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역사 - 교양으로 읽는 시장과 상인의 변천사
박은숙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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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의 형태가 정말 다양해졌습니다. 전통적인 재래시장에서부터 백화점, 마트, 할인매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인터넷의 보급 이후에는 다양한 종류의 인터넷상점들이 그 위력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방안에 앉아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만으로 물건을 구입한다는건 십여년전만해도 꿈도 못꿀 일이였죠. 이 온라인상점은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도 없이 짧은 기간동안 우리사회에 완전히 정착해버린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전통적인 시장의 개념마저 바꾸어 놓았습니다.

요즈음은 모든변화들이 단기간내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몸도 빠르게 적응해가는것 같습니다. 불과 십년전의 일조차도 몸은 망각하고 있네요. 마치 원래부터 이랬던 것처럼, 인터넷 구매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을 떠올리기가 쉽질 않습니다. 전에는 어땠더라? 내가 어렸을 때는?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더 전에 더전에는 어땠을까 하는 점점 거슬러 올라가는 궁금증이 이 시장의 역사라는 책을 열어보게 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시대를 거슬로 올라갈수록 오늘날의 다양한 마켓의 형태는 하나로 수렴되어 갑니다. 전통적인 시장의 모습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 시장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하고 자리잡은 것이 19세기 말 개항기 이후라고 하네요. 예스러운 우리말로는 저자라고 합니다. 사극에서 자주 들어온 말이라 무척 반갑습니다. 이 이름의 변천사는 시장의 변천사와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개항기 이후로 시장의 형태도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물건을 사고파는 매매의 기능뿐만 아니라 지금은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는 사회적기능들까지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시장이라는 것으로 모이게 된다는 사실은 큰 놀라움이었습니다. 옛날의 시장은 마켓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정보전달의 장, 법집행의 장, 오락의 장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시장을 알면 역사가 보이네요. 그저 드라마에서 나오는 배경정도로나 여기고 있던 저잣거리가 바로 우리의 근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역사가 살아 숨쉬는 현장이었습니다.

한페이지 걸러 하나꼴로 등장하는 귀중한 사진들과 생각한것 이상으로 방대한 자료들을 동원한 세심하고 꼼꼼한 설명들은 흡사 우리 역사를 한바퀴 돌아보는 시간여행이라도 하고 돌아온것 처럼 생생합니다. 단지 시장의 변천사에 대한 흥미를 채워주는 것 이상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소중한 역사자료로서의 역할을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시장을 중심으로 한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과 역사의 변천에서는 과거를 돌아볼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비교해보는 작업을 통해서 현대화, 첨단과학화로의 진행과정까지도 간접적으로 미루어 들여다 볼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스피디하고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실감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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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뿔(웅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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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상대를 향한 증오심, 당장이라도 폭발한것 같은 분노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망자의 무덤에까지 욕을 보이고 싶을 정도의 사무친 원한이라면 그 골이 얼마나 깊을것인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제목이었지만, 이 소설을 끝까지 모두 읽고 나니 그제서야 제목이 품고 있는 그 뉘앙스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시종일관,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앞만보고 달려가는 한 젊은이의 처절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주인공인 리 앤더슨은 흑인 혼혈로 태어났지만 금발머리에 하얀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사람들에게는 백인과 같이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백인들을 향한 증오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동생이 백인들의 손에 의해 부당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주의가 팽배하던 그 시절에는 잘 알고 있다시피 흑인은 백인들과 동등한 입장이 아니었다. 인간이하의 존재, 백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비굴함이 몸에 배어 있는 그런 처량한 신세들이었다.

