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것들 달달북다 6
김지연 지음 / 북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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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서포터즈2기

1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곳은 2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쓰는 대형 카페, 게다가 홍대입구역 출입구 바로 앞에 있는 ‘초역세권’의 카페였기 때문에 손님들이 정말 많았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또한 개인 카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그래서 근무 시간동안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커다란 낙이었다.

그 많은 직원들 중 ‘연애’와 관련한 질문이나 밸런스게임을 정말 좋아하는 동료가 한 명 있었다. 진짜 ‘이런 것도 얘기한다고??’싶을 정도로 연애와 관련한 온갖 소재의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한줄평에도 적은) 이것이었다.

“내 애인이 사실 양성애자라면, 어떨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생각을 굳이 왜 하나, 싶어서 답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던 것 같은데, 그 질문을 하셨던 직원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친구들이랑 술자리 갖는다고 할 때, 이성이 끼어있으면 반대하고 동성끼리 먹는다면 별 반대 없이 보내잖아요? 근데 양성애자면 모든 술자리가 신경쓰일 것 같아요.”

이런 얘기로 독후감의 서두를 꺼낸 것은 바로 이번에 읽은 김지연 작가의 <지나가는 것들>의 내용과도 맞닿아있기 때문이었다. ‘내 애인이 양성애자’라는 가정을 ‘동성애자’의 시선으로 전개하는 이 소설은, (비록 위에서 언급한 직원분은 이성애자이긴 했어도)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한다고 느껴졌다. 사실 위 직원 분의 질문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내 애인을 믿는다면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굳이 신경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가는 것들>의 내용처럼 만약 다른 이성과 같이 있는 사진을 봐버린 동성 연인이라면… 그것만으로 애인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박살날텐데, 그렇다면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상황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생각을 오래 하게 하는 이 작품 <지나가는 것들>이 나는 정말 좋았다. 살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점을 붙들어 사색에 잠기게 한달까. 단편인 만큼 자세한 줄거리는 따로 소개하지 않겠으나, 위의 감상으로도 어느 정도의 내용을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원래 김지연 작가의 작품은 거칠고 과격한 어투로 쓰였다는 느낌이 강해서 계속 피해왔는데, 이 작품으로 김지연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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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3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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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제목만 보고는 따듯한 소설일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했으나,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앞선 한줄평에서도 밝혔듯이, ‘식빵 굽는 시간’과 ‘가족의 기원’ 모두 가족이라는 관계가 일그러져버린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중 더 인상 깊었던 <식빵 굽는 시간>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식빵 굽는 시간>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여진’과 그의 아버지, 이모, 그리고 죽은 어머니. (방랑자 같은 남자 주인공이 나오긴 하는데 이는 넘어가기로 하자.) 암투병하다 죽은 어머니는 임종을 앞둔 직전까지 병동에서 딸의 면회를 수락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거부당했다는 생각이 든 주인공은 이 경험이 마치 트라우마처럼 그녀의 일상에 영향을 꾸준히 끼치는데, 이는 곧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소설 중반까지도 밝혀지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는 후반부에 엄청난 반전으로 밝혀진다. 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충격이 배로 느껴졌던 감상이었다.

(덧. 리뷰가 평소보다 짧다고 느꼈다면, 맞다. 서평을 되도록이면 짧게 써달라는 출판사의 말마따나 최대한 내용을 간추리고 요약하고자 했다. 길게 쓰는 것도 힘들지만, 짧게 쓰는 것 역시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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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 그래픽 노블
아메 데용 그림, 이수은 옮김, 윌리엄 골딩 원작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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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작품을 읽고 있지 않았던 이유는 아무래도 ‘번역’에 대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언제나 번역의 중요성이 화두에 오를 때면 등장하는 게 바로 민음사의 ‘파리대왕’이다. 그래서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도 읽을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후기가 좋은 <파리대왕>을 찾을 수 없었다. (혹은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여 지금까지도 <파리대왕>은 계속 묵혀두고 있다가, 최근 민음사에서 ‘그래픽 노블’ 버전의 파리대왕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패밀리데이를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냉큼 할인받아 구매하여 곧바로 읽기 시작하였다.

