. 문득 우리는,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나... 라는 생각도 들고. 


폴란드 그단스크의 복원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지금은 박물관이 된 서대문형무소가 생각이 났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고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기 위해 복원을 선택했다는 도시 그단스크. 우리나라의 서대문형무소 복원 당시 버려졌던 벽돌마저 일일이 찾아냈다는, 그것도 정부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손에 의해졌다는 해설사의 말에 깊은 무게감을 느꼈었는데, 폴란드 국민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 할 수 있었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국립 대학 도서관의 서가 설계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건물이 지어진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 사이는 전쟁의 시대였고, 언제 도시가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건축가 플레츠니크는 갑작스런 변고에 대비해 손이 닿을수 있는 높이까지만 서가를 설계했다고 한다. 언어와 글과 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는 설계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프랑스 릴-메트로폴 부분에서 라 피신 미술관의 진입 구조를 우리나라의 사찰 진입 구조와 비유해 얘기하는데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나는 평창 월정사, 고창 선운사, 양산 통도사를 비롯한 몇 군데는 사찰보다 사찰까지 가는 길에 더 매료되었기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더라는.  


여행지로서 라트비아 리가는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책 덕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수도 리가, 특히 리가 중앙 시장. 규모가 큰 오프라인 시장을 넘어서 근대 역사가 녹아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ㅡ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의 서사와 관련한 장소에 가면 존경심이 우러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하고 이입했던 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의 대단치 않은 삶의 공간에서 오는 뭉근한 감동이었다. 그단스크의 낡은 성 캐서린 성당을 둘러보면서 다친 마음을 보여 주며 서로 토닥일 수 있는 위로와 공감으로 가득한 곳이야말로 성전이라는 저자의 말이 크게 와닿는다.   


공간은 인간보다 더 오래 시간 흔적을 남기고 후대를 잇는 끈이 된다. 현재의 사람들은 이를 통해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대비한다. 아마 답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나 역시 공산성, 남한산성, 문경새재, 강화도 돈대 등 여러 곳을 걸을 때마다 수백 년 전 그들이 걸었던 걸음을 뒤따라 걷고 있다는, 그리고 나의 다음 세대가 걸어올 것이라는 뭉클함이 있다. 


단순히 오래되어 가치 있는 건축이 아니라 한 시대를 움직였던 문화와 사상의 출발점을 이루는 의미 있는 장소이며, 건축도 자연의 일부이자 예술이라고 말하는 저자.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과거의 유산과 현대적인 감각을 아우르며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어려움은 도시공학이나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다. 다만 보통의 시민으로서 단기적인 유행이 아닌 앞서 말한 그 도시만의 풍경과 정서, 건축가의 철학이 잘 어우러져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가기를 바람한다.   


건축에세이인데 건축가보다는 엉뚱한 곳에 꽂힌 것 같아 살짝 민망하지만, 무척 재미있어 앉은 자리에서 거의 다 읽을 정도로 가독력이 좋았다. 특별한 주제 혹은 소재가 분명한 에세이의 경우 독자마다 호불호가 있기 마련인데, 나는 이런 경우 스토리가 있는 에세이를 선호한다. 그런 측면에서 즐겁게 읽은 책 중 하나다.  



사족 
1. 언론 자유도가 높아 저널리스트의 의식이 높고 시민들이 언론 보도를 신뢰하는 편이라는 네덜란드. 부럽네. 
2. 책의 마지막에 실린 '도시 산책'은 빼놓을 수 없는 서비스. 이 부분이 찐빵의 팥소 같은 느낌?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04.
인간은 각자 자기 운명의 주재자다. 누가 한 말이더라? 이보다 더 잔인한 말은 없을 것이다.  