형의 소개로 미국 남부, 벅스톤이라는 마을의 한 서점에서 일을 하면서, 앤더슨은 마을의 꼬마 패거리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러던 중 알게 된 미모의 백인 자매를 복수의 대상으로 점찍는다. 앤더슨의 외모가 백인처럼 보이는 것이 무기라면 무기.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인 그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면서 처절한 복수의 길로 두 자매를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술, 폭력, 섹스가 반복되는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서술해 나간다. 감정의 기복이 그다지 눈에 띄지않는 인물들과,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것 같은 그들의 행동이나 가치관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음울하다. 이런걸 느와르라고 하던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자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고 있었을 온갖 소재들이 총출동하는 이 작품에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읽어보면 풍기문란 따위의 소란을 피울 정도로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서스펜스나 에로소설에는 훨씬 더 그로테스크하고 음란한 장면들이 등장하고 있다. 직접적이고 폭력적이라고는 해도 엽기적인 살해방법도 아니고(최근의 강도높은 작품들과 비교하면), 에로틱한 묘사에 있어서도 의미없이 수페이지에 걸쳐서 그것 자체에 공을 들인것 같은 느낌은 아니다. 어떻게보면 스트레이트한 표현은 피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오히려 표현이나 묘사보다는 인종차별,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서 무고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농락하다가 무자비하게 처벌한다는 그런 금기시되는 설정 자체가 더 큰 문제가 되었던게 아닌가 싶다. 요즈음 등장하는 강도높은 이야기에 익숙해있는 사람이라면 읽는데 큰 거부감은 없을듯하다. 물론 그래도 자극적인 내용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러나 소설이라는 것이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오락의 하나라고 하면, 어쩌면 직설적인 묘사보다는 이처럼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는 문학적인 언어들이 더욱 자극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시각적이고 직접적인 자극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나는 어느새 두뇌를 움직여 공상하는 즐거움을 잊어버린건 아닐까, 갑자기 섬뜩해지기도 한다. 표지에 실린, 어느 프랑스 영화에서 툭 튀어나온것 같은 여성의 사진이 소설의 분위기와 제법 잘 어울리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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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티쓰
사카키 쓰카사 지음, 현정수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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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끊어지지 않는 실과는 달리 신데렐라 티쓰의 주인공은 여자아이다. 아이...는 아니고 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여대생. 이번의 무대는 치과. 치과라면 한없이 겁에 질려버리는 여대생 사키가 여름방학동안 공교롭게도 치과에서 접수 안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 경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간다. 뭐 그런 이야기.

나도 사키처럼 치과라면 지레 겁부터 집어먹게 된다. 이것은 어렸을 때 겪었던 좋지 않은 기억이 초래한 비극이자 학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생 무렵에 내가 다니던 치과의 선생님은 외국영화에 나오는 교도소 간수같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셨는데, 아프다거나 그런말을 했다가는 마치 그런말을 기다리기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혼난다. 어린이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따위는 전혀 기대할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입안에 넘치는 침을 삼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이 되면 될수록,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넘치고... 이가 심하게 썩어서 너무 고통스러운데도, 치과만은 죽을만큼 가기 싫어서 볼이 퉁퉁 부은채로 몇날몇일을 반혼수상태가 되어 버티고 있었던 적도 있기 때문에 이런 사키의 기분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수 있다.

거기에 비하면 사키가 일하는 시나가와 덴탈 클리닉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모든 환자들을 손님이라 부르며 손님의 입장에서 서비스 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의사가 없다는 사실에 환자들은 굉장히 안도하게 될 것 같다. 치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하게 될만한 따뜻한 분위기의 치과.

처음에는 조심조심 일하고 있던 사키였지만, 시나가와 덴탈 클리닉의 사람들이나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조금씩 적극적으로 변해간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해나가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가는 과정을 배워 간다. 그런 과정속에서 치과공포증도 극복하고 덤으로,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재빨리 연인까지 손에 넣었으니 사키로서는 소득이 컸던 아르바이트라고 할수 있겠다. 때묻지않은 순수한 사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떻게보면 아직은 어린티가 남아있는 사키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간파해내는 관찰력과 총명함도 있어서 이곳에 오는 환자들이 각자 안고 있는 문제를 읽어낸다. 시나가와 덴탈 클리닉을 방문하는 환자들의 조금 이상한 행동이나 상태를 두고, 그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갖는데서부터 출발하는 치과만이 가능한 수수께끼 풀이가 이책에 실린 각 에피소드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해결됨으로써 당사자들이 안고있는 고민들이 말끔히 사라지게 되는 자그마한 비밀들, 그 소소함이 주는 느낌이 좋다. 아기자기한 일상의 미스터리라는 점에서는 끊어지지않는 실에서 보여준 사카키 쓰카사의 모습 그대로이다.

