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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 ㅣ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인간의 감정이 너무나 강렬하면 실체화 할 수 있을까?
중학교때 같은 반 아이가 비둘기를 발로차서 다음 세상으로 보내버린 사건이 있었다. 본인 말에 의하면,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전봇대 밑에서 오바이트를 쪼아먹고 있는게 기분 나빠서 쫓아버리려고 단순히 발길질 하는 시늉을 했을 뿐이라는데, 결과적으로 비둘기는 허망하게 산화했다. (장렬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게) 그러나 당시의 이 친구의 심리상태를 헤아려보면 단순히 그런 시덥잖은 이유 때문에 발길질을 한 것만은 아닌것으로 풀이된다. 왜냐하면 이미 이 아이는 왕따로 임명돼서 연이은 괴롭힘과 용돈 상납으로 심신이 지쳐가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증오심이 비둘기를 향한 발길질이라는 형태로 실체화 한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완전 어거지가 아니냐고 해도 뭐 별로 상관은 없다. 의미 없는 얘기니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2001년에 <바람의 그림자>로 브레이크 하기 전에 집필한 <안개 3부작>중 하나, 데뷔 이 후 두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이 <한밤의 궁전>에는, 인간의 증오심이 얼마나 집요하며 어디까지 키워 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악의 화신이 등장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안개 3부작의 다른 작품들(안개의 왕자, 9월의 빛) 에 나왔던 '닥터 케인' 이나 '다니엘 호프만'과 같은 어둠의 왕과는 다르고, 사념의 실체화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식의 원혼이나, 귀신같은 존재라고 할까? 대략,'팀 버튼' 풍의 '원혼' 정도로 해두고 싶다.
두 아기를 끌어안은 한 남자가 한밤의 안개 속을 뚫고 도주중이다. 그 뒤를 강한 카리스마의 살인자가 뒤쫓고 있다. 간신히 추격자를 따돌리는 데 성공한 남자는 이상한 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노부인을 찾아가 아기들을 맡긴후, 상처입은 몸을 끌고 또다시 어딘가로 몸을 피한다. 이 노부인은 다름아닌 아기들의 친 할머니. 여자아이는 할머니의 곁에 남고, 남자아이는 증표가 될 펜던트와 함께 고아원에 맡겨진다. 그리고 아이들이 16살이 되는 해에....
아이들, 이란성 쌍둥이인 '벤'과 '쉬어'의 앞에, 기이한 환상을 몰고 다니는 살인자가 다시 나타난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이들의 아버지 '차테르기'는 어린 시절, 생명의 은인인 '자와할'이라는 자와 어떤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차테르기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자와할은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마침내 자와할이 차테르기의 가족을 몰살시키려 했고, 다행히 아이들만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 그런데, 16년이 지난 지금 그 사악한 자와할이 아이들을 찾아 다시 나타난 것이다. 한편, 비밀 결사단을 조직하고 있는 벤의 고아원 친구들이 벤과 쉬어를 도와 자와할을 막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자와할은 단순한 살인자일까?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요하게 아이들을 노리고 있는 이유는? 할머니의 말이 과연 진실일까? 이런 궁금증에, 기괴한 악몽, 초현실적인 현상, 20세기 초반 인도 캘커타의 독특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소녀들의 모험담이 어우러져서 사폰 특유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사폰의 소설들을 보면 시대적 배경이 대부분 1920 - 1940년 대에 머무른다. 이는 환상스릴러라는 그의 작품 색깔과 무관계하지 않아 보인다. 현대화된 도시와 미신이나 전설을 숭배하는 사람들, 달리는 증기기관차와 당장이라도 유령이 나올것 같은 오래된 저택,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폰의 소설속의 모든 것은 그러한 이 시대 특유의 혼재함에서 시작한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든다는 느낌보다는 환상과 현실이 원래부터 한군데 있었던 것 같은, 스팀펑크와 동화의 결합같은 이 세계관은 언제 읽어도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