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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평점 :
<마담 보바리> - 귀스타브 플로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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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즘’이라는 철학 용어를 아는가.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을 좇아 자신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생각하는 허풍스러운 정신 상태’를 뜻한다. 쉽게 말해서 ‘과대 망상’ 등의 미래에 대한 꿈이 현재를 지배하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이 단어는 소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에서 유래되었다. <마담 보바리>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보바리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도대체 ‘보바리’는 소설 속에서 어떻게 나오길래 저런 단어가 만들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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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인생의 베일>, <주홍글씨>와 함께 4대 불륜 소설로 손꼽히는 <마담 보바리>는 주인공 ‘엠마’가 불륜을 저지르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엠마’가 ‘샤를르’에게 시집을 가는 내용, 2부에서는 ‘로돌프’와의 첫번째 불륜, 3부에서는 ‘레옹’과의 두번째 불륜이 전개된다. 청년들과 저지르는 불륜이 주된 내용이긴 하지만, ‘보바리즘’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부분은 아마 1부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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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는 의사 ‘샤를르’에게 시집을 가게 되면 지루하고 따분한 시골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정작 ‘샤를르’는 일과 식사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우직하다 못해 멍청한 남편이었다. 예상을 뒤엎는 결혼 생활에 ‘엠마’는 심각한 권태로움을 맞이하는데, 이때 어떤 후작의 파티에 초청을 받아 그곳에 가게 되며 엠마는 큰 충격을 받는다. 엠마는 그곳의 화려함과 우아함에 반했고, 돌아와서는 본인이 파리의 귀족처럼 사는 삶을 계속해서 꿈꾼다.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를 자각하며 앓아눕기까지 하고, 이때 ‘샤를르’는 일상의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이사를 결심한다. 그후 ‘엠마’는 이사간 그곳에서 ‘로돌프’와 ‘레옹’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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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엠마’의 행실을 보고 있으면 답답한 기분이 들긴 한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들을 찾아보니 ‘복장터진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그래도 무작정 비난하지는 못하겠다. 시골 생활과 멍청한 남편에게서 권태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나였어도 매우 따분했을 것 같다. 하지만 2부, 3부를 계속 읽다보니 의문스러운 점이 하나 생겼다. 과연 엠마는 로돌프와 레옹을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만약 엠마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두 남자를 연이어서 만나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엠마가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 ‘불륜’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사랑이 아닌, 그저 ‘자극’에 불과한 것 말이다. 이 부분이 ‘엠마’에 대한 동정심과 혐오감, 서로 다른 두 감정이 동시에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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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는 문장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공들이고 인물의 감정 및 분위기의 묘사에 충실하다는 평을 받는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기는 한다. 그냥 “놀랐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을
🗣 “크게 뜨고 있었지만 그 두 눈은 섬세한 피부 밑에 조용히 맥박치고 있는 피때문에 광대뼈 쪽으로 약간 당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라고 할 정도로 그 표현 수준은 정말 뛰어나서 그런 부분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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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그런 묘사가 지나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 “마침 날씨가 좋았으므로 빳빳이 풀먹인 모자, 금십자가, 갖가지 빛깔의 어깨걸이숄이 밝은 햇빛을 받아 눈보다 희게 번쩍였고 여기저기에 박힌 그 잡다한 색채가 프록코트와 푸른 작업복들의 어둡고 단조로운 빛깔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렇게 주변 풍경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를 담은 문장들은 지나치게 세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런 부분도 소설에서 필요하긴 하다. 독자가 소설 속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상상하는데 저런 표현들이 분명히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야기의 진행에 몰입하다가 이런 부분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흐름이 끊기고 집중이 안된다. 세부적인 표현들과 묘사가 정말 대단하다는 걸 알긴 알겠으나, 내가 아직 이런 부분까지도 즐기는 수준에 도달하진 못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