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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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읽는가,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들을 아마 한 번쯤은 필히 들어봤을 것이다. 이 질문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요하리만치 따라다닌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나 생각해봐야하는 주제임이 틀림없다. 문학이 우리내 삶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문학의 효용은 과연 무엇에 있는가.

내가 생각한 답이 정답이라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적지 않은 문학을 읽어오면서 느낀 바로는 이렇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면 그 작품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제삼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내 모습에서 반성과 교훈을 얻기도 하고, 또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하는 위안과 감동을 받기도 한다는 것. 무심코 취한 어떤 행동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걸, 혹은 반대로 내가 이래서 그동안 상처를 받아왔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때 나는 비로소 한단계 나아진 삶의 태도를 갖추게 되는 듯하다.

이번 이승우 소설가의 산문집 『고요한 읽기』를 읽으면서 문학에 대한 그의 사유와 철학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고개만 끄덕였다 뿐인가,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배움과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소설에 대한 소설가의 사유를,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도무지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더랬다. 자신이 문학으로부터 얻은 인생의 통찰, 삶의 교훈,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 등은 내 마음에 와닿아 큰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였다. 지금까지 나는 에세이나 수필 장르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렇지 않다. 깊이 있고 큰 울림을 주는 수필이라면 두 팔 벌려 대환영이다.

‘나’를 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에 책은 중요합니다. ‘나’를 읽게 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 책을 통해 ‘나’를 읽을 때, 나는 ‘나’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같이 읽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타인과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자기에 대한 의심과 돌아봄이 없는 이해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읽기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어야 합니다. (7p)

문학에 유사종교적 기능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종교의 거울이다. 인간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38p)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의 동기가 도피인 경우가 있다. (…) 내부를 피해 외부로 달아난 어떤 사람은 외부에서, 그러니까 세상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산다. 그는 내부의 ‘나’를 만나기가 두려워서 외부에서만 산다. (…) 한순간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늘 마음을 들고 살아야 해서 힘들다. ‘자기 착취’가 그렇게 이루어진다. (…)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 자신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또 있을까?” (22~23p)

환심을 사기 위해 건네는 꽃은 환심을 살 수 있지만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환심을 사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꽃을 건네는 비순수가 사랑의 속성으로 받아들여진다. (…) 비순수의 표현을 통해서만 선언되는 순수가 있다. 사랑이 그렇다. (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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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민음의 시 308
김경미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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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 말해 버렸는데

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취급이라면」 부분

삶을 사는 게, 살아내야 하는 게 가끔씩 갑갑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울’과는 다른 감정이다. 너무 열심히 달려와서 지쳐버린 ‘번아웃’과도 다르다. 음… 버겁다는 표현이 조금 더 알맞은 듯하다. 앞으로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인생의 단계랄지 장벽이랄지 그런 것들을 떠올려 볼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숨이 턱 막혀온다. 그런 내게 위의 시 구절은 생각지도 못하게 큰 울림을 주었던 것 같다. 처음에 저 구절을 읽었을 때 뭔가 감동이 느껴지긴 하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되게 혼란스러웠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는 그 연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어느 날 혼자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일 초 전

친구와 절연했다는 걸 깨달았다

깨달음이 있으므로

입과 귀에서 그 친구를 없애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그 친구가 내게

나 또한 그 친구에게

우리는 서로 지나쳤으리라

멀리 온 정거장처럼 도를 넘어섰으리라

네가 억울하고 후련하듯

나도 후련하고 억울하리라

너는 나 없이도 친구가 많고

나는 친구 없이도 하늘이 맑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또 지나치지 않도록 버스에서

창밖을 본다

창 속에 말 없이 앉아 있는 나를 본다

멋진 밤이다

「지나치다」 전문

친구와 절연해본 경험이 다들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딱 한 번 있다. 그 친구와 너무도 명징하게 ‘손절’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거대한 파급력을 끼쳤던 경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영향이 긍정적이지는 않았기에, 언제나 나는 그때의 경험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할 때마다 애써 외면하고 도망치려 했다. 그리고 이 시를 만나니 그때의 나를 이제야 비로소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그 친구와 나는 서로 ‘도를 넘어섰’다. 그 애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억울하고 후련’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또다시 도를 ‘지나치지 않’기 위해 시적 화자처럼 나 또한 ‘창밖을’ 보고 그에 비친 ‘나’를 봐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과거의 나 자신을 반추하게 하는 시, 시를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아닐까?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 피가 될까봐

피가 씨가 될까봐

차라리 말을 할 수 없는 곳으로

한마디도 못 알아들을 루미니아로

(…)

말이 많아도

피가 튀지 않는 입들

한동안 루마니아를 사랑하기로 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루마니아에 말을 내려놓기로 했다