다 읽은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소감은, 괜히 ‘고전’이라 칭송받는 작품이 아니구나… 엄청나다! 라는 감상이었다. <파리대왕>은 순수한 아이들이 끔찍한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의 비참함을 적나라하고 잔혹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아갈 만하다고, 그래도 인류애는 존재한다고 믿는 나같은 사람들을 마치 콧방귀 뀌며 비웃는 듯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반문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만약 작품 안에서 조난을 당한 인물들이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과연 사람들이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며 상부상조하는 삶을 이룩해내었을까? 전혀. 오히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자 감상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더욱 인간성을 선연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 같아서, 그 모습이 너무도 동감되어서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되는 수작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결말이었는데…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에 대해서는 더이상 첨언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다만, 이런 결말이 아니었다면 아마 단순한 비극으로만 그려졌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서, 아이들의 끔찍한 본성과 순수한 본성이 확연히 대비되는 결말이어서 그 여운이 더욱 묵직하게 와닿을 수 있었다는 점만은 꼭 말하고 싶다. 아… 너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꼭 이 책을, 이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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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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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2023년 아일랜드에서 출간되어 부커상을 받은 이 작품이, 2024년 대한민국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을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예언자의 노래>는 아일랜드에 전체주의(파시즘) 정부가 들어서서, 그로 인해 한 가정이 파탄나게 되는 과정 하나하나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분명 이 작품을 두고 비록 허구이지만 ‘경고’이자 ‘시뮬레이션’으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진짜 그럴 줄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소설은 노조에 참여한 남편을 정부에게 빼앗기는 아내 ‘아일리시’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아일리시는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돌보고 있고, 넷이나 되는 아이들도 부양하고 있다. 즉 아일리시는 잃을 게 많은, 다시 말해 지켜야할 것이 너무 많은 ‘엄마’이다. 그렇기에 소설에서는 아일리시에게서 남편부터 자식들까지 하나씩 그것들을 차례로 빼앗고 부수는 과정을 선연하게 비추고 있어, 그 처절한 비극을 지켜보는 것이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약 40년 전의 우리나라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많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런데……. 12월 3일 윤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를 계기로, 한낱 과거의 역사인 줄만 알았던 것이 뼈저리게 현실적인 순간으로 체감될 줄 전혀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예언자의 노래>에서 그리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진짜 우리 삶의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소름끼치는 공포가 피어오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도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읽어야만 했다. 왜일까. 이렇게 고통스러운 소설을 굳이, 왜 읽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사실 문학에 어떠한 ‘효용’이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하다고도 믿는다. 이전에 올린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리뷰에서도 밝혔듯, 문학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추체험’이다. 그 간접적인 체험이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그 다양한 시각과 시선으로부터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나와는 다른 존재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문학이 어떤 방법으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1인칭’이라 답할 것이다. 이를테면, 세상을 고발하는 방법으로 문학 말고도 기사나 뉴스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저널리즘’의 방식은 가장 직관적이지만, 3인칭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국가에게 폭력을 당하는 국민에 대해 쓴다고 치자. 이때 저널리즘의 경우에는,

[군인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눴다.] 고 적을 테지만, 문학은 위와 다르게

[나는 군인이 저지르는는 총질의 표적이 되었다.] 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점은 그 피해의 참상과 고통을 훨씬 더 깊이 몰입하여 체감할 수 있게, 즉 ‘절감’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이해와 공감의 깊이가 훨씬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언자의 노래>는 지금 이 시국을 겪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작가의 상상에 불과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작품은, 결국 지금의 우리나라에 대한 ‘경고’이자 ‘시뮬레이션’이게 되어버렸다. 부디,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정말 슬프고 아프고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더더욱 좋았던 <예언자의 노래>의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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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비들
데니스 루헤인 지음, 서효령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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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자신의 딸에게도 ‘씨발’ ‘꺼져’ 등의 욕설을 서슴지 않는 엄마 ‘메리 페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그런 엄마가 딸을 잃으면서 눈에 뵈는 것 없이 폭주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초반엔 다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주인공의 성격이 거칠어서 도무지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점은 곧, 그 딸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더더욱 처절하고 선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한줄평에서 말한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 전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복수가 완벽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것은 아니다. 다만 매우 거침없고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독자로서 나는 이 소설을 읽을 때 페이지를 쉽사리 놓을 수 없이, 그 전개 속도에 나를 맡겨둔 채 책을 읽어내려갔다.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는 페이지터너의 소설을 찾는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이 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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