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책.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내가 처음 목격한 나자의 죽음은 삶의 느낌, 즉 내가 막 알게 된 삶의 느낌을 앗아가버렸다. 나는 내가 죽을 운명이고, 나쟈에게 일어난 이상하고 무서운 일이 어느 순간 내게도 일어날 수 있으며 지상의 모든 생명체, 육체적·물질적 존재는 반드시 사멸하고 부패하여, 집밖으로 실려 나갈 때까지 나쟈의 입술을 뒤덮었던 연보랏빛 흑색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려움에 젖은 나의 영혼, 마치 무언가에 심하게 창피당하고 모욕당한 듯한 나의 영혼은 도움과 구원을 받기 위해 신을 찾았다. - P66

누구보다 게오르기 형이 그 새로운 생활의 모습으로 나를 고무시키고 들뜨게 했다. 내게 행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당시 형은 늘씬했고, 신선한 젊음, 맑고 훤칠한 이마, 빛나는 눈, 두 뺨에 물든 짙은 홍조로 몹시 아름다웠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모스크바 제국 대학교의 학생이었고, 내가 들어가게 될 김나지움을 졸업할 때 금메달까지 받았다. - P76

이렇게 나는 바스카코프도 올랴도 잊어버릴 테고, 심지어 내가 지금 몹시 사랑하고 있고, 커다란 행복을 느끼며 사냥을 같이 하고 있는 아버지도 잊어버릴 테고, 내게 낯익고 소중한 골목들이 있는 카멘카도 잊어버릴거야. - P80

학창 시절에 대해 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때 나는 아이에서 소년으로 변했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변화가 나타났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겉보기에 나의 생활은 매우 단조롭고 평범하게 흘러갔다.매일같이 등교하고, 저녁마다 항상 서글픈 마음으로 마지못해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고, 다가오는 방학을 고대하며 끊임없이 꿈꾸고, 크리스마스와 여름방학까지 며칠이 남았는지 항상 세보곤 했다. 아, 이 모든 날들이 더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 P100

이 꽃들이 그저 ‘담배‘라고 불린다는 건 후에야 알았다. 내가 이 냄새를 기억하게 된 까닭은, 그후 며칠 동안 처음으로 달콤하게 앓았던 사랑의 냄새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군에 사는 아가씨 덕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담배 냄새를 맡으면 항상 흥분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전혀 알지 못했고, 내가 평생 동안 담배 냄새를 맡기만 하면 즉시 그녀를, 분수의 신선함을, 군악대의 연주를 떠올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P104

‘도로 젊어지다‘는 한때 양조장에서 사용되던 말이다. 술에 취한 사람은 젊고 유쾌한 뭔가가 자기 안으로 들어와 달콤한 발효가 일어나고 이성으로부터, 일상의 얽매임과 규율로부터 해방된다고 말하고 싶어했다. 농부들도 보드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능한 한 마셔야지! 보드카를 마시면 사람 마음이 풀어지거든!" ‘러시아의 즐거움은 술 마시는 데 있다‘는 유명한 말은 겉보기와는 달리 전혀 단순하지 않다. - P128

그 겨울밤의 방울 소리, 눈 덮인 텅 빈 벌판의 황량한 밤, 그 놀라움, 추위, 어스름, 부드러움, 떨림 그날 밤 눈과 낮은 하늘이 하나로 합쳐져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냈다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앞에서 작은 불빛이 계속 아른거렸는데, 마치 겨울밤이 낳은 신비한 동물의 눈 같았다. 눈 덮인 들판의 밤공기, 너구리털 외투와 얇은 부츠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 모피 장갑에서 빼낸 아가씨의 따스한 손을 난생처음 내 젊고 뜨거운 손으로 잡아본 느낌,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어둠 속에서 사랑스럽게 반짝이던 아가씨의 두눈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 P154

‘죽음은 태양 같아서 죽음을 직접 바라볼 수 없다‘는 농부들의 말을 알지요? 바라볼 수도 없고, 바라봐서도 안 돼요.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어. 그가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여전히 걸어다니며 쉰 목소리를 내는 게 부끄럽다오. 그러나 이게 우리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잖소?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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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19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작품을 쓴 작가
투르게네프 보다 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


새파랑 2021-11-19 22:50   좋아요 1 | URL
책보면 좀 망했다고(?) 쓰여있던데 그렇게 폭망한건 아니었군요 ^^

2021-11-20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0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11-21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여러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새파랑 2021-11-21 12:3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거 같아요. 그래서 자전적인 책이 좀 더 와닿는거 같아요 ^^

서니데이 2021-11-21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도 러시아 작가이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네요.
주말에 미세먼지가 좋지 않습니다.
새파랑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1-11-22 07:43   좋아요 0 | URL
ㅋ 러시아는 광활한거 같아요 ^^ 좋은 한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