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기둥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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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제일 읽고 싶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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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사랑의 섬 아바나의 오컬트 시리즈
다이나 차비아노 지음, 조영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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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이다. 쿠바 출신 여류작가의 SF환상소설이라는 문구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읽기 시작한 소설인데 왠걸, 대하소설과 같은 가계도, 격동의 시대를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과 희망,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예상치도 못한 감동이 숨어 있었다.

이 책<끝없는 사랑의 섬>은, 쿠바 출신으로 망명후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저자 '다이나 치비아노'의 2006년도 작품.
'마르케스'를 필두로 한 중남미 문학을 접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특별히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도 묘하게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많다. 확실히 문학적인 표현으로서 꽤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을 일부러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네들에 몸에 베어있는 자연스런 사상이라고나 할까. 현실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꿈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지울수 없게 만드는 특색이 있다.

이 작품이 또한 그렇다. 여기에는 일단 예언이나, 요정이나, 수수께끼의 유령의 집 등 불가사의한 사건이 자꾸자꾸 나타지만 그러면서도 작품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완전히 리얼한 현실로서, 판타지와 현실이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나는 '매직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남미문학을 이야기할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이 단어야말로 바로 이러한 것을 말하는게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따금 출현해서 몇몇 사람들에게 목격된 적 있는 유령의 집을 쫓고 있는 기자 '세실리아'는 우연히 들른 바에서 쿠바 아바나에서 온 노녀 '아말리아'를 만난다. 아말리아가 들려주는 그녀의 집안 내력과 중국계 이민자의 후손인 그녀의 남편의 집안, 각각 3대에 걸친 역사에 세실리아의 에피소드까지 섞여서 교대로 서술되는 꽤 복잡한 구성으로 이 소설은 진행된다.

이런 구성 덕분인지, 처음에는 꽤 진도가 안나가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에 점점 길들여지면서, 토막토막 끊어지는 에피소드의 다음이 궁금해서 초조해질 정도로 빠져들게 되니 묘하다. 몇몇 대목은 결말을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은 채 어영부영 넘어가는 부분도 있어, 그게 또 혹시 확실한 결말이 있을까 싶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예언이나 요정이나 다양한 초자연적인 일들이 당연한 것인양 그려져 있어서, 그런 면에서는 판타지 같기도 하지만, 그것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내용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리고 이런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결코 SF나 환상소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된 연출로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에게도 아직까지 무속이나 토속신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쿠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지금도(혹은 최근까지도) 분명 그런 것이 익숙한 것이다.

쿠바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자료로서의 의미도 조금은 있지 않을까. 혁명 후의 혼란을 그리는 부분은, 깊숙한 부분까지는 알기 힘들지만, 그런데도 꽤나 충격적.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고향을 생각하는 쿠바 사람들의 아바나 사랑이 인상적.
<끝없는 사랑의 섬>이라는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지극히 직설적이고, 작품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결말이 훌륭하다. 이전까지 들려준 세개의 스토리가 하나로 수렴되어 가는 형태의 결말이 매우 감동적이다. 중남미 문학을 읽고 싶지만, '마르케스'나 '바르가스 요사'를 집어들기가 진땀 날 정도로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영상미 넘치는 아름다운 문장은 하나하나가 마음에 남는다. 다만, 3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가는 이야기인 만큼 등장 인물이 우글우글 나오므로 이 때문에 초장에 헷갈린다고 책을 내려놓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 고비만 넘기고 나면, 신경지가 펼쳐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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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님과 나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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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우타노 쇼고'와는 또다른 분위기입니다. 천의 얼굴이라는 표현은 좀 낯간지럽다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질리기 힘든 다채로운 작가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는 이런 느낌입니다. 주인공인 '신토 카즈마'는 은둔형 외톨이만으로는 모자라서 로리콘이기까지 합니다. 본인 말로는 가끔 물건 사러 나가기도 하고, 완전한 히키코모리와는 격이 다르다지만, 어떻게 봐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본만화 속의 그 뚱보 오타쿠를 연상하면 얼추 맞아떨어질 것 같은 이미지입니다. 게다가 나이가 무려 44살.
피규어에다 '에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자신의 사랑스런 여동생이라는 망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에무와 함께 외출한 카즈마는 '라이미'라는 이름의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라이미는 면전에서 대놓고 재수없는 오타쿠라는 둥, 카즈마를 매도하면서 틈만 나면 불러내서 부려먹고, 옷을 사게 하거나, 고가의 음식, 인기가수의 콘서트 티켓등을 구매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고압적인 자세를 잃지 않습니다. 12살짜리 소녀가 너같은 뚱보 로리콘을 만나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라! 뭐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위풍당당하던 라이미의 태도가 급변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라이미의 친구인 또다른 소녀들이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입니다.

