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좋다. 제목처럼 책이 무게가 좀 나가긴 하지만 이야기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모든 거리와 장소, 중요한 사건도 전부 기억할 수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완벽한 현실은 아니라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만사가 자기와 상관없이 지나쳐간다는 느낌. 이런게 어떻게 가능할까? - P10

어느 날엔가 거실에 커다란 지중해 지도가 걸렸다. 레이랜드는 지중해에 면해 있는 모든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고 불쑥 말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즉흥적이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자기에 게 중요한 모든 것을 요약하는 생각이었고 또한 자신을 옥스퍼드 에서 내몰아낸 삶의 허기를 표현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삼촌은 옷 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지도와 그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불가 능한 게 아니다. 너라면 믿을 수 있지. 당장 시작해라. 몰타어도 잊 지마!" - P13

이제 그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이고, 마른 담뱃잎 연기 를 현기증이 날때까지 폐 깊숙이 들이마셨다. 눈을 감았다. 이제까지 중요한 것은 언어였다. 모든 것은 이름이 불리고 이야기된 후에야 실제로 존재했다. 레이랜드가 찾아 나선게 아니라 그게 그에게 와서 부딪쳤다. 처음부터 그랬다. 언어없이 사물에 도달 하기를, 사물과 사람과 감정과 꿈에 닿기를 원할 때도 자주 있었지만 언제나 그 사이에 언어가 다시 끼어들었다. 언어로 이해해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할때면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곤 했다. 리비아와의 경우에만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 P21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원래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그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스로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해도, 자기말이 타인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하거나 이말때문에 자신이 남에 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기 때문이지. 나중에는 자신의 명료 함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아니라 이 말이 타인에게 끼친 영 향 때문에 번민해야 한단다. 다른 한편으로 속으로 혼잣말을 할 때면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이해가 깊어지기는 커녕 모든 것이 단편적이었고 서로 들어맞지 않는 조각으로 가득했지. 그래서 리비아에게 내 상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리비아는 내가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 P33

나는 리비아를 불편하거나 당황하게 할 염려가 전혀 없었 으니 아무 숨김없이 그녀에게 나를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무감각하고 말이 없는 벽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 그러니까 감 정에 신경 쓸 필요 없는 낯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달랐지. 듣는 사람은 리비아여야만 했다. 내 언어는 그녀의 영혼에 가닿고 그곳에서 이해를 얻어내야 했고, 이런 이해가 충분해야 나는 내 내면이 어떤 모습인지 깨달을 수 있을 터였다. - P35

네 언어에서 네 목소리는 어떠하 지? 너 자신에게는 어떤 울림이 있을까? 누구나 똑같은 울림 을 내는 시장에서나 은행 창구, 버스안에서나 전화 통화할 때를 말하는 게 아니다. 네 경험과 생각, 추억과 인상을 말할 때 네 울림은 어떨까? 네 불안과 실망, 리비아를 향한 슬픔, 런던 이나 트리에스테에 대한 향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그 자신만의 특별한 목소리는 어떻게 울리는지, 어떻게 말하고 상상하는지 묻는 일은 뭔가 위대하고 강력하다. - P46

카라……. 그는 소피아를 이렇 게 부른 적이 없었다. 카라는 오로지 리비아를 위한 단어였다. 그 사실이 소피아의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기껏해야 아주 작고 미세한 망설임이었을 것이다. 발작이 일어난 날 밤 에 소피아는 자기 집에서 그를 돌봤고, 그 후에는 매일 전화를 걸 었으며 저녁에 들르는 날도 많았다.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는 내내 소피아는 꾸준하고 믿음직스러운 동반자였으므로, 이따금 소피아가 이런 의미에서 리비아의 역할을 넘겨받은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 P56

It‘s just something that makes a moment stay and you don‘t forget that time that‘s all. - P64

