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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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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으며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 온 러셀의 책은 반가웠는데, 내 기억으로 이 사람이 낭만적 사랑에 대해서 논한 대표적 학자이기 떄문이다. 동시에, 좀 두려웠다. 어려운 책이라고 공공연히 들어왔기 때문에....(이 책말고 다른 책이 그렇다.)

 

하지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펴본 <결혼과 도덕>은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도리어 굉장히 쉽고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간혹 꼭 에세이집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다만 표지에 대해서는 정말 불만.... 겉표지를 빼내고 보면 훨씬 멋있다. 아무튼.

 

<결혼과 도덕> 같은 류의 책은, 이쪽에 대해 전혀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충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결혼, 사랑, 모성 등등 여러가지를 그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지만 실상 이것들은 자연스럽고 당연하지 않다. 사회와 경제, 종교가 합동하여 구축한 결과물이라 보는 편이 도리어 정확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 나머지 결혼 역시 제도라는 사실을 간혹 잊고, 남자-여자-아이로 구성된 가족이 정상적인 가족이라 쉬이 생각한다. 연애는 필수적인 것이 되고, 그 연애에서 주로 남자는 리드하고, 적극적이고, 강하며 여자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부드럽다. 그러나 이런 묘사가 실상과 얼마나 닮아있을까? 특히나 모성과 관련해서 이런 류의 주장은 보다 충격적일 듯한데 러셀의 말을 옮겨본다.

 

"여성의 정서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사실 남성들의 관심과 심정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 작가가 쓴 소설들을 읽다보면, 여성이 어린 자식에게 젖을 물리면서 육체적 쾌락을 느낀다는 내용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는 것은 가깝게 지내는 아이 어머니들에게 물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일인데, 여성이 선거권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어떤 남성도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컨대, 남성들은 무의식적으로 모성의 감정에서 남성이 지배권을 잡을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하고, 너무나도 오랜 세월 동안 모성의 감정을 극구 칭찬해왔다."

 

여성이 사회, 정치 등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려 할 때, 이들을 사적인 영역으로 돌려보내려는 반향 역시 일어난다. 그러나 여성에게 육아와 가정을 맡기는 일이 '불평등'이라는 말과 부딪히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모성애인 것 같고, 이렇게 볼 때 모성애는 약간 열정페이 같은 면이 있다. 아니 심지어 열정페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열정페이는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전제가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러셀은 이런 점을 꼼꼼하게 꼬집어주는데, 그 과정에서 꽤 신랄하고 솔직한 언사가 눈에 띤다.

 

간혹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매우 쉽게 기술된 결혼에 관한 책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사랑, 결혼, 여성, 이혼까지 여러 문제가 짤막하게 다루어져 있다. 나는 낭만적 사랑에 관한 챕터를 읽고 싶었기 때문에 유독 주의깊게 봤는데, 러셀이 의외로 '사랑' 정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심지어는 낭만적 사랑도 부정하지는 않는 입장이라는 것에 놀랐다. (내 머릿속에는 학자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낭만적 사랑이야말로 인생이 제공하는 가장 강렬한 기쁨의 원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열정과 상상력, 그리고 배려심을 바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 관계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고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은 큰 불행이다. 물론 이런 기쁨은 인생의 주요한 목적이 아니라 인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 제도는 마땅히 이런 기쁨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낭만적 사랑의 문제 역시 지적한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고 결혼의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친밀하고 다정하며 현실적인 사랑이다. 낭만적인 사랑을 할 때는 사랑의 대상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고 신비한 안개에 묻혀서 볼 뿐이다. (중략) 가능성은 환상이 섞여 있지 않은, 애정이 넘치는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 할 때에만 현실화 된다."

 

러셀은 여기에서 자식의 문제를 들고 오고 있다. 옳은 말이다. 진화심리학이나 여러 과학에서 묘사하는 남성에게, 그리고 여성에게 자식이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자기 자신의 영생이며 복제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이런 관념 역시 성차화 되어있음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적어도 현재 자식과 결혼, 여남 혹은 남녀를 떼어놓을 수 없다면 이를 명확히 고려해줄 필요가 있다. 물론, 러셀이 언뜻 암시하듯, 과학이 우리의 또다른 신이 되는 일을 지양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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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시기다. 책, 책,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다. 어서 테리 이글턴의 글 리뷰를 써야할 텐데...오늘도 책에 쫓기며 동시에 책을 고르는... 즐거운 경험을 한다. 이번 달은 흥미로워보이는 책의 풍년이다! 