일단은, 뚱보 오타쿠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소녀연쇄살인사건이라는 측면에서 읽어나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초반의 분위기는 독특한 등장인물들이라던가, 일반적인 상식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인물들의 가치관, 가볍고 경쾌한 대사의 스타일 등에서 언뜻 라이트노벨을 생각하게도 합니다만, '우타노 쇼고'의 팬이라면 이런 분위기에 너무 연연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 다음에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지 바짝 긴장하면서 읽어나가게 되겠지요. 반면에 우타노 월드의 신규 체험자라면 갑작스러운 반전과 터무니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스토리에 몹시 놀라게 될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단지 이것뿐인 이야기라면,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프라이드가 용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 신토 카즈마란 누구인가? 이 인물은 정말로, 그저 라이트 노벨같은 분위기나 연출하는 픽션 속 허황된 캐릭터에 지나지 않는 걸까? 언뜻 비현실적인 냄새를 살살 풍기던 인물이 가지고 있던 그 확실한 리얼리티를 체감하는 순간에는 아찔함마저 느낍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만, 우타노 쇼고는 작가가 아니었다면 사기꾼으로 그야말로 대성했을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반전을 자랑하는 작가는 많지만, 그것들이 치밀한 구상과 설계에 의해 구현된 일종의 공학적 반전이라고 한다면, 최면을 걸듯 이렇게 현란한 말빨로 스리슬쩍 속여넘기는 기술이 압도적인 작가는 좀처럼 드문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게 말하면 서술트릭의 달인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피학적인 심리를 부추기는 사기꾼입니다. 매번 속아 넘어가면서도 잘 속을수록 좋아라하게 되니 고소할 마음까지는 들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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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브 로사 4 - 베누스의 주사위 로마 서브 로사 4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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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가 연달아 3권이 나온 이후 잠시 주춤하더니, 5개월 만에 드디어 4권이 나왔습니다. 모두 10권이 완간이니까, 8개월만에 4권이라는 지금같은 페이스라면 적어도 내년 연말까지는 모두 읽어볼 수 있을 듯 하네요. 아무튼 이 시리즈는 중간에 나오다 말면 큰일 납니다. 이것 덕분에 로마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거든요. 끝장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역사라고 해봐야 교과서에서 배운게 다인데, 연도별로 늘어놓은 사건을 외웠다고 해서 진짜 역사를 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우리 역사 뿐 아니라 외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 정사가 아닌 야사에 대해서도 놀랄만큼 해박합니다. 이것은 교과서 이외의 교양서적, 혹은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배우는 역사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이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가 지금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이놈이 저놈같고 저놈이 이놈같은 이름이나, 지명때문에 곤혹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4권을 달리고 있는 지금은 마치 우리 역사속의 친근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대해서라면 훌륭한 스승이 되어 주고 있는 셈이지요.

이번 작에서 주인공인 더듬이 고르디아누스는 벌써 54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르디아누스의 집에 한때 스승이었던 대철학자 디오가 찾아와 뜬금없이 살려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렇지만 고르디아누스는 군복무중인 아들의 면회, 아내와 딸의 안전등을 이유로 들어 그 부탁을 거절해 버립니다. 이후,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고르디아누스는 디오가 자신이 거절한 바로 그날 밤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됩니다. 곧 클로디아가 고르디아누스를 호출해 디오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의뢰를 해옵니다.