치과기공사인 요쓰야와의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가 귀엽다. 다정한 주인공과 영리한 탐정 역할의 관계가 우정이 아니라 연애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탓에 끊어지지 않는 실과 비교하면 조금 달콤한 느낌. 우정으로 엮인 관계도 좋았지만 이건 이것대로 또 멋지다. 사키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한 기분에 절로 미소짓게 되어 버린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약점과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작은 문제,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것만으로도, 혹은 그것을 돕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더 편하고 행복해질수 있다면, 행복이란 결코 멀리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정한 곳에서 다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아기자기한 행복을 만들어가는 따뜻하고 하트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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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1 뫼비우스 서재
칼렙 카 지음, 이은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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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3월의 추운 밤, 뉴욕타임즈의 기자인 존 무어는 친구인 정신과 의사 크라이즐러가 보낸 심부름꾼을 따라 어디론가 향한다. 불려 간 곳은 한 매춘소년이 특이한 방식으로 처참하게 살해된채 발견된 살인현장. 곧바로 이와 같은 수법의 범행이 이전에도 몇건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때는 1896년. 뉴욕 경찰총장으로 막 임명된 시어도어 루스벨트(훗날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다.)는 이 연쇄 살인사건의 해결을 위해 획기적인 특별 수사팀을 결성한다. 모든 인간의 행동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 좌우된다는 혁신적인 이론을 주창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크라이즐러를 수장으로, 뉴욕타임즈 기자인 존 무어, 뉴욕 최초의 여경 새러, 과학수사팀의 아이잭슨 형사형제등의 멤버가 모였다. 살인자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던 당시로서는 이단이라고 불릴만한 획기적인 방법들, 심리학을 범죄에 응용하는 현재의 프로파일링 기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이들은 범인의 성향과 내력을 추리해 살인자의 실체에 조금씩 접근해간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정체를 알 수없는 어떤 세력이 그들의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손을 뻗쳐오기 시작한다.

19세기말의 뉴욕을 무대로 벌어지는 엽기적인 소년 연쇄살인사건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 뉴욕 맨해튼의 거리와 생활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자료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글을 쓸수가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철저한 고증에 의해 그려진 뉴욕의 모습은 치밀하기 이를데 없다. 그 세밀한 묘사로 말할것 같으면 흡사 정밀한 미니어쳐세트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등장인물들의 주소와 번지수까지 표현한 밀도높은 뉴욕의 모습은 밤거리를 부유하는 썩은 공기의 냄새까지 맡아질 것처럼 선명하다. 도시 자체가 꿈틀대는 하나의 생명체같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은, 화자인 무어도, 크라이즐러도, 루스벨트도 아닌 뉴욕의 거리 그 자체라고 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모노톤의 이미지. 여명기인, 19 세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정신 분석의가 이단자나 괴짜 취급을 받는등, 대게는 섬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인물상에 엽기적인 범죄까지 포함해서, 한없이 음울하고 어두운 세기말의 풍경을 그리고 있을것만 같지만, 진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머러스한 면도 있고, 시대상 만큼이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개성이 이런 분위기를 중화시켜 준다. 지금은 범죄 수사에 있어서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프로파일링 기법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역사적인 현장에 타임슬립 할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다. 스토리, 인물조형, 배경의 묘사 어느 한 부분에만 힘을 쏟아부은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완벽을 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완벽주의가 느껴진다. 묵직하다. 사소한 부분까지 빼놓지 않고 꽉꽉 눌러담은 소설.

예전에 취미로 프라모델 디오라마에 몰두하던 때가 있었다. 정말 잘만든 외국의 명인들의 작품을 보면 메인이 되는 탱크나 장갑차를 세심하게 도색하는 것은 기본이고, 손수 자작으로 만들어낸 배경구조물(폐허가 된 집이라던가...), 병사들, 흐르는 물, 흙, 나무, 풀한포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정성을 다하지 않는 부분이 없다. 그 작은 프라모델 병사의 눈동자까지 제대로 표현해낸것을 보면 정말이지 아무리 취미활동의 일환이라고는 해도 장인정신이란 바로 이런것이구나 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수가 없게 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부류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완성도가 무조건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동종의 소설중 그 퀄리티만으로는 최상급의 속하는 작품인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의 빼놓을수 없는 또 하나의 매력이 바로 인물들간의 구도. 홈즈와 와트슨을 연상하게 하는 정신과의와 주인공의 관계. 이런 인물구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말할것 같으면 찾아보면 셀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들의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서 나는 일본작가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속의 세키구치 - 교고쿠도 콤비를 떠올렸다. 이를테면 정신과의사인 크라이즐러의 장광설은 듣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매우 즐겁다.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이 크라이즐러라는 인물을 지켜보는것도 또한 즐겁고, 이들 못지않게 확실한 개성을 부여받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 생동감이 넘친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간간히 불거져 나오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은 소위 깬다. 개인적으로는 살인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센 남자들이 유일한 여성인 새러의 앞에서 ㄸㅗㅇ이라는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새러의 입에서 먼저 그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공중에 몇센티 떠버린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아무튼 읽어보면 작가가 사소한 부분에까지도 공을 들였다는 것을 잘 알수있다. 본스토리외에도 즐길부분이 많다는 면에서는 매니아로 남게될 사람들에게 어필할만한 부분이 많다. 확실히 이 소설은 시리즈물에 적합하다. 책을 읽고 나서야 나중에 이 책이 시리즈물이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끝내기에는 이 잘 구축된 세계와, 개성이 골고루 배분된 캐릭터들이 너무 아깝다.