 

 

 1.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동성결혼은 사회를 바꾸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바꾸는가? 최근 동성애에 대해 한국 내에서도 큰 정치적, 사회적 흐름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민인권조례에서 박원순 시장이 한 말이나, 한기총을 찾아가 한 국회의원이 던졌다는 말. 그 말에는 어떤 것들이 잠재되어있는가? 동성애가 사회를 위협할 것이라는 불안인가?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지에 대한 탐구는 불가피하다. 물론 이 탐구의 결과물 하나 만을 믿을 수도 없겠지만. 제목부터 흥미롭다.

 

 

 

 

 

2.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

 

 

 

 

참으로 오묘하게도, 경찰은 조폭을 잡는데 조폭은 정치인과 연합한다. 신기한 일이지만 너무나 쉽게 이해가 되어서 서글프다.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

 

 

 

 

 

 

 

3.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당 법무법인에서 냈나는 점을 감안해, 약간의 의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해주기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어떤 싸움을 해왔을까 궁금하다. 나는 법의, 권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구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변호사에 아주 큰 기대와 선망을 가지고 있다. 과연 현실은 어떠한가? 드라마와는 다를 것이다, 분명히.

 

 

 

 

 

4. 교양의 효용

 

 

 

최근 sns 조작에도 연루했다는 31세 해커가 감옥에 갔다. 이런 교양, 이런 지식의 전파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다룰 것으로 보이는 책. 나는 대중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관심이 간다.

 

 

 

 

 

 

 

 

5. 출판의 미래

 

 

 

 

단군이래 최대의 근황....눈물부터 흘리고......이북시장이 어떻게 되어가는가가 내 최대의 관심사인데, 이 책에서 다루어주길 바라고 있다. 선정된다면 이북으로 받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거나 책은 이어져야한다.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그 현장의 목소리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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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덕후감 -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김성윤 지음 / 북인더갭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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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덕후감읽기

 

어떤 책은 제목에서부터 신호를 보낸다. 나는 너와 동족이야! 나를 읽어야 해! 넌 나를 읽게 될 거야! 새로나온 책 코너에서 덕후감을 발견했을 때가 꼭 그러했다. 나는 이 책이 평가단의 도서로 선정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을 읽게 될 것이라 직감했다.

 

나는 인문학을 전공하지만, 가끔 인문학의 유효성(?)에 대해서, 물론 이 자체로 이미 너무나 역설적인 말이지만, 아무튼 간에 질문할 때가 있다. 특히 자폐적인 인문학, 너무 자신만의 세계로 파고들어가는 인-문학을 접할 때가 그렇다. 내가 주목하는 분야는 보다 가까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지금-여기의 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덕후감은 나를 위해 적합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 책은, ‘웃자고 보는문화 콘텐츠에 죽자고덤비는 인문학자를 연상시킬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어떤 시선을 가지느냐는 독자의 자유다. 다만, 나는 우리 시대에 유통되는 문화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의의, 즉 문화콘텐츠로써 현실이 재현되고 구성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든 이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찌나 열성적으로 생각하는지, 심지어는 이 생각을 강요하고 싶어질 정도다.

 

