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다. 이건 반드시 재독해야 하는 작품이다.

순간적인 담장이여, 벽에서 자라는 덧없는 식물이여! 벽을 기어 올라가거나 창문을 장식하는 식물 중에서도 가장 빛깔이 없고 가장 서글픈 식물이여, 그대가 우리 집 발코니에 나타난 날부터 그대는 내게 가장 소중해졌도다. 샹젤리제에 이미 가 있을지도 모르는 질베르트라는 존재의 그림자와도 같은, 그리하여 내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어서 술래잡기를 시작하자. 너는 내 편이야"라고 말해 줄 그대여, 연약해서 가벼운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지만, 계절이 아니라 시간과 관련되어, 때에 따라 거부되기도 하고 이루어지기도 하는 즉각적인 행복의 약속, 그래서 그만큼 더 즉각적인 행복을, 사랑의 행복을 약속하는 식물이여, 돌 위에 있으면서도 이끼보다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해서 한겨울에도 한 줄기 햇살에 싹을 틔우고 기쁨의 꽃을 피우는 강인한 식물이여.
(주변의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기분) - P356
이미 콩브레에서부터 질베르트의 미지의 삶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내 삶을 내던지고 그녀 삶 속으로 뛰어들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했던 내가, 지금은 질베르트가 너무나 잘알려지고 멸시받는 내 삶의 겸허한 종이 되어 편리하고도 편안한 조력자로서 저녁마다 내 일을 도와주고 나를 위해 여러 소책자들을 검토해 줄 수 있다면 엄청난 특혜일 거라고 생각했다. - P377
나는 너무도 질베르트를 사랑했기에, 길가에서 그들 집의 늙은 집시가 개를 산책시키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만 감동해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흰 구레나룻을 열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 P387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이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이미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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