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는 순간 - 안희연의 여행 2005~2025
안희연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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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문학동네 이달책 1호부터 3호까지 전부 다 ‘산문’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름부터 ‘문학‘이 들어가는 문학동네에서 ‘소설’을 내버려두고 굳이 산문만을 고집하여 이달책으로 고른 이유가 무엇일까. 특히 나는 여행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이번 이달책 3호 『줍는 순간』이 특히 달갑지 않았다. 산문도, 여행도 안 좋아하는 사람한테 ‘여행 에세이’라니;; 그럼에도, 안희연 시인의 글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구입하였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제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줍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줍느냐고요? 저를 찌르는 순간들이요. 저를 관통해가는 감정들이요. (10~11p)

책제목이 ‘줍는 순간’인 이유가 바로 위의 문장에서 드러난다. 시인님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바로 ‘줍기 위해서’라는 것, 무엇을 줍느냐 하면 자신을 ‘찌르는 순간들, 관통해가는 감정들’이라는 것. 줍는다는 표현은 ‘놓치지 않고 자각해내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굳이 여행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동안 ‘줍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줍는가. 나는 무엇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려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내가 내린 답은 ‘행복을 찾는 것’이다. 요즘 행복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행복이란 거창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답을 내렸다. 다시 말해 ‘앞’이 아니라 ‘옆’에 있는 것. 무언가의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얻는 행복은 너무 찰나에 불과하고 오히려 그 후유증, 속된 말로 ‘현타’가 더 크게 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행복이란 바로 내 옆에 있는 것,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야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을 놓치지 않고 이것들을 주우면서 살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나는 에세이 장르의 글도 그냥 읽고 덮으면 그만인 게 아니라,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통찰이 담긴 산문이 좋다. 널리고 널린 힐링 에세이에서 그저 글자 그대로를 읽음으로써 얻는 가벼운 힐링이 아니라, 책 속에 담긴 문장을 능동적으로 읽고 자신의 삶과 적극적으로 관련지으며 진정한 위로를 갖게 되는 산문이 좋다. 관심없는 ‘여행’이라는 소재의 산문이라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너무 좋았던 독서 시간이었다.

그 모든 우연을 헤아려보니 지금 이 순간이 더욱 특별해졌다. 그가 건넨 한 장의 시디는 이 모든 우연의 총합이었다. 나는 이 행운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43p)

[폴 발레리]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그때껏 그의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저 구절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모든 사랑은 와락 시작되는 것이니까. (99p)

문학은 필연적으로 언어를 통해 이야기해야 하는 장르였다. 사실에 대한 기록이든 감정에 대한 고백이든 상상을 통한 확장이든, 어쨌든 무언가는 말해져야 했다. 내 안에는 어떤 갈망이 있는가.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176p)

그때 그 여행에서 만난 스라바스티의 대인스님은 “인도인들 마음에는 전쟁(다툼)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매일같이 강가에 나와 몸을 씻고,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죽으면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 했다. 이번 생의 행복과 슬픔은 이번 생으로 끝난다는 것. 그래서 더 나은 삶, 더 크고 좋은 집에 대한 욕망으로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오늘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지속해나갈 뿐이라는 것. (199p)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이 질문은 어김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선의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열면 곧바로 돈을 요구하며 돌변했고, 믿지 못해 마음을 닫고 지나치면 참 좋은 사람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무 경계해도 안 되고 경계를 하지 않아도 안 되는 정말 어려운 곳이었다.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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