덕후감은 팬덤을 시작으로 <국제시장> <변호인>으로까지 나아간다. 아이돌 팬덤문화에서는 섹슈얼리티와의 관련성을 읽어내고, 중반부에서는 많은 콘텐츠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현 세대의 망탈리테 사이의 연관을 말하며, 후반부에는 정치와 역사로까지 나아간다. 하나의 소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힘들만한 작업을 해내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삼촌팬에 대한 분석. 사실 이전 소녀들의 팬덤을 논의하는 부분이 현상 기술에 그치고 넘어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던 차에 삼촌팬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나와서 저자에 대한 불신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수업을 들으며 무한도전을 분석해보았던 터라 무한도전에 대한 논의 역시 흥미로웠지만, 역시나 조금 더 깊게,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을 조금 더 많이 추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 김성윤은 삼촌팬의 탄생에 주목하며, 이들이 미디어에서 간혹 라벨링 하는 것처럼 미성숙한 청년 세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삼촌팬들이 직접 발화한 다양한 텍스트를 가져오며, ‘삼촌이라는 지칭이 형성하는 효과에 대해서도 비교적 명확하게 짚어내는 것 같다. 말하자면, 왜 오빠가 아니라 삼촌인가?에 대한 김성윤의 설명은 매우 타당하다. 삼촌이라는 가족관계의 용어가 들어가면서 친밀성을 형성에 소녀와 성인 남성 사이의 친밀성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김성윤은 이런 친밀성의 구축이 새로운 남성성의 출현인지를 묻는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이다. 보수주의적 남성에서 다정한 남성으로의 변화를 재현하는 주체일 수 있는 삼촌 팬들이 아직 이렇다 할 정치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김성윤의 태도이자, 그가 우려하는 바이기도 하다. 문화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대중이란 믿기도, 믿지 않기도 힘든 존재, 그 역시 아직 가능성과 모의 사이를 갈팡질팡 오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학자의 작업은 충분히 즐겁다. 우리 주변에 전혀 낯설지 않게 일어나고 있으나 분명 모종의 욕구에 의해 도출된, 혹은 모종의 욕구를 도출시키는 현상을 가감없이 다루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진단하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생각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즐거운 독서였다. 무엇보다 내내 같은 시대를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통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학자로서의 건승을 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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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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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리학 연구를 선택한 것은 영원한 영향력을 가진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중략) 내 친구 안나 크리스티나 뷔크만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안나가 문학을 전공한 이유는 나를 수학과 물리학으로 이끌었던 이유와 정확히 똑같았다." -리사 랜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P.25

 

책의 첫 인상은 첫 장에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서문을 읽지 않은 내 선택은 정확했다. 리사 랜들이 소개한 본인의 욕망과 학문연구의 동기는 내가 국문학을 선택한 이유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시간을 뛰어넘어 살아남는 그 무엇. 인간은 아마 보편적으로 영원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 보편성, 이 공통점은 참으로 묘한 진실을 드러낸다. 무엇인가 하면, 과학을 하건 문학을 하건 인간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대학을 온 뒤 나는 이 당연한 진리를 간혹 잊고 지냈는데, 중고등학교 때와 달리 한국 대학은 학부를 나누어 수업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공계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고, 따라서 그들은 점점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학문(과학/수학/공학)을 하는 미지의 존재로 느껴지며, 그렇기에 어렵다. 유식한 체 말해보자면, 그들은 점점 내게 불가해한 존재가 된다.(특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공대 남학생들의 생각 구조는 정말이지 놀랍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지라도.)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과학을 포기한 전형적인 문과생으로, 사실 물리학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그렇기에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도 '물리학..왜...' 같은 생각을 하며 벌벌 떨었더랜다. 그런 나에게, 리사 랜들의 이런 첫문장은 얼마나 다정하고 친밀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나는 책의 앞면을 채운 그녀의 인간적인 욕망에 어깨에 바짝 들어갔던 힘을 풀고 독서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럼 과학 책에 대한 이야기로 좀 들어가보자.

인문학 전공자에게 과학책이란 참 어려운 존재다.(정확히 말해, 인문학 전공자인 "나"에게)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내게 당연하지 않고, 그들에게 상식인 것이 내게 상식이지 않으며, 또 간혹 그들의 견해가 내게는 불편하고 감정적으로 거칠게 느껴질 수 있다. 이를테면...이 책을 추천한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의 글을 읽을 때처럼. 그런 의미에서, 리사 랜들의 글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그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데, 신과 과학이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 말하자면 논리로 무언가를 이해하지 않기에 논리로 설복시킬 수 없는 류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때로 리사 랜들의 논리는 나와 부딪힌다.

 

하지만 어떤 책이 그런 불편함을 넘어서서, 지적인 놀라움과 쾌감을 준다면 어떨까?

리사 랜들이 LHC를 설명하면서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스케일"의 문제는 사실 세상에 대한 진리 자체이기도 하다. 어떤 범위에서는 통용되던 진실이, 조금 더 큰 관점에서 보면 통용되지 않는다. 인문학이 하는 건 계속해서 그 범위를 깨나가는 일에 비슷하다. 그리고 그건 세상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인지하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스케일 안에 갇힌다.

