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에브리원
다이애나 피터프로인드 지음, 이소은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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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데이브레이크'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상캐스터는 날씨중계대신 롤러코스터를 타고 씨바~를 연발하다 혼수상태 직전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엉덩이에 문신을 새기는가 하면, 남녀 진행자는 자신이 더 높이 앉기 위해 천장을 뚫을 기세로 경쟁적으로 의자를 높이다가 이내 초등학생처럼 말꼬리 붙잡고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아닌 뉴스 프로그램  생방송 중의 광경이다.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아이처럼 발로 땅을 쾅 구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네, 네 그러시겠죠."를 되뇌이는 책임 프로듀서 '베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람?

오랫동안 몸담았던 지방 방송국에서 정리해고된 베키는 필사의 구직활동끝에 'IBS'의 아침뉴스 프로그램 '데이 브레이크'의 프로듀서로 채용되지만, 알고보니 이 프로그램은 방송국으로부터 버림 받은 초저시청률 프로그램이었다! 다 죽어가는 프로그램을 되살리기 위한 열혈 베키의 대분투.

여러모로, 스펙도 딸리고 일도 사랑도 미숙한 것 투성이인 평범한 주인공의 성공기라는 인상이 있지만, 사실은 베키와 전설의 앵커 '포머로이'의 우정 이야기 쪽에 가깝습니다. 아니 그것도 그렇게 깊이 있게 그려져 있지는 않고, 게다가 베키는 남들보다 크게 불리한 인물도 아닙니다. 스펙은 떨어져도 오히려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성이랄까? 처음부터 라이벌 부재 상태라 모략에 휘말리는 일도 없고, 업무상 큰 고생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다 급조해낸 기획이 시청률을 올리는데 성공하는 식으로 상당히 잘 맞아떨어지게 돌아가는 이야기. 뭐, 그런데도 다 읽고 난 뒤의 기분은 아주 깔끔합니다.

주인공 베키의 사랑스런 매력이 이 소설에 호감을 가지게 만듭니다. 자존심 마왕인 포머로이의 끝없는 땡깡이나, 베테랑 여성 진행자 칼린의 히스테리, 떠들썩한 스탭들과의 이런저런 마찰로 야단법석하면서도, 타고난 밝은 성격과 전향적인 사고로 꿋꿋이 헤쳐나가는 베키는 그야말로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읽고 있으면 그 건강한 에너지가 정말로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덜렁이? 매사에 서툴러도 일에 대한 열정만은 굉장합니다. 팀의 수장으로서 미팅에서 오합지졸처럼 우왕좌왕하는 스탭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모습은 정말 멋졌습니다.

동료이자 모두의 동경의 대상인 '애덤'과의 연애가 흐지부지되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베키는 사랑하는 사람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도 뉴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중증의 워커홀릭입니다. 이래서는 연애가 두번째, 세번째로 밀려나 버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베키가 난관을 넘어서 마침내 프로그램을 살려내고, 동거동락한 스탭들과의 돈독한 정을 나누는 후반의 전개는 확실히 유형적이기는 하지만, 어설픈 교훈이나 설교가 없는 만큼 시원시원합니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필사적인 베키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은, 아이러니하게도 베키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들여 섭외해온 포머로이입니다. 명색이 퓰리처 상 수상자인데 제대로 된 뉴스가 아니면 하기 싫다! 고
완고하게 버티는 이 고집쟁이 앵커야 말로 베키의 모든 고민의 원천입니다. 이런 포머로이와 주위 사람들의 불협화음은 소설의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베키와의 충돌은 물론, 포머로이와 공동 진행자인 칼린과의 대립이 또 재미있습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멘트를 서로 자신이 하기 위해 두 진행자가 천연덕스럽게 "안녕히 계세요."를 몇번씩 되풀이 하는 장면 등은 상당히 즐겁습니다.

영화에서는 '다이앤 키튼' 이 '칼린' 역을 맡고 있습니다만, 영화를 보지않았어도 그녀가 칼린을 연기하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요. 소설 속에서는 칼린이 스모 복장을 하고 스모 선수와 한판 붙는다거나 힙합가수의 공연중에 느닷없이 무대에 나가 춤을 춘다거나 하는 뜻밖의 장면들이 있는데, 다이앤 키튼이 과연 이 장면들을 어떻게 소화했을지 궁금합니다. 칼린이 튀면 튈수록 시종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포머로이와의 대비가 두드러지게 되고, 이게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해서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흐름, 그리고 포머로이가 과연 언제 베키를 인정하고 프로그램에 녹아들게 되는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아, 물론 '포머로이'와 '해리슨 포드'의 싱크로율도 높습니다. 줄곧 벌레씹은 얼굴을 한 해리슨 포드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니까요.

