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외투.광인일기.감찰관 펭귄클래식 64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인 ˝니콜라이 고골˝, 사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한다면 고골의 작품을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나는 이제서야 ˝고골˝의 작품을 읽었고 좀 늦은감이 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명작 중의 명작이었다. 별 10개짜리 작품. ‘고골‘의 풍자와 스토리텔링은 현시대에 읽어도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내가 읽은 그의 단편집은 펭귄클래식에서 출판된 <코>, <외투>, <광인일기>, <감찰관> 네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네편 모두 당시 관료주의 사회의 타락과 부패를 풍자고 있는데, 이는 현재 시대에 적용해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이야기의 간단 줄거리와 감상평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코>

어느날 일어나보니 당신의 코가 없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8등관 ˝코발료프˝는 어느날 일어나보니 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잃어버린 코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간 그는 길에서 우연히 자신이 잃어버린 코가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코는 5등 문관의 장식을 하고 있었고, 그는 자신보다 높은 코의 계급 때문에 코에게 제대로 말도 못하고 코를 놓치게 된다. 코메디가 이니다. 코다 코.

[코는 커다란 깃을 높게 세운, 금실로 재봉된 제복과 영양 가죽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있었다. 모자의 깃털 장식으로 보아 그가 5등 문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는 누군가를 방문할 모양이었다. 그는 좌우를 둘러보고는 마부에게 ˝마차를 이리 대˝라고 소리 치더니, 그걸 타고 떠나버렸다.]  P.45


이후 시간이 흐르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코발료프˝의 코가 제자리에 있게 되고, 그는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간다.

<코>에서 고골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비정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비정상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는게 목적이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읽어버린건 ‘코‘였을까? 귀도 있고 눈도 있고 입도 있는데 말이다. 계급이 높을수록 콧대가 높아진다는 것을 풍자하기 위해 ‘코‘를 소재로 했을까? ‘코‘가 없어지고 나서 비굴해지는 ˝코발료프˝를 보면 왠지 코=계급 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코발로프˝의 이름에 ‘코‘라는 글자도 들어간다. (이건 농담입니다...)

[그러나 하나, 둘, 이것저것 고려하여 생각해 본다면, 심지어..., 하기야,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어쨋든 간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에도 무언가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 이와 비슷한 사건은 일어난다. 드물지만 일어나는 법이다.]  P.71



읽으면서 정말 웃겼지만  왠지 서늘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코‘마져도 계급으로 의인화하여 계급사회를 풍자한 멋진 단편이었다.



2. <외투>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단연 <외투>였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단지 자신의 일에만 매달리는 영원한 9등 문관일것만 같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가난하고 비루한 삶임에도 불구하고 큰 욕심없이 근검절약 하며 살아간다. 그는 추운 겨울에도 오래된 외투를 고치고 고쳐서 입고 다녔는데, 이제 더이상 외투를 고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결국 그는 그가 모아놓은 돈을 탈탈 털어서 비싼 새 외투를 장만하게 된다.

그런데 외투하나 바꿨을 뿐인데,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 그가 새 외투를 입고 나타나자 그동안 그를 무시했던 사람들의 태도는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고, 파티에게 까지 초대되는 등 그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게 된다.

[페트로비치가 마침내 외투를 가져온 그날이 딱히...몇월, 며칠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일생 중에 가장 찬란한 날이었다.]  p.92


하지만 그에게 행복은 어울리지 않았던 걸까? 파티에서 집으로 복귀하는 길에 그는 불량배들을 만나게 되고 그의 소중한 외투를 뺏기게 된다. 다음날 그는 경찰서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뺏긴 당사지가 문제라는 말을 듣게 되고, 회사 동료들은 외투를 잃어버린 그를 측은해하면서도 놀린다. ˝아카키˝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인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무시를 당하게 되고, 결국 외투를 찾지 못해 화병이 나서 죽게 된다.

[비록 그의 생애 마지막일지언정, 외투는 빛나는 손님이 등장하여 짧은 순간 가련한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황제나 세계의 정복자들에게 찾아온 그 불행이 그에게도 닥쳐온 것이다.]  p.108


하지만 그는 죽어도 죽을 수 없었다. 외투 때문에 죽은 그의 영혼은 외투를 찾기 위해 이승을 돌아다니게 되고, 결국 자신을 무시하고 책망했던 ‘중요한 인사‘의 외투를 뺏고난 후에야 그는 완전한 죽음을 맞게 된다.



외투 하나 잃어버렸다고 화병이 나서 죽는다는게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카키˝에게는 그 외투가 자신이 쏟아부은 마지막 희망이었고, 전부였으며, 처음 행복을 느끼게 한 것이었기에 그 소중한 것의 상실은 그만큼 그에게 뼈아픈 것이었다. 누구 하나 위로해주거나 괜찮다고하거나 도와주었더라면 그는 살지 않았을까? 외투는 그에게 물질적인 것 이상의 정신적인 것이었다.



