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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북
하워드 엥겔 지음, 박현주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사립탐정 '베니 쿠퍼맨'이 깨어난 곳은 어느 병실 안이었다. 간호사로부터, 자신이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고 쓰러져 있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실서증 없는 실독증'(문자를 쓸수는 있지만 문자를 인식할 수가 없다)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쿠퍼맨은 아연 실색한다.
그도 그럴만한 게, 만약에 평소처럼 침대 옆에 놓여진 신문을 집어 들었는데 신문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만 잔뜩 떠오른다면 공포로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기억 능력까지 손상을 받아서 조금 전에 들은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메모해 둘 수는 있지만, 그것을 나중에 다시 읽는다고 해도 의미를 알 수 없다면 한심해서 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놀랄만한 것은 이 책을 쓴 저자, '하워드 엥겔' 본인이 실제로 이 기병에 걸린 뒤에, 고통스러운 재활 과정을 거쳐서 훌륭히(라고 해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장해를 극복하고 이 소설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전대미문의 탐정소설이 아닐까? 단순한 체험 고백 에세이라면 몰라도, 문자를 인식하는 능력과 기억력을 잃은 채 병원에 갇힌 상태에서도,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사립탐정 베니 쿠퍼맨에 빙의시켜서 사건의 해결을 시도한 작가로서의 저자의 강한 창작욕에는 경탄을 마지 할 수 없다.
그러면 저자의 분신으로서 '실서증 없는 실독증'에 빠진 베니 쿠퍼맨은 병실에 누워서 과연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는가? 자신이 사립탐정이며 어떤 인물의 의뢰를 받고 조사 하던중에 습격 당했다는 것을 생각해 낸 쿠퍼맨은 다시 사건의 해결에 나서지만, 아직 입원중인 몸으로는 원하는대로 조사도 할 수 없다.
<메모리 북>의 가장 큰 매력은 '기억 장애를 수반한 실독증' 이라는 생소하고 놀라운 세상을, 공포, 초조, 희미한 바램, 좌절, 기대를 무한반복하는 탐정 쿠퍼맨과 함게 만끽 할 수 있는데에 있다. 난해한 이야기로 생각한다면 절대 오해다. 쿠퍼맨과 옛 연인 '애나' 사이의 공기는 꽤 요염하고, '운이 뭐와 맞는' 간호사 '캐롤'과의 시치미 뚝 뗀 대화는 포복절도.
쿠퍼맨과 부모님의, 가슴을 짠하게 만드는 교류가 또한 이 이야기에 깊은 맛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