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
정병권 지음 / 히읏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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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 - 정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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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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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마케팅 담당자님께 인스타 DM으로 도서 협찬 제의를 3번이나 받았다. 처음은 그 당시 읽어야 될 책이 산더미처럼 밀려있어서 거절했었고, 두번째는 하필 제안받은 책이 ‘자기계발서’여서 거절했다. (나는 자기계발서 전혀 읽지 않는다.) 사실 두 번이나 거절당했다면 기분 나쁘실 법도 한데, 이 책으로 또 한 번 제안을 주셨다. 히읏 출판사 담당자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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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받은 이 책은 인터뷰 유튜브 채널 ‘잼뱅TV’를 운영 중인 유튜버 ‘정병권’님의 힐링 에세이다. 사실 힐링 에세이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 터라 출판사의 제안을 수락하기 전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이 옳다’라는 진솔한 지지와 응원의 마음을 보내는 책’이라는 DM 내용이 내 마음을 움직여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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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출판사 담당자님께 정말… 정말… 죄송하지만… <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는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던 간에 그것은 언제나 그 당시의 최선이었으니, 후회스러운 과거의 자신에게 매몰되지 말고 가치있는 현재의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자는… 그런 희망찬 내용의 에세이일 줄 알았으나(물론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살아보니 이게 옳더라, 저게 맞더라’ 하는 등의 자잘한 교훈을 독자들에게 가르치려는 듯한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적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그래서… 나랑은 맞지 않았던 책이었던 것 같다… (마케터님 진짜 좋은 말만 쓰고 싶었는데, 너무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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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좋았던 부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의 저자는 ‘인터뷰 유튜버’로 다양한 사람들의 내밀한 속마음을 인터뷰해온 분이고, 그런 부분들이 책에도 나온다. 자궁경부암 4기 판정을 받으셨던 ‘샛별’님, 아오지 탄광촌에서 탈북하신 ‘최금영’님, FTM(Female to Male) 트렌스젠더 ‘짱그래’님 등등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알지 못하는 삶을 사시는 분들의 힘든 점과 그로 인한 속마음들을 알 수 있게 되어서, 그와 더불어 인터뷰를 하면서 경험했던 저자의 여러 고민들과 생각들을 함께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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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크게 동했던 내용은 ‘김경태’님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경태님은 CRPS로 인해 안락사를 생각하셨다고 한다. CRPS란 ‘복합부위통증증후군’으로, 신체 특정 부위에 무언가(바람 등) 살짝 닿아도 불에 타거나 칼로 베는 듯한 끔찍한 통증을 느끼는 희귀성 난치 질환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질병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과연 이 병을 실제로 겪게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내가 감히 ‘고통’이라는 말을 써도 될까 싶을 정도로 그 고통의 크기는 짐작조차 되질 않는다. 그러니 이 분께서 안락사를 다짐하셨다 하더라도 나는 함부로 말리지 못할 것 같았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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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을 ‘인생 힐링 에세이’가 아니라 ‘인터뷰 대담집’으로 출간되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보며 평상시에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할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며 그것들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는 그런 나의 바람과는 거리가 조금 멀어서 많이 아쉬웠다. (다시 한번 출판사 마케팅 담당자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들숨에 재력을 얻고 날숨에 건강을 얻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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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 가위 안전가옥 쇼-트 10