 

이런 비유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면 간단한 사실 같은 건 어떤가? 사람을 매혹시키는 과학적 진실 말이다. 나는 이 책이 얘기한 입자 물리학과 LHC에 관한 이야기, 뒷부분에 소개되는 약간은 자기계발을 닮은 이야기 등등 모두를 즐겁게 읽었지만, 그중 나를 가장 매혹시킨 건 굉장히 단순한 사실에 대한 리사 랜들의 소개였다. 오해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녀의 문장 그대로를 인용하고 싶지만, 찾을 수가 없어 내가 이해한 바로 설명하면 이렇다.

 

물질의 아주 작은 단위로 들어가면 우리가 알고 있는 분자, 원자 보다 작은 단위, 쿼크가 나온다. 이 쿼크를 연구하다보면 아주 작은 물질의 단위의 큰 구성요소가 '빈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나 물질은 바로 이토록 작은 단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즉,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물체는 이미 비어있다. 다만 그 비어있음이 아주 작아서 우리가 지각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이 부분을 읽자마자 그 카페의 테이블, 커피잔, 그리고 내 손가락을 계속 만져보았다. 내 손에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어디 빈공간이 있다는 말인가? 사람의 몸이 꼭 스티로폴처럼 느껴졌다. 지각할 수 없는 무언가 아주 작은 것과 그 존재가 만들어내는 믿을 수 없는 진실이 나를 매혹시킨 셈이다.

 

아주 작은 단위를 연구하기 위해 힘을 가하면 블랙홀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는 또 어떤가. 우주에서 일어나는 블랙홀이 작은 단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니.... 기함할 만한 일이고, 또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시공간의 개념이 무너진다." 이 말은 <인터스텔라>에서부터 들었는데, 아니, 그 전부터 계속 들었는데 여전히 이게 대체 어떤 감각인지 체감할 수가 없다. 리사 랜들도 이런 말을 자주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대체 어떻게? 라고 묻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사이즈로 가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영화 <빅히어로>나 <인터스텔라>가 보여준 것같은 광경이 나오게 되는 걸까? 그 말을 너무 이해하고 싶어서 애가 탄다.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넓은 지평이 펼쳐지는 것 같고,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신학과 과학 사이의 갈등, 과학에 대한 세간의 오해 등 여러 민감한 문제에서 리사 랜들과 나는 견해가 맞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간만에 즐거운 독서였다. 어렵지 않아 특히 인문학 전공자로서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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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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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일이다.

 

대학생 기자단을 필두로 만들어진 미디어 <미스 핏츠>최씨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가 소개 되었다. 나는 그 새로운 미디어에 사소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편지의 내용만은 20대로서 구구절절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월세, 취직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진하게 묻어나는 협박편지에 박수를 보냈더란다.

 

그러다 어느 날의 하교 길, 교정이 끝나는 곳에 깃발 같은 현수막을 들고 계신 아버님을 만났다. 현수막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써 있었고, 아버님은 당신을 향해 다가온 몇몇 대학생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나는 가만히 서서 현수막 글씨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아버지 세대와 나 사이의 거리감을 도대체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는지, 막막해졌다. 둘 다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더 그랬다.

 

아버지의 말씀은 간단했다. ‘너희는 노력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을 처음부터 바라보고 있으니 취업이 힘든 게 아니냐.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다. 불굴의 정신!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너희의 아버지로서 너희를 응원하고 사랑한다.’ 그에 대한 우리 세대의 답변은 이랬다.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다.’

 