어떤 단어가 일시적으로 생각나지 않는 경우야 물론 있지. 이렇게 깜 박 잊는 거야 놀랄 일이 아니야. 침착하고 낙관적일 수 있지. 금방 다시 생각날 테고, 일시적인 약점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 때 그 순간과 그 후에 이어진 몇 시간은 달랐어. 다리에서 떨어뜨려 강물에 가라앉은 물건처럼 단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 건 아니야. 하지만 내 어휘 가운데 많은 수는 영원히 미끄러졌을지도 모른다는 돌이킬 수 없이 사라 졌다는 일시적인 약점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실이라서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는 어둠 속으로 미끄러졌다는 속수무책의 공포가 밀려왔지. - P67

우린 ‘종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어. 단어는 어떤 일에서 경악을 덜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 그걸 발음하는건 해방이야. 하지만 경악을 더욱 크게 만들기도 하지. 그럴 때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가끔은 이 두 경우를 혼동하기 도 해. - P74

"내 생각에, 말의 아름다움이 이따금 자연의 아름다움을 잊게 했던 것 같다." - P84

살아오는 내내 삶이 드디어 시작되기를 기다려왔다는 기분이 들어. 마치 내가 온전히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런데 뭘 기다렸던 걸까? 시작하는 삶이란, 내가 살아 있으며 그걸로 충분하다고 주저 없이 말할 만한 현재란 뭘까? 알 수 없어. 뭘 기다리는지 몰랐다는 것뿐 아니라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현재가 뭔지 모른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어. 특이하고 혼란스러운 무지야. - P104

우리가 누군가를 또는 어떤일을 애타게 기다릴 때, 지금과 그것이 나타날 때까지의 사이에 놓인 시간과 나날은 견뎌내야 할 방해물에 불과해. 시간을 계산하고, 엑스 표시를 하며 지워나가지. 말로만 표현할 때보다 훨씬 안 좋아. 시간만 스쳐 보내려는 게 아니라, 이 기간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모든 경험도 삭제하려고 하지. 그게 중요하지 않으리라는 건 처음부터 확실하니까 말이야. 이걸 가장 잘 표현하 는 건 목표가 아직 멀리 있는, 증오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잠이나 알코올로 도피할 때야. 그럼에도 겪어야 하는 모든 일은 원치 않아도 겪게 돼.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대화에 제대로 참가하지 않고 내면의 시선을 돌린채 모든걸귀찮은 안개처 럼 그저 지나가게 두지 갈망하던 일이 찾아오면 경험할 것만 을 중요하게 여기는 거야. 그때까지는 경험을 내다버릴 수도 없으면서 숨을 참으며 삶을 중단해, 먼 목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경험을 과소평가하는건 정신 나간 짓이 아닐까? - P106

하지만 이건 그래도 행복한 경우야, 불안으로 독살된 잃어 린 시간 뒤에는 기다린 보람이 있는 시간이 오니까. 나는 이제 그런 시간이 없어. 내가 두려워하는 그 시점에 도착하면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 자리가 나에게는 모든 시간의 종말 이 될 거야. 지금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 이 종말이 최대한 빨리 오기를 모든 불안을 삼킬 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야 하나? 아니면 끝까지 싸워서 불안으로부터 남은 시간을 얻어내고 눈에 보이는 최후의 날들에 적합한 필사적인 현재를 쟁취 해야 할까?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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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4-25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가시는군요^^

새파랑 2023-04-25 23:22   좋아요 1 | URL
앗 출장 ㅜㅜ이었습니다 열심히 읽으려고 했으나 하나도 못읽었네요 ㅜㅜ

희선 2023-04-27 0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날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새파랑 님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새파랑 2023-04-27 09:23   좋아요 2 | URL
넵 감사합니다. 희선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열독하세요~!!

얄라알라 2023-05-01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만으로는 책의 무게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뭔가 좋은 이야기가 많이 담겨서 무거운 책이겠죠?^^

새파랑 2023-05-01 13:59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 때문에 다른 책을 못읽고 있습니다 ㅋ 시간도 없긴했지만 진도가 잘안나가네요 ㅜㅜ

레삭매냐 2023-05-01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이 묵직해 보이네요.

파스칼 메르시어의 책도 언젠간
읽어 보고 싶습니다.

새파랑 2023-05-01 14:00   좋아요 3 | URL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책이 묵직합니다 ~!!

2023-05-0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2 0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