 

어느날 아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판옌중은 아내를 찾기 위해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아내의 과거와 숨겨왔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돌아가셨다던 어머니와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겼다는 오빠의 등장, 아내를 경멸하는 듯한 고향 이웃, 그리고 남편도 모르는 아내의 절친이라고 자처하며 오히려 판옌중을 가해자 취급하는 오드리까지. 그는 자신이 늪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소설이 왜 <화차>와 <도가니>의 결합이라고 소개했는지 알겠다. 여기에 작가 임솔아의 <최선의 삶>,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까지 보태진다면 네 권을 통해 들여다봐야할 사회적 문제를 이 책 한 권에서 톺아보고 고민해 볼 수 있겠다. 


소설은 성폭력 및 근친성폭력, 가스라이팅, 가정폭력, 학대와 방치, 과잉보호, 가출 청소년, 가출팸 등의 폭력 범죄 앞에서 우리가 미처 짚어내지 못했거나 혹은 간과했던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또한 가정폭력과 성폭력 범죄를 놓고 다양한 관점과 처한 입장에서의 시각, 그리고 인간 내면의 가장 아래쪽에 자리한 악의에 대해 생각해 본다.  


ㅡ 


오드리는 열 살 때 합숙 훈련 중 체조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녀의 고통과 상처를 부모조차 잊어버리고 덮어두라고만 했고, 누가 알게 될까 쉬쉬하기에 급했다. 심지어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하면 인생이 끝장난다고 말렸다.  


우신핑은 고등학교때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의 집에서 강간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 유지였다. 그런데 소문은 우신핑이 원해서 성관계를 갖은 후 가해자를 강간범으로 몰아 돈을 뜯어냈다고 퍼졌다. 더구나 사람들은 강간 가해자 청년이 그 사건으로 신세를 망쳤다며 동정했다.  


소녀의 엄마는 남매를 앉혀놓고 그녀가 아빠의 근친 외도로 태어난 딸이라고 폭탄 발언을 하며 자식들 앞에서 남편을 저주한다. 그 자리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소녀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가족 중 누구도 그녀를 염려하지 않는다.  


젠만팅은 우신핑이 실종되고, 그의 남편이 찾아오자 묘한 흥분을 느낀다. 나보다 더 나은 처지라고 여겼던 동료의 불행에 안도감과 더 나아가 즐거움까지 생긴 그의 심리는 보편적인 감정일까. 


추전샹은 만 열여섯 살이 되지 않은 소녀와 성관계를 가졌다. 소녀의 어머니가 찾아와 보상을 요구했고, 소년의 아버지는 상대가 원하는대로 합의했다. 그런데 전샹은 억울하다. 합의 하에 이루어진 관계였고, 생활비까지 지원했다는 이유다. 소년의 아버지도 소녀를 꽃뱀 쯤으로 몰아붙이며 세상물정 모르는 제 아들이 덫에 걸렸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ㅡ  


소설은 성폭력 범죄의 가해와 피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서 이에 대한 법적 처벌과 단죄에 대한 단순한 스토리가 아니다. 피해자가 왜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신고할 수없었는지, 장기적으로 진행된 성폭력 범죄의 폐해가 개인 일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면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신핑의 강간 사건이 이슈됐을 당시 동네 사람들이 우신핑을 피해자라고 여기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평소에 가해자를 좋아했으며, 사건 당일 옷차림이 정숙하지 못했고 미성년자가 술에 취했다는 것. 무엇보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지역 발전에 힘썼던 지역 유지의 아들이었고(가장 큰 이유다), 우신핑은 3일이나 지나서 사건을 담임 선생에게 신고했으며,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았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성폭행 사건 피해자는 어떻게 살아야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등장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집요할 정도로 서로에게 집착한다. 소설에서 그려진 인물들의 공통된 감정은 외로움과 죄의식이다. 어린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보다 오히려 그들이 가해자의 미래를 망쳐놓을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여러 이유로 그들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피해를 하소연할 수 없었고, 감정을 공유하고 온전한 사랑을 쏟아줄 대상이 필요했다. 그러니 가해자이면서도 마치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보호자인 양 행세하며 외로웠던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을, 세상에서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무릎쓰고 어떻게 내칠 수 있었겠나.  