그외에도 방송국의 뒷이야기라던지, 점점 가족화 되어가는 스탭들까지, 코믹컬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사뿐히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감정표현에 서투른 포머로이가 자신의 방식으로 마지막 베키에게 보내는 메세지는 감동! 오랫만에 깔끔하고 기분 좋은 해피엔드였습니다. 스토리에 의외성이라고는 없습니다만, 애초에 그걸 바라고 있었던 만큼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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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민음사 모던 클래식 6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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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라는 작가를 알게 된 계기가 된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였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굉장하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은 과연 어떤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며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분위기를 창조해낼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후에 원작을 읽고 나서는 그 감탄이 그대로 원작자인 코맥매카시에게로 옮겨와 버렸다. 음울한 세기말적 분위기라던가, 인간의 본능까지도 역행하는듯한 철저하게 감정이 배제된 냉혹한 인물상이라던가 모든것이 소설에서는 영화 이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핏빛자오선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묵시록적인 뉘앙스가 물씬 풍겨나오는 이 작품의 그것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물론이고 가장 최근작인 로드보다도 강렬하다. 이야기의 배경이 19세기 중반의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 미국 역사상 가장 황폐하고 살육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는 이유도 분명 있겠지만, 그보다는 잔혹하고 과격한 장면들을 묘사하는 풍부한 언어들과 미묘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들에서 더욱 그런 인상을 받게 된다. 특유의 문체와 읇조리는 듯한 문장부호 없는 대사들은 마치 음유시인의 입을 통해서 듣는 한편의 서사시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방식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감정이란 것이 없는 존재 그 자체다. 잔혹하리만치 담담한 어투로 처참한 장면들을 묘사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괴로워질 정도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에의 본능을 시종일관 아무런 여과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고 눈하나 깜짝않고 머리가죽을 벗겨낸다든지, 벌레라도 밟아 죽인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모습들은 정상적인 사고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폭력의 순간들이 모두 과장된 것이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것이다. 평온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는 과거에는 낭만이라던가 막연한 환상이 개입되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사방이 적인 세상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도 모르는 그저 살아갈뿐인 나날들이라면 인간은 본능에 충실해질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 생각하는 것 이상의 아비규환의 시대였는지도 모를일이다. 정말로 인간의 그런 감추어진 단면을 끄집어 낸 것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어줍잖게 감동을 주려는 이야기보다는 더욱 사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매체에서 작가의 이런 묵시록적인 세계관이나 담고있는 메시지에 대해 이런저런 평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이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오락적인 측면으로서의 이유가 더 크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저 재미있어서 읽을뿐이다. 어딘가 비이성적으로 뒤틀리고 초월한 듯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강한자가 살아남는 냉혹한 세계, 이성은 배제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원초적인 세계를 즐기는게 솔직히 즐겁다.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별다른 감흥은 없다.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들의 활약상을 그린 전기소설이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문학적인 색체가 짙은 깊이 있는 문체로 이런 이야기를 즐길수 있게 해주는 작가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코맥 매카시 외에는 없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유명한 영화 7인의 사무라이.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왠지 이 영화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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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읽는 완벽한 기술 - 이제 아무도 당신을 속일 수 없다
잭 내셔 지음, 송경은 옮김 / 타임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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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비지니스 스쿨에서 리더쉽과 조직행동학을 가르치고 있는 '잭 내셔' 교수가 밝히는 '관찰과 대화만으로 사람을 꿰뚫어보는 법'.

거짓말을 간파해내는 법이라면 이전에도 자기계발서 형식으로 된 일본 저자의 책들을 몇권 읽은 적이 있지만, "말하는 사람의 시선이 오른쪽을 향하면 거짓이고 왼쪽을 향하면 진실이다,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면 거짓을 말하고 있는 중...." 등등의 속설수준에 머무르는 영양가 없는 내용에 번번히 크게 실망하곤 했다. 사람마다 상황에 따른 행동양상이 다 다르고, 반응이 다른 이유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므로 거짓말때문에 특정 행동을 보인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비디오를 보고 거짓말쟁이를 찾아내는 실험에서 전문가나 아마추어 모두 정답을 맞춘 확률이, 우연이나 별반 다를바가 없는 50 퍼센트 대에 지나지 않는 예를 봐도 이러한 방법은 실제로 그리 유용한 것 같지는 않다.