사실, 4권이나 된 마당에 새삼 이 시리즈의 대한 설명은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어떤 소설인지는 모두 잘 알고 있을 터, 반복되는 감상만 이야기하자면, 철저한 고증에 의해 2000년 전 로마를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되살려 놓은 것만도 대단한데 당대 최고의 실존했던 영웅들 틈바구니에 가상의 인물인 고르디아누스를 주인공으로 끼워 넣으면서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역시 대단하네요. 역사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그 시대적 배경을 빌려온 추리소설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오히려 추리라는 흥미로운 형식을 빌린 진짜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겉핥기 식으로나마 알고 있던 로마의 정형화된 이미지가 이 시리즈 하나로 완벽하게 뒤바뀌어 버렸어요. 언제부턴가 로마하면 자연스럽게 <로마 서브 로사> 속의 로마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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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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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에서 일어난 소년 A 사건. 르포라이터인 '다카미네'는 소년법 관련 논픽션을 취재하기 위해 도쿄 근교의 작은 마을 '구키'시를 찾았다. 다카미네가 취재하려 한 것은 '유다의 아들' 사건. 이 유다의 아들 사건은 15년도 더 전에 일어났던 '유다' 사건을 꼭 빼닮았다. 게다가 범행 장소도 같은 구키시. 유다사건은 범인인 소년 A가 체포됨으로써 해결된 바 있다. 그 과거의 사건을 모방하는 듯 한 '유다의 아들'. 그러나 붙잡힌 유다의 아들은 또다른 소년 A. 과연 이 소년 A가 정말로 유다의 아들일까? 취재를 끝마치고 소년법을 다룬 논픽션을 출판한 다카미네의 주위에 누군가의 마의 손길이 미쳐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카미네의 조수 '유미코'에게 다가오는 위험. 한편, 소년 A의 아버지는 소년원에 있는 아들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편지에 쓰여있는 것은 어떤 과거에 대한 아버지의 참회, 소년 A의 유년 시대, 그리고...

오리하라 이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현란한 서술 트릭이다. 작품에 상관없이, 서술 트릭이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도 전혀 상관 없는 작가는 역시 오리하라 이치뿐이지 않을까? 다른 영화나 소설의 경우는 이것을 미리 밝히면 살해당할지도 모르지만, 오리하라 이치의 경우에는 그런 걱정은 전혀 없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은 오히려 이번에는 어떤 서술트릭이 장치되어 있는지가 독자의 최우선 관심사가 된다. 서술트릭을 찾아라! 라는 일종의 '게임'의 브랜드로서 정착된 느낌이다. 거기에 더해 '유다의 아들'은 누군가? 라는 식으로, 일반적인 범인 찾기의 요소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일석이조의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게 바로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이다.

전작인 <원죄자>에서는 '원죄'라는 사회파적 소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소년 범죄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에서 이런 사회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대해 이정도까지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은 다소 의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말하자면 사회파 서술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회파 소설처럼 사회 고발이라던가 무거운 메세지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무거운 소재라고는 해도 결국에는 소설속 트릭을 완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작용할 뿐이다. 여기에, 오리하라 이치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체나 시점의 전환이 여전히 건재하고, 그러면서도 그 빈번한 시점변환에도 전혀 어수선하지 않게 느껴지는 안정감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트릭기술자로서의 노련함이 묻어나온다.

다음은 어떻게 되는지, 이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 인물에게는 어떤 과거가 있는지... 등장 인물 중 누구하나도 방심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최대한 등장인물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이 건조함, 비정함이야말로 오리하라 소설의 매력일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경천동지할 만한 사건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 <oo자>시리즈에 있어서도 소재는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에는 어떤 사건을 모델로 신 트릭을 개발해서 들고 나올지, 앞으로도 이 작가에게서는 관심을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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