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지돈 지음, 윤예지 그림 / 마음산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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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 정지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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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읽어보는 정지돈 작가님의 소설이다. 정지돈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서 많은 말을 들어왔다. 글이 되게 독특해서 소설이든 에세이든 작가님만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라던지, 아는 게 되게 많은 사람이 쓴 것 같은 글이라서 이해하기 어렵다 라던지… 사실 올해 6월에 열렸던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민음사의 <…스크롤!>을 구입했었으나, 극악의 난이도라는 후기가 잇따라 들려와 선뜻 책에 손이 가지를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짧은 소설집’으로 출간된 정지돈 작가님의 작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이 책을 통해 정지돈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입문해보자는 생각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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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짧은소설집’ 중 조해진 작가님의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책에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있었고 분량도 각 30페이지 정도의 살짝 짧다 싶은 단편소설 같았던 반면,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는 총 열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있고 분량도 5-6페이지 정도 되는 작품도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정말 ‘짧은’ 소설들이 실려있었다. 진정한 ‘초단편’ 소설들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는데, 대충 ‘이런 사연이 있더라’하며 소개하는 차원에서 마무리를 짓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 짧은 분량 속에서도 기승전결이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있는 작품도 있었다. 또한 이야기 속으로 몰입이 너무 잘되어서 금방 읽어버린 작품도 있는가 하면, 낯선 소재들이 대거 등장하여 ‘이게 뭐람…?’하게 만드는 작품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게 아주 괜찮은 인상을 남겼던 작품들을 아주 살짝 조심스레 톺아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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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겠다]

어느 기자가 ‘호텔 베인스’에서 22년을 묵은 ‘안드레아 마르티니’를 취재하러 간다. 그를 만나 순조롭게 취재하던 중 그 기자는 편집장에게 연락을 받는다. 두 달 전 ‘안드레아 마르티니’가 목을 메어 죽었다는 사실을. 기자 앞에서 취재에 응하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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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계]

‘현우’와 ‘승재’는 베니스로 여행을 갔다. 현우는 갑자기 클럽에 가고 싶다며 승재에게 동행을 권유하고, 둘은 검색하여 나온 유일한 베니스의 클럽 ‘클럽 피콜로 몬도’를 가게 된다. 클럽에 가기 전 들른 바의 바텐더는 그곳에 가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남기지만, 둘은 이를 무시한 채 그곳에 가게 된다. 결국 무슨 일이 벌어졌냐면…(스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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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베를린 테겔 공항에서 캐리어를 분실한다. 실은 도난당한 것이 아니라 배기지 서비스 센터에서 표류 중이었는데, 문제는 테겔 공항이 일처리가 느려터진 것으로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현금과 노트북, 세 달 동안 입을 옷 등 모든 게 들어있는 캐리어 없이 베를린에 오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마주할 불안은, 소설 속에서만으로 족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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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허구이며 사실과 유사한 지명이나 상황은 우연의 일치임을 밝힌다]

삼촌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삼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 그러나 곧 딜레마에 봉착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쓰게 된다면 아웃팅의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허구라고 밝히면 써도 괜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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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자기계발]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지.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과 자기계발서를 쓰는 사람.”

 “자기계발서를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사람은?”

 “그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177p)

