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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N25004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김연수 작가님의 작품을 이제 2/3정도 읽은거 같은데, 그의 장편은 깊이가 있고 많은 사전연구를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반면, 단편은 감성적이고 감각적이며 감동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랑이나니, 선영아>는 사실 장편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중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생각하는 김연수 작가의 장편과 단편의 느낌이 절반씩 섞인 작품이었다.
이렇게 찌질한데도 세련되고 공감이 가는 사랑이야기라니, 읽는 내내 즐거웠다. 단편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야기 중간에 순간순간 표현되는 작가님의 사랑에 대한 문장은 공감 그 차체였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105p)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106p)
주요 등장인물은 세명이다. 선영(직장인, 광수의 아내), 광수(증권맨, 13년간 선영을 짝사랑 후 결혼), 진우(작가, 선영의 옛사랑, 자유연애 신봉자?). 세명은 13년전 대학 동기이고, 선영과 진우는 오래전에 연인이었지만 진우가 사랑했던 기억조차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오래전에 헤어졌다.(광수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광수와 진우는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친구(?)인 상황인데, 광수가 진우에게 선영과 결혼한다는 걸 알리고 한 술집에서 선영을 소개시켜준다. 진우는 처음에 아름다워진 선영을 못알아본다. 그리고 곧 친구의 아내가 될 선영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후 세 사람의 기억, 의심, 사랑을 둘러싼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광수는 두 사람의 사이와 선영의 사랑을 의심하며, 선영은 좋아하는것과 사랑하는 것 사이에서 주저하며, 진우는 우정보다는 욕정(사랑이 아닌...)을 앞세워 선영에게 질척거리며 자신이 평소 주장했던 쿨한 사랑의 정의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기억이 남이 있지 않은데도 사랑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질투없는 사랑이 가능하기나 한걸까?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뮐까? 이 책에 그 답이 들어있다. 김연수 작가님은 천재다~!
˝왜 우리는 사랑을 ‘맺거나‘ 사랑을 ‘이루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그건 사랑이란 두 사람이 채워넣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집어넣어도 그 관계는 채워지지 않는다. 정열, 갈망, 초조. 망설임, 투정, 침착, 냉정, 이기심, 헌신, 질투, 광기. 웃음, 상실, 환희, 눈물, 어둠, 빛., 몸, 마음, 영혼 등 그 어떤 것이든 이 깊은 관계는 삼켜버린다. 모든 게 비워지고 두 사람에게 방향과 세기만 존재하는 힘,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원초적인 감정의 움직임만 남을 때까지 그 관계 속으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밀어넣는 일은 계속된다.˝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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