가해자가 소녀에게 했던 행위만이 가스라이팅일까. 폭력 범죄 피해자들에게 한 마디 한 마디 무책임하게 독한 말을 내뱉으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를 전환시켜 피해자에게 오히려 죄의식을 심은 그 모든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에 동조한 것이라고 보면 너무 과하다고 여기려나? 그리고 사건을 사실적으로 보도하기 이전에 왜곡되게 부풀려 2차 가해를 주도하는 언론도 그 책임을 피해가지 못 할 것이다. 



소설은 3인칭, 1인칭으로 번갈아 가며 서술한다. 중반을 넘어서 반전을 향해가는 스토리는 독자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물고기'는 왜 모든 것을 껴안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엄청난 사실을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묻어 둘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개토태왕 담덕 4 - 고구려 천하관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권은 하대곤과 해평의 반란으로 인해 마동과 함께 도망친 담덕이 우연찮게 백제를 거쳐 중원 - 서역 - 장안까지 돌아보며 고구려 유민 청장년 군대인 태극군을 만들어 금의환향해 태자에 책봉되기까지를 서술한다. 한편으로 전진과 모용부의 역사를 복잡하지 않게 다루면서 모용선비(모용부)의 본격적인 등장이 시작된다. 그리고 백제는 침류왕에서 진사왕으로 왕권이 넘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세상살이의 경험이 모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왕이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은 안 겪고 사는 게 훨씬 좋겠으나 4권에서 담덕의 모험은 그에게 큰 약이자 지식이 된다. 


본의 아니게 동진의 상단 대행수의 호위무사가 되어 백제를 방문하게 되는 담덕은 미추홀을 비롯해 서해 바다의 생태와 갯벌을 눈으로 확인하고 지리를 파악하는데, 이는 백제를 좀 더 알아놔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어 지도까지 그리게 된다. 또한 대행수를 따라 갑비고차 섬에 머물면서 섬 일대뿐 아니라 승천포 근처의 대형 인삼밭 조성 및 인삼 매매에 대한 백제의 정책을 파악한다. 인삼 재배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과 인삼 재배 농가 및 어부들의 삶을 두루 접하면서 전쟁이 날때마다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인지하게 된다.  


담덕은 대행수를 따라다니며 부국강병은 군사력으로만 이룰 수 없음을, 상업과 대외 교역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전쟁에서 많은 살상을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 길을 가야 하지 않겠냐는 승상 사안의 말에 스승 을두미를 떠올리고, 서역까지 두루 다니며 사람의 본질은 같으나 지역적 특성과 환경에 따라 다를 뿐임을 느끼며 이러한 동질성과 이질성의 간극에 대해 생각이 깊어진다. 어린 담덕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크게 느낀다. 


담덕은 장안에서 연호가 천하 패권을 쥔 절대적 권력자만이 사용하는 정치적 상징 수단임을 알게 된다(이 지점에서 독자는 어린 담덕이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뺏고 뺏기며 배반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치와 권력의 비정함으로 인해 어지러운 시국에 휘말려버린 힘없는 백성들도 있다. 이민족이라는 이유로 전쟁의 화살받이가 되고, 다른 부족인과 혼인했다는 이유로 차별과 모욕을 당한다. 전쟁통에 하루가 멀다하고 나라가 바뀌니 이제는 본인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알 수가 없다. 도대체 그놈의 충忠은 어디에 갖다바쳐야 하는지... .


전진이 무너지면서 그야말로 북방 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나라를 세우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대응이 기대되는 바이다.  




여기서 돌발 퀴즈!
과연 4권에서 담덕은 몇 살일까?
놀라지 마시라. 열한 살이다. 
타고난 깜냥이 남다른 건지, 교육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고, 나보다 낫더라는. 
(그래... 뭐, 소설이기는 하다...)