범유진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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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수 가위> - 범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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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다. 눈물 날 정도로 좋았다. 독서실에서 총무 일을 보면서 이 책을 읽었는데, 하마터면 눈망울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회원들을 맞이할 뻔했다. <아홉 수 가위>는 민음북클럽 커뮤니티에서 이 책에 대한 찬양의 글을 보고선 홀린 듯이 구매하여 읽은 책인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책을 추천해주셨던 분께 큰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나도 이 책에 대한 찬양의 글을 몇 자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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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각각의 소재나 결말의 여운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들이 있어 그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것은 바로,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아픔’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아픔을 기이한 현상 내지는 초능력적인 힘의 도움으로 결국엔 이겨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환상문학’적인 부분이 호불호를 갈리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환상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너무도 잘 읽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이 작품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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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던 주인공들의 아픔은 현실에서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는 ‘아홉수의 인생 슬럼프’(<아홉 수 가위>)부터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범죄로 가까운 이를 잃게 된 아픔’(<어둑시니 이끄는 밤>) 등등 작품마다 천차만별이다. 또한, 그를 이겨내는 방식도 블랙 코미디처럼 유쾌하게 풀어내기도 하고(<1호선에서 빌런을 만났습니다>) 성장소설처럼 주인공의 외적, 내적 성장 과정을 보이는(<아주 작은 날갯짓을 너에게 줄게>)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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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록된 네 작품을 모두 다 읽고 난 뒤에 긍정적인 기분이 들었다는 건 같았다. 물론 그 ‘긍정적인 기분’이라는 것도 통쾌, 위로, 감동 등등 다르게 느끼긴 했으나, 넓은 범주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는 건 네 작품 모두 같다. 어떤 책을 읽다보면 인물들의 처한 상황이나 그에 따른 인물들의 행동들이 너무 답답하여 읽으면서 화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홉 수 가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작품 초반엔 인물들이 안타까운 동정의 마음이 들다가도 마지막에 가선 그들을 응원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독자인 내가 더욱 행복해지는 마음이 든 것이 너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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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 붙잡고선 무작정 ‘이 책 읽어보세요!’ 하고 싶게 만드는 <아홉 수 가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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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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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 최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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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님의 문장은 언제나 내 마음을 들쑤시는 듯하다. 어떤 상황 혹은 감정의 묘사를 예리하게 구체적으로 표현하시는 문장들이 읽기 쉬운 담백한 문체로 쓰여서 그런지 더욱 공감과 몰입이 잘 되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번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출간된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에서도 마음이 동하게 되는 문장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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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짧은 소설’인 만큼 분량이 워낙 적다보니 내용적인 측면에서 느껴지곤 하는 여운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단편집 <쇼코의 미소>에 수록된 <신짜오, 신짜오>라는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데,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응웬 아줌마’, 본인의 잘못이 아닌 일로 유일한 친구를 잃어버리게 된 ‘엄마’ 등의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은 이야기의 전개와 더불어 작가님의 문장력이 시너지를 발휘하여 독자들에게 더욱 큰 감동을 선사하는 듯하는데, 그런 점이 <애쓰지 않아도>에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그 문장들 중 일부를 옮겨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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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 내가 늘 꿈꾸던 내 모습, 우물쭈물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용기 있는 모습이 겨우 소주 몇 모금에 이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었나. (21p)

