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인종이고 역시 자존심이나 경쟁의식이 강한 사람이 많아요. 작가들끼리 붙여놓으면 잘 풀리는 경우보다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나 자신도 몇 번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 P10
소설가만큼 넓은 마음을 갖고 포용력을 보이는 인종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소설가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라고 나는 늘 생각합니다. - P11
그런데 소설이라면 문장을 쓸 줄 알고 볼펜과 노트가 손맡에 있다면, 그리고 그 나름의 작화 능력이 있다면, 전문적인 훈련 따위는 받지 않아도 일단 써져버립니다. 아니, 그보다 일단 소설이라는 형태가 만들어져 버립니다. - P14
작가가 되겠다는 작정도 딱히 없었고 미친 듯이 습작을 써본 적도 없이, 어느 날 불현듯 생각이 나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첫 소설(같은 것)을 썼고 그걸로 문예지의 신인상을 탔습니다. 그리고 뭐가 뭔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직업적인 작가가 되어버렸습니다. - P15
소설 한 편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뛰어난 소설 한편을 써내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한 일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못할것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 P28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57
책을 읽는 습관이 일단 몸에 배면 그런 습관은 많은 경우 젊은 시절에 몸에 배는 것인데 그리 쉽사리 독서를 내던지지 못합니다. - P76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내가 진지하게 염려하는 것은 나 자신이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뿐입니다. - P77
나쓰메 소세키나 헤밍웨이도 동시대 사람들에게서 종종 문체에 대한 비판을 받고 때로는 야유를 받기도 했습니다. 좀더 말하자면, 나쓰메 소세키나 헤밍웨이의 문체는 일본인의 혹은 미국인의 정신의 일부로서 편입되었다, 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P94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상을 탔을 때, 당시 내가 경영하던 가게에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와 "그 정도의 소설로 괜찮다면 나도 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물론 불끈했지만, 동시에 비교적 솔직하게 ‘그래, 저 녀석 말도 분명 맞다. 그 정도의 소설이라면 아마 누구라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 P107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설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 P118
그다음에 할 일은 - 아마 실제로 내 손으로 글을 써보는 것보다 먼저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을 아무튼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닐까요. - P119
세상은 그렇다 치고, 어떻든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할일은 재빠른 결론을 추출하는 게 아니라 재료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축적해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P122
나에게 에세이란 굳이 말하자면 맥주 회사가 출시한 캔 우롱차 같은 것, 이른바 부업입니다. 정말로 좋은 소재는 다음 소설(본업)을 위해 챙겨둡니다. 그런 소재가 그득하게 모이면 ‘아, 소설 쓰고 싶네‘라는 기분도 저절로 솟아납니다. - P128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작가 중 한 사람이지만, 그의 작품은 ‘초기 쪽이 좋다는 게 일단 통상적인 정설입니다. 나도 그의 작품 중에서는 처음 두 편의 장편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그리고 닉 애덤스가 나오는 초기 단편소설을 가장 좋아합니다. - P135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라는 것이 이번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이런 멋진 직업, 이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 P140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확신이 내 안에 없었다면 아무리 배짱 좋고 태평한 나라도 어쩌면 침울해졌을지 모릅니다. - P167
자신의 내적인 혼돈을 마주하고 싶다면 입 꾹 다물고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혼자 내려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해야만 할 혼돈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발밑에 깊숙이 잠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 P195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는 대부분 흥미로운 조역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입니다.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소설에는 아무튼 괴팍한 조역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긴 소설인데도 읽으면서 싫증이 나지 않아요. 저절로 ‘어떻게 이런 놈이‘라는 생각이 드는 컬러풀한 인물들, 괴상망측한 인간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냅니다. 도스토옙스키라는 사람은 분명 엄청나게 거대한 뇌 내 캐비닛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지요. - P239
일본 소설로 말하자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도 실로 다채롭고 매력적입니다. 아주 잠깐 얼굴을 내미는 캐릭터라도 생생하게 살아 있고 독특한 존재감이 있습니다. - P240
이 자리에 이 인물이 필요해서 일단 내놓는다는 땜질 식 등장인물은 거의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생각해서 만든 소설이 아니에요. 분명한 체감이 있는 소설입니다. 말하자면 문장 하나하나마다 밑천을 털어넣고 있습니다. 그런 소설은 읽으면서 하나하나 믿음이 갑니다. 안심하고 읽을 수 있습니다. - P240
이름이라는 건 소설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 P244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면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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