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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드라이브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평점 :
<스노볼 드라이브> -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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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내게 좋은 이미지로 자리잡혀있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이 내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젊은 작가 시리즈로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해당 작품에 많은 관심을 두는 편이다. (물론 바로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금전적인 한계가 있는지라…) <스노볼 드라이브>도 알라딘 홈페이지의 신간 추천 코너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내용을 보니 녹지 않는 눈이 내린다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SF소설이었고, 그런 장르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저절로 외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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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문득 디스토피아 장르를 다룬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 자체였다. 아마 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추천하는 북튜버 영상들을 많이 보게 되어 그런 것 같다. 김초엽 작가님이야말로 한국 SF소설의 대표 작가인데, 대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김초엽 작가님의 책이 아닌 다른 소설을 읽어보자고 생각을 했고,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작품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렇게 첫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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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내용을 다루자면 녹지 않는 눈이 전세계에서 내리는데, 방부제 성분과 비슷한 이 눈은 사람 피부에 닿으면 발진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 접촉하게 되면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어져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 괴설이다. 심지어 이 ‘방부제 눈’은 녹지 않는 탓에 매립 혹은 소각의 방법으로만 처리해야 한다. 이 소재만 놓고 본다면 ‘SF’와 ‘디스토피아’ 만을 떠올릴 수 있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도 내재하고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SF소설을 즐기지 않는 나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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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모루’와 ‘이월’의 서사 둘 다 내 마음을 울리는 듯 했다. 주인공 ‘모루’의 이야기는 엄마처럼 의지하던 이모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되며 시작되는데, ‘모루’가 엄마를 잃게 된 연유 및 이모에게 무의식적으로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음을 뒤늦게 자각하는 부분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이모의 흔적을 추적하는 부분은 스릴러의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먹먹한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주인공 ‘이월’ 또한 위로를 건네주고 싶은 아이로 묘사된다. 아버지에게는 눈엣가시로 취급받는다고 생각하고, 유일하게 마음을 내주었던 반려견이 죽고 난 후에도 그의 환영이 보이는 등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동정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인 부분을 섬세한 문체로 읽을 수 있는 것이 한국 문학의 매력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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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포주의) 분명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 작품은 정통 SF소설이 아니다보니 소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최소한 ‘방부제 눈’이 무엇을 계기로 내리게 되었는지는 나와야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결말이라도 시원해야하는데, 눈이 그쳤는지 혹은 안 그치고 계속 내려서 세상이 망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실종된 이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열린 결말도 이렇게 열린 결말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텐데 어째서 작가님은 결말을 왜이렇게 내셨지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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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두껍지 않은 분량에 참신하고도 따뜻한 내용과 가독성이 좋다는 점은 분명히 이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게 만드는 것 같다. SF적인 내용은 심오한 수준이 아니여서 좋았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이더라도 그 속에는 희망이 있음을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이 작품을 읽으니 또다른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읽고 싶고, 김초엽 작가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도 읽어보고 싶다. 나의 첫 SF 디스토피아 장편 소설은 성공적인 완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