ㅡ 


기억하고 있어야 할 인물이라면, 줄을 갈아타고 담덕의 사람이 된 조환(두충), 여전히 이련과 연화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일목(추수), 담덕에게 지지세력이 되어줄 이정국, 쇠를 다루는 사람 김슬갑, 복수에 실패한 목만치, 아들이 반역자가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줄도 모르고 고구려 검법을 집대성하겠다고 온 천지산간을 돌아다니고 있는 무명선사(왕제 무). 


그나저나 해평은 처자식 데리고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잘못은 제가 하고 복수한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건 아닌지... . 나는 그 사람이 괜히 안됐더라.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자아와 삶에 대한 깨달음과 가능성,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등을 문학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하면서 '우리에게 왜 문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그 답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다. 








문학이 갖는 가치는 무엇일까?
저자는 문학은 잃어버린 시간을 끝내 보듬고 부둥켜안고자 하는 그 모든 상처 입은 자들의 마지막 보루요, 영원히 잃어버린 존재들을 비춰보는 거울이라고 얘기한다. 문학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이야기 속 인물들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지금 살아있는 우리의 이야기'로 승화시켜 살아낼 줄 안다는 것이라고. 


고통, 사랑, 부끄러움, 절망, 슬픔, 자비, 용서, 외로움, 배려, 치유, 희망을 무한 반복하며 사는 게 삶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허구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영원하고 아름다운 사랑, 또는 삶의 이야기들을 다룬 책들을 뻔하고 뻔한 이야기라고 퉁을 놓으면서도 줄기차게 읽는 까닭일 것이다.  


문학을 읽음으로해서 우리는 이해, 공감, 소통의 힘을 배울 수 있다. 그럼으로써 혹여 보상 없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사람을 사랑하는 끈을 놓지 않고 싶어진다. 저자는 첫 마음을 잊어버릴 때마다 문학이 그를 일깨운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문학을 읽는 궁극적인 이유가 아닐까. 


문학, 특히 소설만큼 우리를 역지사지에 위치할 수 있게 하는 매체가 있으려나. 가족, 연인, 친구 등 어느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하고 내로남불에 빠져있는 우리를 거부감없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제는 고루하게 느껴지는 정서에 다른 시각으로서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 그리고 소외된 채 장벽 밖에서 부유하는 이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 역시 문학의 힘이다. 


ㅡ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왜 문학을 읽는가?', 그리고 '삶은 어떻게 이어지는가?'였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지닌 만큼의 무게를 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무게가 참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운명처럼 불공평하게 지워진 자신의 삶의 무게를 원망하며 살아가기보다는 그 고됨을 상쇄할 수 있는 기쁨을 기대하며 오늘을 지낸다. 


우리는 소위 '이야기의 힘'에 대해 누누이 들어왔다. 거창하고 예쁘게 제본 된 한 권의 책이 아니더라도 어린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이야기,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수다, 어른이 되어 따라오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넋두리 등등. 누군가에게 늘어놓는 나의 이야기와 누군가로부터 경청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위로와 쉼이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이, 모든 이들의 삶이 각각의 소설이자 문학일 터다.  


따라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문학을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우리네 삶 속으로 끌어오는 것일테다. 


ㅡ 


정여울 작가가 문학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만큼 그의 글에서 생생하게 전해진다. 저자의 말처럼 고통스런 삶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혹은 서로에게 건네야 하는 건 다정한 유머라는 생각이 드네... .


그런데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언급된 책 이야기보다 저자가 고 황광수 선생이 작고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둘만의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는 대목이었다.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고, 서로 좋아하는 대목이나 자신의 느낌을 적은 발제문을 낭독했다는데 그 다정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 참 좋았더랬다. 나도 이렇게 둘만의 독서 모임을 할 친구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사족.
책에서 문학평론가 고 황광수 선생과 시인 김정환 선생의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가 짤막하게 나오는데, 한순간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투병 중인 친구에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원서를 선물한 김정환 시인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