이 시대 이렇게 매춘을 하고 있던 소년이 많았다는 것은 놀라움이다. 어려운 시대상을 보게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처참한 사체의 모습등이 다루어지고 있지만, 절제된 묘사는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때로는 품위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프로 파일링을 통해서 떠오른 인물상을 통해 살인범을 추적해가는 과정은 아슬아슬하지만, 묵직함 만큼이나 어떻게 읽어도 스피드감만은 떨어진다. 그래도 그것을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이끌어 가는 힘이 있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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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문화사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돌베개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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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인류의 삶은 보다 편한쪽으로 진화되어 가고 있다. 달나라에 가는 세상이니 어쩌니 하는 케케묵은 비유가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손에 닿는것 하나하나가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은 것이 없고, 이만하면 모든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도 하루가 멀다하고 신기술, 신제품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발전속도가 빨라진만큼 사람들의 적응력도 덩달아 높아져서 이제는 정말로 획기적인 물건을 접해도 별 감흥이 없거나, 놀라움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리모컨이 망가지면 티비도 보기 귀찮고 비행기 탄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없어진지 오래이다. 휴대폰이 보편화 된것이 불과 십년정도 밖에 안되는데도,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 물건이 없던 옛날사람들은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는 생각들. 티비 사극 등에서 보여지는 옛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물론 여러모로 불편해보이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 시절 사람들만의 재미라던가 정취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오늘날의 필수품의 빈자리가 의외로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어느날 그 시대로 뚝 떨어진다고 해도 지금의 지식을 활용해서 왠지 나름대로 잘 살아갈수 있을것만 같다. 그런데 진짜로 과연 그럴까. 손닿는곳에 있는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삶이라는것을 상상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밤이 가장 그렇다. 해가 지고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고 나면 어땠을까. 세상이 온통 지금의 으슥한 밤거리처럼 어두컴컴했을까. 설마. 아마도 한치앞도 내다보기 힘든 말그대로 칠흙같은 어둠이였을거다. 조명을 켜고 촬영을 하는 드라마속 사극의 밤거리는 그 당시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상상하기 조차도 힘든 그 시절의 밤의 모습, 밤문화의 모습이 모두 담겨있다. 비록 우리 민족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16세기무렵부터 산업혁명 이전까지의 유럽과 미국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밤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지금과 같이 조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리라는 짐작쯤은 누구라도 할수 있겠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불편하던 불과 십여년전의 생활조차도 망각하고 사는 현대인들이 백년 이백년전, 혹은 몇백년전 사람들의 삶을 체감하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실린 내용들은 더욱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자료나 문헌들을 통해서 엿보는 이 시대 사람들의 밤의 생활상은 정말로 고난의 연속이고 힘겹기 그지없다.

비참하다기 보다는 어둠과 투쟁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것은 비단 하급계층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상류층 사람들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낮동안의 모든 활동은 중단될 수 밖에 없고 시각정보의 대부분이 차단된 상황에서의 사고도 잦았다. 밤에 대한 온갖 미신과 헛소문이 떠돌았으며, 특히 범죄에는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라서 밤에는 온갖 범죄자들이 판을치고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충격적이다. 어둠속에서 식사를 하고 그런 와중에도 향락을 즐기던 사람들, 잠에 대한 이야기, 남녀간의 애정행각에 관한 이야기등, 밤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옛날 사람들의 밤문화의 모든 것" 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자료가 되어 준다.

굵직굵직한 역사 속 사건이나 주요한 인물에 대한 자료와 비교하면, 정작 그 시대의 시대상을 들여다 볼수있는 보통사람들의 생활이나 문화에 대한 것은 그 수가 적다. 더더군다나 밤의 문화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의 생활상과의 격차로 따지자면 태양빛 아래서의 낮의 모습보다도 더욱 차이가 심한 시간인데도 말이다. 모든게 감추어지고 가리워지는 음습한 비밀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 밤이 곧 인류의 삶의 절반이기도 하다. 뒤에 실린 참고문헌의 수를 보면, 이 한권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가 20년에 걸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이 방대한 기록은 <밤의 문화사> 그 이전에 근대 인류 역사의 반쪽이기도 하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자료들과 중간중간 곁들여진 그림, 삽화등등, 이런 매우 흥미로운 기록을 한권의 책안에서 만날수 있다는 사실은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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