🗣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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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 챙]

🗣 데비는 자기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낙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데비와 나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사람은 자기보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데비를 질투조차 할 수 없었다. (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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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 꿈에 죽은 가족이나 반려동물이 나왔다고, 정말 꿈같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민은 그들이 부러웠고, 꿈이라도 좋으니, 환상이라도 좋으니 단 한번만이라도 그리운 존재들을 만나고 싶었다. (58p)

🗣 우리는 그저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이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어떤 자만이었는지 정민은 이제 아프게 안다. (61p)

🗣 아무리 생생한 꿈이라고 하더라도 꿈은 깨고 나면 유리창에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녹아 흘러내렸다. (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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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끝]

🗣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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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 “처음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까. 다른 사람들과도 헤어져 봤지만,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건 없더라. 다 다른 사람들이고, 다 다른 기억이니까. 새로운 경우에 적응이 안 돼.” (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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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

🗣 사랑은 갱신되어야 한다. 초기의 열정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니까. (108p)

🗣 어릴 때 꾸는 꿈은 바뀌기 마련이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꺾인 꿈은 다른 의미일 것이었다. 그 상처가 어떤 것일지 해주는 짐작할 수 없었다. (1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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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지를 않나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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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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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 다자이 오사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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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침잠해가는 듯한 자기혐오적 감정의 묘사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인지 조금 읽기 힘들었다. 그 <인간 실격> 독후감을 피드에 올렸을 때 같은 학교 선배님께서 <사양>이라는 작품이 <인간 실격>보다 조금 순화된 느낌이라 말씀하시며 추천해주셨다. 선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확실히 우울의 무게가 <인간 실격>보다는 덜한 느낌이었고, 그래서 나와 더 잘 맞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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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의 주인공은 어느 몰락한 귀족 집안의 장녀 ‘가즈코’로, 그녀의 다른 주변인물들(이를테면 어머니와 남동생 ‘나오지’, 그리고 남동생이 스승처럼 따르는 소설가 ‘우에하라’)을 ‘가즈코’의 시점으로 바라보듯 전개되는 작품이다. <인간 실격>이 자전적 소설이었던 것에 반해 <사양>은 주체적인 여성의 목소리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와 <사양>의 ‘가즈코’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두 작품이 주는 느낌은 천지차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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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소재 및 장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등장인물들 중 ‘나오지’에게는 다자이 오사무의 전기 모습이, 소설가 ‘우에하라’에게는 후기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는데, 해설을 읽기 전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런 점이 여실히 느껴졌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나오지’는 아편 중독에 빠져 막대한 빚을 불려가곤 하였고 결국엔 자살을 택하는 마지막 모습이, ‘우에하라’ 역시 현실을 너무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나머지 술과 여색에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간 실격>의 요조와 비슷하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 “죽을 작정으로 마시고 있어. 살아 있다는 게 슬퍼서 견딜 수 없어. 외롭다느니, 쓸쓸하다느니 그런 한가로운 게 아니고, 슬퍼. (후략)”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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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인간 실격>보다 <사양>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아무래도 ‘가즈코’ 덕분인 것 같다. ‘가즈코’는 ‘우에하라’를 열렬히 사모하는 모습을 보이고, 또한 그녀는 앞으로 ‘사생아와 그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될 상황 즉,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된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가즈코’는 ‘우에하라’에게 남은 인생을 의존하려 하지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기로 마음을 굳게 먹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주체성이, <인간 실격>의 어둡고 파멸적인 세계관과 달리 희망적인 여운을 선사하는 듯하다. 

🗣 전, 처음부터 당신의 인격이나 책임에 대한 기대는 없었습니다. 저의 한결같은 사랑의 모험을 성취하는 것만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바람이 완성된 지금, 이제 제 가슴은 숲속의 늪처럼 고요합니다.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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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물거품 안전가옥 쇼-트 8
김청귤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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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물거품> & <셰이프 오브 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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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물거품>은 ‘인어공주’의 서사를 모티브로 삼은 ‘퓨전 퀴어’ 소설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들어 책을 구매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인어공주’의 이야기가 동성애로 변모할 수 있나 싶은 궁금증이 매우 컸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의 장르를 구태여 ‘퀴어’로 단정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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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책 속에서 두 주인공을 두고 대놓고 ‘여성’이라 지칭하는 장면도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 속에서 2장과 3장에만 해당할 뿐이고, 1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동성애라기 보다는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의 사랑’으로 보고 싶다. 인간이 감히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마치 신과 같은 그런 초월적 존재와의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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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내용만 살짝 소개하자면, 섬사람들을 위해 바다에 기도를 올리는 무녀 ‘마리’가 바다에 빠진 것을 초월적 존재 ‘수아’가 구해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언제나 혼자였던 ‘마리’와 ‘수아’는 서로를 대하는 다정한 태도를 통해 뼛속깊은 외로움을 서로 치유하고 치유받으며 점차 가까워진다. 그러나 때마침 불어닥친 태풍에 섬사람들은 이를 ‘마리’의 탓으로 돌리며, ‘마리’가 요괴에 빠져 사느라 기도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때문에 사람들은 ‘마리’와 ‘수아’를 죽이려 하고, 이로 인해서인지 두 사람은 더욱 더 깊고 슬픈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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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렇게 좋아?”

🗣 “응. 내 목숨보다 더. 영원히 사랑할 거야.”

🗣 “영원은 없어.”

🗣 “내가 있다는 거 알려줄게.” (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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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1장의 내용은 독자들을 서글프고 아프고 애달픈 사랑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다.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처절한 사랑을 보면서 내 가슴이 다 짓물러지는 듯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2장과 3장의 내용은 1장과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록 주인공은 같았지만, 어느 한쪽이 기억을 잃는 등 1장과 완전히 다른 소설을 읽는 듯하여 몰입이 많이 깨졌던 것 같다. 1장의 이야기를 쭉 끌고 나갔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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