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의 병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조재룡 옮김 / 난다 / 2022년 6월
평점 :
N22095
"날이 밝았어요, 당신만 빼놓고, 이제 곧 모든 것이 시작되겠지요. 당신, 당신은 절대로 시작되지 않아요."
너무나 읽고 싶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죽음의 병>을 읽었다. 지금까지 뒤라스의 작품은 <연인>,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여름비>, <히로시마 내사랑> 이렇게 네편인데, 이제 뒤라스의 작품은 다섯편을 읽었다.
<죽음의 병>의 줄거리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당신이라는 2인칭 주인공이 돈을 주고 몇일동안 한 여인과 관계를 가진다. 여자는 주인공에게 모든것을 해준다. 그리고 설득한다, 사랑을 하라고, 느끼면 된다고. 하지만 주인공은 어떻게든 사랑을 느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주인공은 지금까지 단한번도 누군가를 사랑해본적이 없었기에, 죽은 사람 이었기에... 자신밖에 몰랐던, 타인을 위해 울어보지 못한 주인공은 사랑을 할 수 없었고, 이는 곧 죽음의 병이었다.
[당신은 사랑하는 감정이 어떻게 불시에 생겨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여자가 당신에게 대답한다.어쩌면 우주의 논리에 갑작스레 끼어든 어떤 균열 같은 것에서요. 여자가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실수 같은 것에서요. 여자가 말한다: 의지 같은 것에서는 절대로 생겨나지 않지요.] P.63
[당신이 묻는다: 사랑하는 감정이 다른 것에서도 불시에 생겨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말해달라고여자에게 애원한다. 여자가 말한다 : 모든 것에서요, 저 밤새의 비행에서, 어떤 잠에서, 잠 속의 어떤 꿈에서, 다가오는 죽음에서, 어떤 낱말에서, 어떤 죄악에서, 스스로, 저절로, 어떻게 생겨나는지 모른 채.] P.63
결국 계약된 시간이 끝나고 그녀는 떠난다. 주인공은 그녀를 찾으려고 하겠지만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또다시 죽은 사람이 된다.
[당신은 여자를 알아보지 못하리라. 당신이 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반쯤 열려 있거나 감긴 눈아래 잠들어 있는 여자의 몸뿐이다. 몸들의 관통, 당신은 그것을 알아볼 수 없다. 당신은 절대로 알아볼 수 없다. 당신은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P.66
사랑은 억지로 되는것이 아니고, 자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얻을수도 없다. 사랑의 부재는 죽음일 뿐이다.
뒤라스는 <죽음의 병>에 이야기라고 할만한 걸 쓰지는 않았다. 모든 불필요한 언어를 삭제하고 딱 필요한 문장만을 담고 있다. 그래서 책도 대단히 얇다. 본문만 67페이지다. 수식어와 설명이 없다보니 대단히 난해하다. 그럼에도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배경만은 아주 선명하다.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랄까? 난해하지만 뭔가 어렴풋이 이해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지금까지 네번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아졌다.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 앞으로 여섯번은 더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