「늦가을 루마니아」 부분

(…) 내가 속았다 쾅! 내가 속였다 쾅! 실패했다 콰쾅! 너는 못났다 콰콰쾅! 끝장이다 콰콰쾅! 네가 싫다 쾅 콰콰쾅! 그 소리 막느라 한사코 청춘을 다 바쳤다 (…)

「피아노 소리」 부분

이 외에도 크나큰 울림이 느껴지는, 적잖은 감동을 주는 시들이 참 많았다. 현대시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이 시집이 요즘 역주행하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수한 이미지들만 나열해놓고 어디 한번 느낄 수 있으면 느껴보라지 하는 젊은 시인들에게, 이 시집을 보고 좀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독자들을 배려하는 시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아 너무도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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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르네 놀트 그림,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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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마거릿 애트우드 작품을 지금까지 단 한 권도 완독하지 못했다. 시도는 몇 번 하였으나, 모두 중도하차 하고 말았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아마 애트우드 특유의 문체가 나와 너무도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애트우드의 소설을 읽노라면... 모든 장면이 ‘프롤로그’처럼 읽힌다. 등장인물의 소개나 세계관의 설명이 일절 없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떡 하니 장면을 그릴 뿐이다. 마치 ‘프롤로그’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프롤로그들이 계속 이어지며 한 작품이 완성된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인물 소개와 세계관 설명이 너무나도 필요한데, 애트우드의 작품에서는 이를 찾아낼 수 없으니 결국 읽다가 덮어버리고 만 것이다.

『시녀 이야기』 역시 호평이 자자한 작품이라 꼭 한 번은 읽어보고 싶었다. 2년 전 패밀리데이 때 소설을 구입해서 시도해보았지만 역시나 개같이(?) 실패… 더불어 미드로 영상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시즌이 4개라 너무 길어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렇게 내 인생에 『시녀 이야기』를 읽을 날은 없겠다 싶었다. 그러던 차에 올해 패밀리데이 행사에서 『시녀 이야기 그래픽노블』을 발견한 것이다…! (어머 이건 사야해)를 속으로 외치며 난 이 책을 곧바로 집어들었다.



그래픽노블을 읽으면서도 나는 이러한 감상을 지울 수 없었다.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여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를 갖춘 소설이 아니라, 그저 세계관을 끊임없이 묘사하고 그 속의 인물들의 행동들을 그려내는 데에 그친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소설은 전쟁과 환경오염, 각종 성 질환 등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진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를 틈타 ‘길리아드’라는 전체주의 정부가 구성되어 계엄을 선포(!)하고 국민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특히 정부는 여성들을 여러 계급으로 분류하여 교묘하게 통제하고 착취하는데, 소설 속 주인공 ‘오프브레드’는 시녀 계급으로서 사령관의 아이를 잉태하도록 강요당한다.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작품은 계속 오프브레드가 세계관 안에서 겪는 일들을 그려내며 별다른 사건을 등장시키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닉’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사령관’과의 접점을 따로 만들면서 분위기가 고조되더니… 결말에서 갑자기 클라이맥스를 펑 하고 터뜨렸다. 작가가 정말 교묘하게 직조해놓은 그물에 제대로 월척당한(?) 기분이 들어 상당히 당황스러우면서도, 그 서사가 야기하는 도파민에 흠뻑 젖어 소름끼치는 쾌감을 만끽하는 기분도 들었다. 후속작이 34년 만에 나왔다고 들었는데,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도서전에서 『증언들』 구입해서 바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만약 나처럼 애트우드의 소설을 즐기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래픽노블로 접해보는 건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활자 만으로 상상하기에 부족했던 느낌을 그림으로써 완벽히 충족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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줍는 순간 - 안희연의 여행 2005~2025
안희연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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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문학동네 이달책 1호부터 3호까지 전부 다 ‘산문’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름부터 ‘문학‘이 들어가는 문학동네에서 ‘소설’을 내버려두고 굳이 산문만을 고집하여 이달책으로 고른 이유가 무엇일까. 특히 나는 여행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이번 이달책 3호 『줍는 순간』이 특히 달갑지 않았다. 산문도, 여행도 안 좋아하는 사람한테 ‘여행 에세이’라니;; 그럼에도, 안희연 시인의 글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구입하였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제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줍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줍느냐고요? 저를 찌르는 순간들이요. 저를 관통해가는 감정들이요. (10~11p)