3. <광인일기>

<광인일기>는 주인공인 ‘나‘가  쓴 일기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자의식이 강한 나는 러시아의 계급 사회에서 하급관리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모시는 국장의 딸을 짝사랑하고 있다. 어느날 그는 개들(Dogs)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가지게 되고, 개들(Dogs)이 주고 받는 편지도 읽게 된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개(Dog) 같은 상황인 걸까?

[˝나는, 왈!왈! 나는 왈!왈!왈! 몹시 아팠어.˝ 어, 이건 개잖아! 나는 사람처럼 개가 말하는 것을 듣고 정말로 놀랐다는 것을 고백한다. 하지만 요모조모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실제로 세상에는 유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p.120


그는 개들(Dogs)이 주고받는 편지를 훔쳐 읽게 되고, 편지 내용을 통해 자신이 짝사랑하는 국장의 딸이 한 시종무관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내고 분노하게 되며, 때마침 스페인 왕이 폐위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 결국 9급 관리라는 자신의 신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었었던 그는 미쳐버리게 되고, 자신은 하급관리가 아니라 스페인 왕족 ˝페르난도 8세˝라고 믿게 된다.

[오늘은 경축해야 할 날이다! 스페에는 왕이 있다. 그게 발견되었다. 그 왕은 바로 나다. 바로 오늘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사실이 번개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어떻게 스스로를 9등 문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p.138


이렇게 미친 그는 점점 스페인 왕이라는 생각이 강해져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 결국 심문관에게 끌려가게 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최후를 맞게 된다.



그는 왜 미쳤을까? 가난한 삶과 계급사회에서 오는 박탈감 때문에,직장에서도 사랑에서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당시 러시아 관료 및 계급사회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는 작품으로, 주인공은 미쳤지만 어쩌면 당시 러시아 사회가 미친게 아닌가란 생각을 해보았다. 



4. <감찰관>

이 작품은 희곡이다. 이 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완전 재미있게 읽었다.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한 지역이 있었는데, 무엇때문인지는 모르나 페테르부르크에서 감찰관이 온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평소 수많은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군수와 상류층은 감찰관의 방문을 극도로 두려워 한다. 그런데 이 지역에 정체를 알 수 없지만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젊은이 ˝홀레스타코프˝가 여관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고, 군수를 포함한 상류층은 그를 잠행한 감찰관으로 오인한다.

˝홀레스타코프˝는 그냥 망나니 였을 뿐이다. 하지만 지역유지들은 그를 감찰관이라 믿게 되고 그에게 잘보이기 위해 온갖 로비를 하게 된다. ˝홀레스타코프˝는 과연 정체를 들키게 될까? 이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희곡의 재미를 100%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희곡 작품은 당시 러시아 상류계층의 부정부패와 무책임함에 대해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어리석고 폭소를 자아낸다. 죄가 있어서 뒤가 구린 사람이 얼마나 비이성적이 되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지 잘 보여준다.




왜 ˝고골˝의 작품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평가받는지를 잘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 책에 실린 네 작품 모두 완성도가 높았고, 특히 가독성 측면에서도 대단히 잘 읽히는 작품들이었다. 러시아 특유의 풍자와 유머, 그속에 숨겨진 사회에 대한 비판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는 이책은, 러시아 문학을 좋아한다면 꼭 읽어봐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러시아 문학은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돠었다. 그렇다. 도선생님이 말한건은 언제나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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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09 08:08   좋아요 1 | URL
장바구니에 담으셨다니 보람이 있네요 ^^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10-09 0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고골도 빨리 입문하고 싶은데 마음만 바쁘네요.
러시아라는 나라는 작가들의 천국같아요**

새파랑 2021-10-09 08:0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에게 행운을 주는건 러시아 작가의 작품인거 같아요 😆

희선 2021-10-09 0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축하합니다 주말보다 연휴군요 쉬는 날 동안 즐겁게 걷고 책도 만나세요


희선

새파랑 2021-10-09 08:10   좋아요 1 | URL
희선님 감사합니다~!! 연휴에도 멋진 시 부탁 드려요 ^^ 즐거운 휴일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thkang1001 2021-10-09 0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이 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0-09 08: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연휴 보내세요 😄

하나의책장 2021-10-19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새파랑님도 이달의 당선작에서 빠지면 안 될 분이죠^^
늦었지만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1-10-20 07:31   좋아요 0 | URL
앗 ㅋ 감사합니다~!! 역시라는 말을 듣기에는 조금 부끄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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