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좋다 좋아. 이번주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가끔으로는 부족할 거예요. 노부인은 엎드린 자세 그대로 말했다. "그런 건 젊은 시절에 열심히 즐겨둬야 해요. 마음 가는 데까지. 나이 들어 그런 일을 할 수 없게 된 다음에는 예전 기억으로 몸을 따스하게 덥혀야 하니까요." - P12
넉넉히 한 시간여를 들여 아오마메는 노부인의 몸을 철저히 풀어주고 근육을 자극하고 당겨주고 관절을 이완시켰다. 그것은 상당한 아픔이 따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픔이 없는 곳에 해결은 없다 - P17
"좋아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아오마메는 말했다.
"다행이네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은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이상한 질문인지 모르겠으나, 어째서 그 사람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 객관적으로 봐도 당신은 대단히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니까요."
"당신은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리고픈 마음이 없는건가요?"
"현재로서는 없어요‘ 아오마메는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나요? 당신이 먼저 접근할 수 없는."
"사정도 조금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제 자신의 마음의 문제예요" - P18
수학의 세계를 방문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진행된다.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 현실세계로 돌아오면(돌아오지 않을 수는 없다), 그가 있는 곳은 이전과 다름없는 비참한 감옥이었다. 상황은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족쇄가 더욱 무거워진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수학이 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건 그저 일시적인 도피수단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오히려 현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만 하는 게 아닐까. - P49
사람이 자유로워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녀는 곧잘 자문했다. 하나의 감옥에서 멋지게 빠져나온다 해도, 그곳 역시 또다른 좀더 큰감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 P61
"좋아한 사람은 딱 한 사람 있어." 아오마메는 말했다. "열 살 때, 어떤 남자애를 좋아해서 손을 잡았어."
"열 살 때 남자애를 좋아했다. 그냥 그것뿐이야?"
"그것뿐이야." - P72
"내가 바라는 건 어느 날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나는 거야. 이를테면 길에서 마주친다든가, 같은 버스에 탄다든가." - P72
"아무리 얼굴이 변했어도 한번 보면 나는 알아. 못 알아볼 리가 없어." - P73
"어쩌면 그 사람을 영원히 못 만날지도 모르잖아. 물론 우연히 재회할 수도 있지. 나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끝까지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크잖아? 게다가 만일 만났다 해도 그 사람은 이미 결혼했을 수도 있고, 아이가 둘쯤 딸려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잖아? 만일 그렇게 되면 아오마메 씨는 그뒤의 인생을 내내 외톨이로 살아가야 해.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자기가 좋아한 사람과 맺어지지도 못한 채, 그런 생각을 하면 두렵지 않아? - P74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 P74
하늘에는 달이 두 개 떠 있었다. 작은 달과 큰 달. 그것이 나란히 하늘에 떠 있다. 큰 쪽이 평소에 늘 보던 달이다. 보름달에 가깝고 노랗다. 하지만 그 곁에 또 하나, 다른 달이 있다. 눈에 익지 않은 모양의 달이다. 약간 일그러졌고 색깔도 엷은 이끼가 낀 것처럼 초록빛을 띠고 있다. 그것이 그녀의 시선이 포착한 것이었다. - P83
달은 누구보다 오래도록 지구의 모습을 근거리에서 보아왔다. 아마도 이 지상에서 일어난 현상이며 행위 모두를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은 침묵한 채 말을 하지 않는다. 한없이 차갑게 적확하게, 무거운 과거를 품어안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는 공기도 없고 바람도 없다. 진공은 기억을 아무 상처 없이 보존하기에 적합하다. 어느 누구도 그런 달의 마음을 풀어낼 수 없다. 아오마메는 달을 향해 잔을 치켜들었다. - P111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대단히 소중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야." 노부인은 말했다. "그저 그것을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아주큰 뜻을 갖게 된단다." - P132
읽어줄 책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소리 내어 읽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어떤 책이 낭독하기에 적합한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바로 지난주에 읽은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섬을 꺼냈다. 마침 흥미로운 페이지들에 포스트잇을 붙여두어서 적당한 부분만 골라 읽을 수 있다. - P193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대단한 명언이다. 체호프는 작품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인생에도 똑같은 태도로 임했다. - P205
"티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와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나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해. 빛나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야."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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