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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아마 최근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한국에 가장 잘 알려졌을 작가, 줄리언 반스. 영국문학에서는 입지가
탄탄한 작가라고 하는데, 나는 <예감은~>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였다. 이번 작품이 내가 읽은 그의 두번째 작품이다.
나는 <예감은~>을 매우 재밌게 읽은 독자 중 한명인데, 그래서 앞으로도 아마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쭉- 찾아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한 작품이 재미있으면 다음 작품을 읽고, 혹 그래서 실망하면 더 이상 그 작가의 소설은 읽지 않는 것이 내
못된 버릇인데, 다행히 줄리언 반스는 앞으로도 꾸준히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단 <용감한 친구들>이 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른 필명으로 추리 소설을 내는 작가이니 만큼, 줄리언 반스가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생애와 조지의 삶을 다루기도
결정한 것은 놀랍지 않았다. 반스는 <예감은~>에서도 묘한 트릭을 계속해서 사용하면서 서사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가는 미덕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용감한 친구들>은 사실 그 묘한 장르적 쾌감, 트릭과는 살짝 거리가 멀다. 이 소설은 분명 조지 에들지 사건을
다루지만, 그 사건이 중심이 아니라 홈즈와 조지의 삶이 중심이고, 거기 잠시 사건이 삽입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조지는 성실하고 올바른, 다소 고지식한 영국 성공회 목사의 아들이며, 홈즈는 어릴 적부터 기사도 정신과 어머니의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지켜온 백인이다. 작품이 '용감한 친구들'이라는 제목을 취하고 있음에도, 이 둘은 1권이 끝날 때 즈음 되어서야 겨우 한 번 교차하고, 2권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만난다. 그나마도 대단한 우정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소개하면서 에들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란 굉장히 어려운데, 분명 일대기적 서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그 사건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며, 그 사건을 논의하지
않고 정리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한명인 아서 코난 도일은 워낙 유명하지만, 또 다른 주인공 조지에 대해서는 간략한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사실 나처럼
꼼꼼하지 못한 독자라면, 조지의 정체를 처음부터 단번에 알아차릴 수는 없다. 조지는 매우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
교회의 말씀을 가장 옳은 것으로 내면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는 아이다. 그의 시점으로 서술된 부분부분에서 그는 언뜻 조금 이상한
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사교성이 없고, 긴장을 쉽게 한다. 무엇보다 주변에는 그를 빈정대는 아이들, 놀리는 친구들이 너무 많고, 그는 특별한
이유가 없이 외톨이인 것처럼 보인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차츰 독자는 그가 왜 외톨이인지 알게 된다. 그것도 조지의 발화를 통해서는 아니고,
조지가 서술하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서 알게 되는 식이다. 이를테면, 조지를 놀리던 동료 중 하나는 햇볕 아래에서 탄 자신의 팔을 조지의
팔과 비교하며 이제 똑같아졌다는 식의 반응을 한다. 그에게 '진짜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이런 발화를 통해 독자는 천천히, 조지가 백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지는 인도계의 피가 섞인 영국인, 흔히 말하는 '튀기'다.
<용감한 친구들>은 이 조지가 그의 마을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가축 살해 사건의 가해자라는 누명을 쓰게 되고, 3년 간의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사건을 보여준다.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마을을 담당하는 경찰들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판결과
배심원 역시도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조지는 3년을 복역하다가 이유 모를 감면을 받아 출소하고, 조지의 사건을 알게 된 아서를 만나게 된다.
눈이 좋지 않은 조지와 달리 보는 것을 중요시 하는 아서는, 조지를 보자마자 "나는 당신이 무죄라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둘은
함께 사건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애쓴다.
만약, 일반장르소설이나 청소년 성장소설이었다면, 아마도 이 둘, 서로 너무나도 다른 둘은 서로에게서 장단점을 배우고 성장하고,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되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다. 작가는 둘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아서의
행동이 조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조지의 행동이 아서에게 어떻게 해석되는지가 번번이 교차된다. 덕분에, 독자는 조금 객관적인 위치에서 둘을,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마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주인공과 그가 듣는 베로니카의 진술, 그리고 그가 보낸
과거의 기록물들이 나타나면서 주인공이 객관적으로 보이듯이 말이다. 줄리언 반스의 매력이라면 매력이고, 묘한 단점이라면 단점일텐데, 사실 그런
그의 태도 자체가 누구보다도 문학적이다. 계속해서 균열을 제시하는 그의 방식을 나는 좋아한다.
비록 두 책 밖에 읽지 않았지만, 하나의 말이 어떻게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지, 같은 사건에서 누구는 무엇을 보았고 또 다른 누구는
무엇을 보았는지, 진실은 무엇인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우리의 요소들을 감안할 때, 역사라는 것, 기록이라는 것,
판결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를 반스는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개인적으로는 <용감한 친구들> 보다는
<예감은~>을 더 즐겁게 읽었고, 그 책이 좀 더, 마치 논문 쓰듯이 책을 쓴다는 반스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용감한 친구들>은 실제로 아서 도일의 편지와 실제 사건, 조지라는 인물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독서 전의 흥미는
<예감은~>보다 조금 더했던 것 같다.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홈즈라는 인물의 창조자, 아서 도일이 가진
인간적 특징들을 반스보다 객관적으로 제시해줄 작가를 찾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흥미로운 건, 비록 반스가 그토록 도일의 여러 면(이를테면 외도와
같은)을 숨기지 않으며 소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코난 도일이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는 거다. 물론
조지가 보여주듯이, 그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아쉬웠던 점은, <예감은~>에 비해서 책장을 덮고 난 후에 온 전율이 덜했다는 것. 반스의 냉정한 시선이 때로는 조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인종적 편견의 문제점이라던가, 여성 참정권에 대한 시대적 견해의 문제 등의 힘을 약하게 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독자가 조지의 문제에 공감하게 할 수 있었는데, 바깥에서 떠도는 관찰자에 멈춘 느낌이 없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반스의 시선인가 싶기도 한데,
<예감은~>이 어떤 확정적 단언이었다면, <용감한 친구들>은 반스 스스로에게도 일종의 물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무엇을
보았는가?"하는, 작가 스스로에게도 풀리지 않는, (그리고 아마 사람이 독립적인 개체임을 감안한다면) 풀리지 않을 물음 자체를 던지는 작업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그런 점이 여러모로 아쉽다. 반스의 작품을 조금 더 읽어보고 싶은데, 개중에서도 그가 무언가를 뜨겁게 외치는 작품,
혹은 아주 들끓지는 않더라도 무언가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하는 작품을 조금 보고 싶다. 이 정도로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무언가
외치는 힘을 함께 가지게 된다면 참 좋은 작품이 나올텐데,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