이책에서 배우게 되는 거짓말을 읽어내는 다섯가지 기술은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을 분석해서 얻어진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복잡해서 배우기 힘들다거나 오랜 숙련기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자유자재로 응용이 가능한 것들이다. 의외인 것은 앞서 말한 '속설수준에 머무르는 영양가 없는 내용'들이 완전히 근거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다만, 상대방의 몸짓이나 반응을 단순히 읽어내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그렇게 읽어낸 정보를 유용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약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상대의 거짓말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베이스라인의 설정이다. 일단 상대방이 진실을 말할때의 행동양상을 알고 있으면, 이후 아주 미묘한 변화까지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단서가 되어 준다. 예를들면, 거짓말 탐지기는 답변자의 신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체크해 거짓을 판독하는 기계다. 먼저 사실을 말할수 밖에 없는 질문들을 던져 피의자의 평소의 상태를 체크한 후에 불시에 중요한 질문을 던져 평소와 다른 반응이 나타나면 거짓으로 간주하게 된다. 이때의 피의자의 평소의 상태가 바로 베이스라인이 된다. 이런 거짓말 탐지의 매커니즘만 이해하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1초도 안되는 시간에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이나 '엠블럼'(마음속에 무언가가 드러나는 몸짓)을 캐치한다던가, 디테일한 답변을 끌어내는 심문기술까지 기계로는 불가능한 섬세하고 융통성있는 테크닉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다.

행동변화 관찰/ 진실한 감정 포착/ 표정의 불일치/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을 만들어라/ 디테일을 읽어라. 이 다섯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단서는 애를쓰지 않다도 쉽게 관찰 할 수 있다. 단서를 찾으려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조차 없다. 단, 연습을 통해 습득한 기술도, "타조효과"가 발동하게 되면 무용지물이다. 꿩은 사냥꾼에게 쫓기면 풀숲에 머리를 처박는다. 자기가 안보이면 상대도 자신이 안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확실한 증거가 넘쳐나도 이를 애써 무시하는 아내들이 그렇듯, 의도적으로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이런 심리상태에서는 그 어떤 거짓말도 간파해 낼 수가 없게 된다.

각 장의 끝에서는, 역사적인 사기사건들과 그 수법에 대해 들려주고 있는데, 그 희대의 사기꾼들의 대담함에 혀를 내두르게 되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뭔가 허술해 보이는 수법에 속아넘어간다는 사실이다. 결국 사람들을 속게 만드는 것은 잘 꾸며낸 시나리오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믿어 의심치 않게 하는 거짓말쟁이들의 화술, 바디랭귀지 그 자체인 것이다. 이책은 그것을 간파하는 기술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시각을 달리하면 거짓말쟁이의 입장에서는 이를 역이용하는 것이 물론 가능하다. 거짓말만 하면 곧바로 표가 나서 속상하거나, 사기꾼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이책의 내용을 기본으로 능수능란한 포커페이스를 연마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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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나 데이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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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나 면허증은 위조할 수 있어도 DNA라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플래티나 데이터>는 가까운 미래의 DNA 정보 시스템을 소재로 한, 서스펜스 맛 나는 단숨 읽기 계열의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조금 진부한 전개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같은 빠른 속도감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소설을 읽었다는 충실감은 고마운 느낌으로 남습니다. 발로 뛰는 고전적인 수사방식을 신봉하는 열혈 형사와 DNA 정보에 의한 최첨단 수사를 믿는 시스템 개발자의 '대립구도'가 볼 만합니다.

근미래의 일본, 범죄방지를 목적으로 한 DNA 법안이 가결되고, 국민의 DNA 정보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사건현장에 남겨진 범인의 DNA 정보를 이 시스템과 대조하면, 범인의 용모나 신체적 특징까지도 도출해 낼 수가 있습니다. 설사 당사자의 데이터가 수집되어 있지 않더라도, 가까운 혈연자의 DNA 정보가 입력되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검거율은 현격히 높아집니다. 이 시스템은 지금까지의 초동 수사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갑작스런 변화가 다소 당황스럽지만, 현장의 형사들 역시 수사가 편해졌다는 실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느때처럼 이 시스템으로 어느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의 정보를 도출해내던 담당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과에 경악합니다. 말도 안되는 인물이 범인으로 지목된 것입니다. '톰 크루즈' 주연으로 영화화된 바 있는, '필립 k. 딕' 원작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였습니다.