책제목이 ‘줍는 순간’인 이유가 바로 위의 문장에서 드러난다. 시인님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바로 ‘줍기 위해서’라는 것, 무엇을 줍느냐 하면 자신을 ‘찌르는 순간들, 관통해가는 감정들’이라는 것. 줍는다는 표현은 ‘놓치지 않고 자각해내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굳이 여행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동안 ‘줍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줍는가. 나는 무엇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려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내가 내린 답은 ‘행복을 찾는 것’이다. 요즘 행복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행복이란 거창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답을 내렸다. 다시 말해 ‘앞’이 아니라 ‘옆’에 있는 것. 무언가의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얻는 행복은 너무 찰나에 불과하고 오히려 그 후유증, 속된 말로 ‘현타’가 더 크게 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행복이란 바로 내 옆에 있는 것,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야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을 놓치지 않고 이것들을 주우면서 살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나는 에세이 장르의 글도 그냥 읽고 덮으면 그만인 게 아니라,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통찰이 담긴 산문이 좋다. 널리고 널린 힐링 에세이에서 그저 글자 그대로를 읽음으로써 얻는 가벼운 힐링이 아니라, 책 속에 담긴 문장을 능동적으로 읽고 자신의 삶과 적극적으로 관련지으며 진정한 위로를 갖게 되는 산문이 좋다. 관심없는 ‘여행’이라는 소재의 산문이라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너무 좋았던 독서 시간이었다.

그 모든 우연을 헤아려보니 지금 이 순간이 더욱 특별해졌다. 그가 건넨 한 장의 시디는 이 모든 우연의 총합이었다. 나는 이 행운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43p)

[폴 발레리]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그때껏 그의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저 구절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모든 사랑은 와락 시작되는 것이니까. (99p)

문학은 필연적으로 언어를 통해 이야기해야 하는 장르였다. 사실에 대한 기록이든 감정에 대한 고백이든 상상을 통한 확장이든, 어쨌든 무언가는 말해져야 했다. 내 안에는 어떤 갈망이 있는가.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176p)

그때 그 여행에서 만난 스라바스티의 대인스님은 “인도인들 마음에는 전쟁(다툼)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매일같이 강가에 나와 몸을 씻고,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죽으면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 했다. 이번 생의 행복과 슬픔은 이번 생으로 끝난다는 것. 그래서 더 나은 삶, 더 크고 좋은 집에 대한 욕망으로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오늘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지속해나갈 뿐이라는 것. (199p)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이 질문은 어김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선의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열면 곧바로 돈을 요구하며 돌변했고, 믿지 못해 마음을 닫고 지나치면 참 좋은 사람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무 경계해도 안 되고 경계를 하지 않아도 안 되는 정말 어려운 곳이었다.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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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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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난 이런 물음에 빠져있다. ‘나는 왜 소설은 좋아하면서 에세이는 좋아하지 않는 걸까.’ 더구나 에세이라고 해서 다 싫은 건 또 아니다. 인생책으로 꼽는 에세이도 분명히 있다. 이런 모순적인, 아니 모순적이라기보다는 양가적인 데에는 이유가 분명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 이유를 찾느라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영하 소설가의 신작이자 베스트셀러 『단 한 번의 삶』을 읽으니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일단, 내가 에세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저자의 ‘리얼’한 경험이 너무도 ‘내밀’하게 담겨있다는 데에 있다. 허구를 기반으로 쓰인 소설과는 다르게 에세이는 실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에 온전히 즐기기가 힘들다. 뭔가… 타인의 아프고 힘들었던 경험들이 그저 가볍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달까?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사람의 인생이 나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이 사는 거고, 내 인생은 그와는 다른 또 나만의 삶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여기서 MBTI를 언급하고 싶다. S 성향이 96%나 나오는 것을 방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내가 좋아하는 소수의 에세이들을 살펴보니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다루고 있는 소재가 나의 관심분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문학과 삶]을 다루고 있는 『밑줄과 생각』(정용준), 『고요한 읽기』(이승우), [술]에 대해 쓰인 『아무튼, 술』(김혼비) 그리고 [카페 알바] 경험담이 적힌 『카운터 일기』(이미연) 등이 그러하다. 이런 소재들은 나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렇기에 이에 대해 깊이 탐구해놓은 혹은 리얼한 경험담이 담긴 글들이 내게 너무나도 재밌고 즐겁고 깊이 있게 읽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읽은 『단 한 번의 삶』은 어떨까. 소설가가 썼기에 [문학]에 대한 부분이 녹아들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제목에서도 ‘삶’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에 인생에 대한 통찰 또한 깊이있게 담겨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문학이라는 키워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삶에 대한 통찰 역시 전에 읽은 『고요한 읽기』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김영하 소설가의 부모님에 대해 자식으로서 그들을 회고하며 쓴 글들이 가득 있어서 그런지 내겐 너무 지나치게 내밀했다.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이 책이 억지로 떠먹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연유에서 나는 한줄평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라고 적었다. 베스트셀러에 대해 혹평을 남긴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되지만, 베스트셀러이기에 오히려 이런 글 하나 적어봤자 판매량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오히려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같다. 그런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글을 적는다. 부디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기분 나빠하지 않길 바라며, 또 누군가는 나의 감상에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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