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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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 다자이 오사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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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침잠해가는 듯한 자기혐오적 감정의 묘사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인지 조금 읽기 힘들었다. 그 <인간 실격> 독후감을 피드에 올렸을 때 같은 학교 선배님께서 <사양>이라는 작품이 <인간 실격>보다 조금 순화된 느낌이라 말씀하시며 추천해주셨다. 선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확실히 우울의 무게가 <인간 실격>보다는 덜한 느낌이었고, 그래서 나와 더 잘 맞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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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의 주인공은 어느 몰락한 귀족 집안의 장녀 ‘가즈코’로, 그녀의 다른 주변인물들(이를테면 어머니와 남동생 ‘나오지’, 그리고 남동생이 스승처럼 따르는 소설가 ‘우에하라’)을 ‘가즈코’의 시점으로 바라보듯 전개되는 작품이다. <인간 실격>이 자전적 소설이었던 것에 반해 <사양>은 주체적인 여성의 목소리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와 <사양>의 ‘가즈코’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두 작품이 주는 느낌은 천지차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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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소재 및 장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등장인물들 중 ‘나오지’에게는 다자이 오사무의 전기 모습이, 소설가 ‘우에하라’에게는 후기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는데, 해설을 읽기 전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런 점이 여실히 느껴졌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나오지’는 아편 중독에 빠져 막대한 빚을 불려가곤 하였고 결국엔 자살을 택하는 마지막 모습이, ‘우에하라’ 역시 현실을 너무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나머지 술과 여색에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간 실격>의 요조와 비슷하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 “죽을 작정으로 마시고 있어. 살아 있다는 게 슬퍼서 견딜 수 없어. 외롭다느니, 쓸쓸하다느니 그런 한가로운 게 아니고, 슬퍼. (후략)”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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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인간 실격>보다 <사양>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아무래도 ‘가즈코’ 덕분인 것 같다. ‘가즈코’는 ‘우에하라’를 열렬히 사모하는 모습을 보이고, 또한 그녀는 앞으로 ‘사생아와 그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될 상황 즉,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된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가즈코’는 ‘우에하라’에게 남은 인생을 의존하려 하지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기로 마음을 굳게 먹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주체성이, <인간 실격>의 어둡고 파멸적인 세계관과 달리 희망적인 여운을 선사하는 듯하다. 

🗣 전, 처음부터 당신의 인격이나 책임에 대한 기대는 없었습니다. 저의 한결같은 사랑의 모험을 성취하는 것만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바람이 완성된 지금, 이제 제 가슴은 숲속의 늪처럼 고요합니다.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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