얼마전, 지금의 주민등록증을 IC칩을 내장한 것으로 바꾸고 거기에 혈액형 정보를 넣자는 논의가 우리나라에서 있다는 기사를 읽었던 게 생각이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상정해서 쓰여진, 어떤 의미로는 SF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속의 내용이 이미 현실에서도 거론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 혈액형의 기입인지 DNA정보의 제공까지 의미하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세상 참 빠르게 돌아간다고 감탄을 해야 할까. 무섭다고 해야할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락없이 소설이고, 소설이 곧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DNA 감정이 범죄수사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개인의 DNA 데이터를 국가가 일괄적으로 관리한다라.... 아무래도 이것은, 무섭습니다. 소설 속에서처럼 DNA 해석 시스템을 사용하면, 머리카락같은 작은 단서만으로 성별, 연령, 혈액형, 신장, 피부 색, 선천적인 병의 인자, 정밀한 얼굴 생김새까지 범인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특정할 수 있게 되고 당연히 검거율도 급상승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옳은 일인가? 과연 이롭기만 한 것인가? 라고 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시스템을 구축해도, 그것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입니다. 악용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과학의 진보는 위대합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서 우리가 결코 잃어선 안 될 것까지 잃게 되는 일은 없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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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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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이 너무나 강렬하면 실체화 할 수 있을까?
중학교때 같은 반 아이가 비둘기를 발로차서 다음 세상으로 보내버린 사건이 있었다. 본인 말에 의하면,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전봇대 밑에서 오바이트를 쪼아먹고 있는게 기분 나빠서 쫓아버리려고 단순히 발길질 하는 시늉을 했을 뿐이라는데, 결과적으로 비둘기는 허망하게 산화했다. (장렬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게) 그러나 당시의 이 친구의 심리상태를 헤아려보면 단순히 그런 시덥잖은 이유 때문에 발길질을 한 것만은 아닌것으로 풀이된다. 왜냐하면 이미 이 아이는 왕따로 임명돼서 연이은 괴롭힘과 용돈 상납으로 심신이 지쳐가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증오심이 비둘기를 향한 발길질이라는 형태로 실체화 한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완전 어거지가 아니냐고 해도 뭐 별로 상관은 없다. 의미 없는 얘기니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2001년에 <바람의 그림자>로 브레이크 하기 전에 집필한 <안개 3부작>중 하나, 데뷔 이 후 두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이 <한밤의 궁전>에는, 인간의 증오심이 얼마나 집요하며 어디까지 키워 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악의 화신이 등장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안개 3부작의 다른 작품들(안개의 왕자, 9월의 빛) 에 나왔던 '닥터 케인' 이나 '다니엘 호프만'과 같은 어둠의 왕과는 다르고, 사념의 실체화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식의 원혼이나, 귀신같은 존재라고 할까? 대략,'팀 버튼' 풍의 '원혼' 정도로 해두고 싶다.

두 아기를 끌어안은  한 남자가 한밤의 안개 속을 뚫고 도주중이다. 그 뒤를 강한 카리스마의 살인자가 뒤쫓고 있다. 간신히 추격자를 따돌리는 데 성공한 남자는 이상한 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노부인을 찾아가 아기들을 맡긴후, 상처입은 몸을 끌고 또다시 어딘가로 몸을 피한다. 이 노부인은 다름아닌 아기들의 친 할머니. 여자아이는 할머니의 곁에 남고, 남자아이는 증표가 될 펜던트와 함께 고아원에 맡겨진다. 그리고 아이들이 16살이 되는 해에....

아이들, 이란성 쌍둥이인 '벤'과 '쉬어'의 앞에, 기이한 환상을 몰고 다니는 살인자가 다시 나타난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이들의 아버지 '차테르기'는 어린 시절, 생명의 은인인 '자와할'이라는 자와 어떤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차테르기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자와할은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마침내 자와할이 차테르기의 가족을 몰살시키려 했고, 다행히 아이들만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 그런데, 16년이 지난 지금 그 사악한 자와할이 아이들을 찾아 다시 나타난 것이다. 한편, 비밀 결사단을 조직하고 있는 벤의 고아원 친구들이 벤과 쉬어를 도와 자와할을 막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자와할은 단순한 살인자일까?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요하게 아이들을 노리고 있는 이유는? 할머니의 말이 과연 진실일까?  이런 궁금증에, 기괴한 악몽, 초현실적인 현상, 20세기 초반 인도 캘커타의 독특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소녀들의 모험담이 어우러져서 사폰 특유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사폰의 소설들을 보면 시대적 배경이 대부분 1920 - 1940년 대에 머무른다. 이는 환상스릴러라는 그의 작품 색깔과 무관계하지 않아 보인다. 현대화된 도시와 미신이나 전설을 숭배하는 사람들, 달리는 증기기관차와 당장이라도 유령이 나올것 같은 오래된 저택,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폰의 소설속의 모든 것은 그러한 이 시대 특유의 혼재함에서 시작한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든다는 느낌보다는 환상과 현실이 원래부터 한군데 있었던 것 같은, 스팀펑크와 동화의 결합같은 이 세계관은 언제 읽어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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