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실비 제르맹~!! 이 책은 정말 좋았다. 아름다운 문체, 묘사, 내용까지 완벽했음.
적절한 때에 이야기되지 않은 것은 다른 시대가 오면 순전한 허구로 간주된다.
어머니, 그녀의 목소리는 숨이 짧고 날카롭게 울린다. 아들에게 가족의 영웅담을 들려주던 시절 그 목소리에 깃들어 있던 따뜻한 억양은 사라지고, 웃음소리에 담겨 있던 문고 투명한 울림도 더이상 찾을 수 없다. 영웅담은 쓰레기가 되고, 기쁨 또한 모두 소진된 것이다. - P50
난파한 나치 독일에서 살아남은 이 어린 침입자 앞에서 하넬로레 외숙모는 어떤 감정토 드러내지 않는다. 그곳 독일에서는 마침내 하느님이 찬양을 받고 통켈탈 부부는 파멸하고 만 터였다. 그녀는 아이가 사건의 전모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부모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 달갑지 않은 이 조카를 조심스럽고도 세심하게 살핀다. 그러나 아이에게 대놓고 묻는 일은 삼간다. 클레멘스의 슬픈 종말에 대해서도, 아들이 떠나고 몇 주 뒤에 세상을 떠난 테아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다. 그녀는 부모와 나라와 이름을 모두 잃은 이 아이에게 동정과 불신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낀다. 곧 열세 살이 되는 소년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환경이나 새로운 신분을 제공한다고 해서 아이에게서 추악한 역사의 오물을 씻어낼 수 있을지, 아이가 겪은 이중의 상에서 헤방시킬 수 있을지 그녀는 의심한다. - P56
두사람은 도버 절벽 위에서 일어난 비극을 그후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마그누스 역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 저마다 자신이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조심스레 감당한다. 그들은 그 무엇도 부인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전부 털어놓고 싶다는 소망은 헛된 것임을 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상대방 없이, 상대방과 관계없이 경험한 것을 공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이 사랑이든 증오든 간에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현재이며, 각자의 과거 역시 이 현재의 눈부신 그늘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낼 따름이다. - P208
여기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어떤 이야기와도 닮지 않은 이야기다. 응축될 대로 응축된, 그래서 단어들이 당기만 해도 모두 부서져버리는, 그런 현실 속 삶의 응결체다. 아무리 저항력이 강한 밀도 높은 단어들을 찾아낸들, 괴리된 시간으로부터 온 이 이야기는 정신 나간 허구로 비칠 것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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