이제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났던가. 최근 인터넷 서점의 인문 란을 뒤져보면, 능력사회, 공부, 노력,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사회가 가진 허구성을 강조하는 책이 많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 얼마 전 추석 때에도, 공장에는 사람이 없어 난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야 그렇겠지했다.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청년은 대학을 나온다. 나는 지금 대학이라는 교육(?)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자의 수를 무시하는 위험한 발언을 하고 있지만, 내가 초중고를 나오면서 느낀 점은 어느 곳이든 대학이라는 이름을 단 곳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진학한다는 거다. 우리나라 만큼 고등 교육을 많이 받는 나라는 찾기 힘들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하고 노력하는 이 풍토는 오바마가 언급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나는 솔직히 그 아버님의 글을 보며 화가 났는데, ‘공장에라도 가라는 말 뒤에 숨겨진 그게 노력이고, 그게 치열한 삶이다, 라는 뉘앙스. 너희는 지금 너무 풍족한 시대에서 살아 맷집이 부족한 것뿐이라는 그 뉘앙스가 진저리나게 싫었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를 풍족하게 키웠는가? 우리는 풍족하게 크는 대가로 감내해야할 것이 정말 없었는가? ---대학교를 필수적인 교육코스로 밟으며, 기성세대가 우리에게 가르친 건 참고 공부하면 무언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 희망의 끝이 공장인가? 나는 지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당신들이 그토록 주창해온 노력을 우리는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고, 그에 걸맞은 가치관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이렇게 공부했으니 어디는 가야지, 이렇게 공부했으니 뭔가는 해야지. 그러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 때문에 더 괴로워하고, 더 미끄러진다. 노력했는데도 되지 않는다면 허탈해지고, 노력했음에도 비난받으면 허무해지며, 노력이란 말이 무서워진다.

 

그럴 땐 그냥 포기하는 편이 차라리 마음도 편하다. 노력이면 된다는 기치 아래에서 자라왔으니, ‘노력해도 안 된다.’는 현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청년 백수 중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취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들이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건 세간의 인식이요, 상황에 맞부딪히지 않은 누군가의 착각이다. 물론, 분명 어떤 경우 개인의 탓도 있을 테다. 개인의 특질이 사회적 구조와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한 개인개인의 경우요, 이토록 많은 청년 실업자 모두에게 대입해서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사설이 길었다. 나는 이런 개인적 생각을 배경으로 <무업사회>를 읽었다. 그리고 조금은 실망했다. <무업사회>가 나쁜 책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제목과 소개만 보고 너무 과도한 기대를 그 책에 불어넣은 게 문제였다.

 

<무업사회>는 일본의 젊은이들을 다루고, 니트족, 프리터로 사는 사람들의 통계적 숫자, 그들을 다시 취업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경위, 그리고 그들의 전반적인 속내를 얘기한다. 내가 바랐던 책이 조금 더 구조적인 문제에 치중하는 류 였다면(사실 일본에서 번역되어온 책이라는 부분에서부터 이 점을 포기해야했어야하는 것은 맞다. 한국과 일본의 풍토가 다를테니까), 이 책은 청년 실업자가 어떻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가를 다루는 일종의 보고서 같은 느낌이었다. 책의 처음부터 이 청년 실업자가 발생하게 된 경위가 결코 세간의 인식처럼 게으름이나 나태함이 아님을 밝히는데, 이때 <무업사회>는 구조적 측면보다는 개인의 정신적 측면을 좀 더 강조한다. 말하자면, 청년 실업자 중 다수가 실패의 경험, 취업이라는 상황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인지, 사실 일반 사회과학 서적보다는 임영인 신부님의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와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서울역 노숙자를 도우며 신부님이 쓰신 책인데, 노숙인들의 문제가 단순히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과 같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노숙인들 역시 노동의 현장에 있다가 한 순간에 튕겨나온 사람, 정신적으로 심한 트라우마가 있거나 실패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주로 적혀있는데, <무업사회> 역시 그랬다. 그래서인지 뒤쪽에 있는 수기를 보아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고, 이런저런 공포증이 있었는데 잡트레이닝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도움이 되었다는 류의 얘기가 많이 나온다.

 

<무업사회>는 이 사회를 미끄럼틀 사회라 부른다. 정규 루트에서 한번 이탈하고 나면 지속적으로 내려가게 되어 멈출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회에 대한 분석, 그리고 여기서 무업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황 등이 궁금했는데 책 자체는 그보다 좀 더 어떻게이 이탈자들을 다시 사회로 북귀시킬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였다. 나쁘지 않고, 분명히 필요한 이야기이지만 뭐랄까. 해결책 부분은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가 반복되었고 문제를 깊게 파헤치기보다는 프로젝트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데 치중한 느낌이 강했다. 무엇보다, 당연한 얘기이긴 하지만 노력의 끝은 또다시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읽고 나서 만족감이 오래 남지 않아 아쉬웠던 책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나머지 독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 고개를 들이민다. 곧 한국에도 프리터라는 실제적으로 용어가 도입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인데, 그때 즈음 다시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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