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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평점 :
<애쓰지 않아도> - 최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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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님의 문장은 언제나 내 마음을 들쑤시는 듯하다. 어떤 상황 혹은 감정의 묘사를 예리하게 구체적으로 표현하시는 문장들이 읽기 쉬운 담백한 문체로 쓰여서 그런지 더욱 공감과 몰입이 잘 되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번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출간된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에서도 마음이 동하게 되는 문장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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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짧은 소설’인 만큼 분량이 워낙 적다보니 내용적인 측면에서 느껴지곤 하는 여운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단편집 <쇼코의 미소>에 수록된 <신짜오, 신짜오>라는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데,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응웬 아줌마’, 본인의 잘못이 아닌 일로 유일한 친구를 잃어버리게 된 ‘엄마’ 등의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은 이야기의 전개와 더불어 작가님의 문장력이 시너지를 발휘하여 독자들에게 더욱 큰 감동을 선사하는 듯하는데, 그런 점이 <애쓰지 않아도>에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그 문장들 중 일부를 옮겨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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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 내가 늘 꿈꾸던 내 모습, 우물쭈물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용기 있는 모습이 겨우 소주 몇 모금에 이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었나. (21p)
🗣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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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 챙]
🗣 데비는 자기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낙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데비와 나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사람은 자기보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데비를 질투조차 할 수 없었다. (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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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 꿈에 죽은 가족이나 반려동물이 나왔다고, 정말 꿈같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민은 그들이 부러웠고, 꿈이라도 좋으니, 환상이라도 좋으니 단 한번만이라도 그리운 존재들을 만나고 싶었다. (58p)
🗣 우리는 그저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이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어떤 자만이었는지 정민은 이제 아프게 안다. (61p)
🗣 아무리 생생한 꿈이라고 하더라도 꿈은 깨고 나면 유리창에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녹아 흘러내렸다. (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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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끝]
🗣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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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 “처음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까. 다른 사람들과도 헤어져 봤지만,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건 없더라. 다 다른 사람들이고, 다 다른 기억이니까. 새로운 경우에 적응이 안 돼.” (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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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
🗣 사랑은 갱신되어야 한다. 초기의 열정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니까. (108p)
🗣 어릴 때 꾸는 꿈은 바뀌기 마련이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꺾인 꿈은 다른 의미일 것이었다. 그 상처가 어떤 것일지 해주는 짐작할 수 없었다. (1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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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지를 않나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16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