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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짜 합리성에 대항하는 논리학 백신
스티븐 로 지음, 윤경미 옮김, 이종권 감수 / 와이즈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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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전 어느 우울한 봄날, 그녀는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을 하고 내게 다가와 이렇게 속삭였다. "도를 믿으시나요?"
이 정도까지 전형적인 작업멘트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어찌되었든 무슨 영문인지 모르던 나는 쿨하게 물리치지 못하고, 조상님을 제대로 못모셔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둥, 집안에 근심거리가 끊일날이 없다는 둥 하는 여자의 잡다한 얘기를 길바닥에 서서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슬슬 입질이 온다 싶었던지 무슨 절인가 어딘가로 가자는 얘기를 꺼내길래 그때서야 수상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화를 내며 자리를 피했다. 훗날, 그 어딘가에까지 따라가서 큰돈을 기부 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얘기를 듣고, 아니 왜 그런 허황된 이야기에 그렇게까지 속아넘어가는거지?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하나의 간편한 예일 뿐,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고 비논리적인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겨 이상한 신념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일일이 열거하겠다고 나서기도 힘들만큼 수두룩하다. 크게는 포괄적인 의미의 종교가 그렇고, 외계인, 종말론, 민간신앙, 자기계발서 등등....
방심한 중생들을 특정한 신념체계로 끌어당기는 덫을 두고 이책에서는 지적 블랙홀이라는 표현을 쓴다. 주로 탄탄한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심리적 방어력이 약한사람들이 더 쉽게 걸려들지만, 논리가 아닌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똑똑하다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터무니 없는 것을 믿지 말고, 감성으로 농락하려는 자들에게는 논리로 맞서라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적 블랙홀의 여덟가지 메커니즘 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의도한 바대로 상대를 조종하기 위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게 만드는 여러형태의 사기꾼들은 적어도 이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수법을 쓸 공산이 크다. 저자가 밝히는 사기꾼들의 여덟가지 수법은 다음과 같다.
1. 미스터리 카드 - 미스터리에 정당치 못하게 호소함으로써 당신의 믿음을 반론으로부터 보호하는 전략. 예를 들면 당신의 초자연적 믿음에 반대하는 과학적 증거에 대해 당신의 믿음은 과학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무작정 우기는 것이다.
2. "어쨌든 들어맞잖아!", 그리고 나팔총 전략 - 증거와 이론을 어떻게든 들어맞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 어떤 이론이든 그것이 아주 황당한 이론이라 할지라도 증거와 부합시킬 수 있다. 심지어는 개들이 금성의 스파이라는 이론까지도 말이다.
3. 핵폭탄 터뜨리기 - 일종의 물귀신 작전이랄까? 화의주의나 상대론적인 철학적 주장을 터뜨림으로써 모든 믿음을 합리성에 있어서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전략. 이 전략을 쓴다면 어떤 논쟁에서건 비길 수 있다. 그러다 위험이 사라지면 회의론이나 상대론을 간편하게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4. 의미적 골대 옮기기 - 의미 사이를 요리조리 왔다갔다 하면서 의미의 요지를 흐리고 반박들을 피하는 것이다. 예컨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의미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의미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식으로 말이다.
5. "난 그냥 알아!" - 어떤 믿음이 신 감지 장치나 초능력 같은 것에 의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계시적 경험의 상당수는 사실 망상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러한 주장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6. 거짓심오 - 진부하거나 거짓인 혹은 터무니없는 것을 타당하고 깊이 있어 보이게 하는 기술. 즉, 다양한 언어적 방편으로 자신이 인간 조건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얻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7. 일화 나열하기 - 대부분의 일화들은 전적으로 증거로써의 가치가 없으며 초자연적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더욱 더 가치가 없다. 하지만 일화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으며 특히 여러 일화들이 한데 모여서 제시되었을 때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다.
8. 조종 버튼 누르기 - 믿음을 형성하기 위해 진리에 민감하지 못한 특정한 기술들, 즉 고립, 통제, 불확실성, 반복, 감정적 조종에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기술은 많은 광신종교와 전체주의 국가들의 교육 프로그램의 핵심이 된다 이러한 기술이 일관성 있고 조직화된 방식으로 적용된 것이 바로 세뇌다
우리가 지적 블랙홀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일단 여기에 갇혀 어떠한 신념체계를 가지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이성이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지배하는 사람의 손에 제멋대로 휘말리게 되는 셈이다. 그건 그렇고, 예상외로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의 향연. 아고라 광장 한켠에 앉아서 어느 철학 강연을 듣고 온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