주인공은 ‘자기계발’에 미친 듯한 ‘희정’을 보면서 한심한 마음이 들면서도 SNS 팔로워 수가 급증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희정에게 묘한 부러움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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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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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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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도 후반에 접어든 지금 왜 갑자기 ‘20’년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는지 궁금해 할 것 같다.(아님 말고…) 사실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역대 젊은작가상 중에서 가장 큰 논란이 있었던 때다. 바로 김봉곤 작가님의 <그런 생활>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이 작품 때문에 모든 책이 환수조치되어 <그런 생활>이 삭제된 판본으로 다시 보급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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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궁금해졌다. 사람 심리가 하지 말라면 괜히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지 않은가. 어떤 부분이 논란이 되었는지 직접 읽어본 뒤 판단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찰나 우연히 방문한 중고 책방에서(알라딘, 예스24 아님) 김봉곤 작가님의 작품이 수록된 버전의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발견하였다. 심지어 특별보급가의 중고 가격이라 가격이 한 3000원 정도? 였던 것 같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울림이 스쳤다. ’어머 이건 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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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입해서 책을 펼쳐보니 이게 웬걸, 예상치 못하게 그 해 대상 작품이었던 강화길 작가님의 <음복>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읽는 동안에는 소름끼치는 불편한 현실감이 느껴지면서도 다 읽은 뒤에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한 충격적인 결말의 여운을 느꼈던 것이다. 스포일러를 배제하고 싶어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악의 없는 순수한 무지’가 어쩌면 가장 악독하게 남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정도로만 말하겠다. 작품과 더불어 뒤에 붙어있는 오은교 평론가님의 작품 해설도 정말 좋았다. 마치 머릿속에 막연하게만 존재하던 감상이 해설을 통해 정연하게 정돈된 느낌이었다. <음복>이 수록되어있는 단편집 <화이트 호스>를 빠른 시일 내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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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서 말했던 김봉곤 작가님의 <그런 생활>에 대해 말해보자면, 읽으면서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이 아니라 작가님의 실화를 담은 ‘에세이’를 읽는 것 같았다. 주인공 이름도 ‘봉곤’이고, 다른 등장인물 중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K’라는 알파벳으로 불리는 익명의 인물도 있고 하니 그런 것 같다. 조금 더 ‘소설’처럼 보이도록 각색하거나 소재만을 빌려와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었다면 논란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전의 작품 중 <여름, 스피드> 등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던 것을 감안해보면, 거의 사실처럼 느껴지도록 쓰는 게 작가님만의 집필 방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자체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내가 그 작품 속 인물이라고 가정해보니 꽤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논란이 생긴 그 연유가 납득이 되어 많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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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그랬어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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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그랬어> - 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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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작가님의 작품은 <더 셜리 클럽>이 처음이었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내용의 작품이었기에 ‘엄청’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던 차에 <호르몬이 그랬어>라는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발견했다. 단편이 세 편 수록되어있는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였고, 장편(더 셜리 클럽)을 읽어보았으니 작가님의 단편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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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그랬어>는 밝고 따뜻한 <더 셜리 클럽>과는 달리 아주 불쾌하고 어두운 내용을 담은 단편들의 모음집이었다. 수록된 세 편의 작품을 간단히 톺아보자면, 가장 먼저 수록된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에는 양다리…를 넘은 삼다리(?)를 걸친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심지어 이 주인공은 연애의 상대에 남녀를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표제작 <호르몬이 그랬어>는 문자로 이별을 통보했던 전남친이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나 본인의 결혼 사실을 통보하자, 주인공은 모친의 연애 상대와 잠자리를 가지려 한다(?!?!). 이게 무슨 불쾌하고 불편한 내용인지… 싶었다. 마지막 작품 <총>은 죽은 연인을 떠나보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는데, 그의 마음에 공감이 되어 슬픈 감정이 들었다기보다는 그저 한없이 어둡고 우울하기만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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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호르몬이 그랬어>에 수록된 세 편의 작품은 지금까지 박서련 작가님이 쓰셨던 작품들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수록된 단편들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의 역할을 하는) 에세이 <……라고 썼다>를 읽으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당시의 제가 삼십대 초반인 저처럼 작품을 쓸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저 또한 이십대 초반의 저처럼은 쓸 수 없습니다. (1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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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책은 작가님이 등단하기도 전인 이십대 초반에 쓰셨던 단편들을 엮은 작품집이기 때문에 지금과 많이 다른 분위기를 풍기었던 것이다. 이 짧은 에세이에는 작가님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본인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괴로워했던 마음이 <총>이라는 단편에 녹아든 것 같기도 했고, 작가 자신이 과거의 스스로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수록된 단편들 보다 오히려 작가님이 본인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쓴 에세이 <……라고 썼다>가 이 단편집에 실린 이야기들 중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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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내용과 별개로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있다. 바로 ‘가격’이다. 단편 세 개가 실려있다는 점에서 ‘소설 보다’ 시리즈와 ‘트리플’ 시리즈는 같은 맥락에 있는데, ‘소설 보다’ 시리즈는 약 3000원 언저리의 가격대인 반면 ‘트리플’은 12000원…? 출판사가 일부러 값을 올려 받기 위해 비싼 각양장으로 만든 것인지, 어쨌든 납득이 되지 않는 가격이다. 중고 서점에서 반값 가까이에 구입해서 망정이지, 제값주고 이 시리즈를 사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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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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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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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박상영 작가님의 작품은 얼마 전에 피드를 올린 <1차원이 되고 싶어>와 더불어 <대도시의 사랑법>, 이렇게 총 두 권이다. 두 권 모두 공통적으로 성적 소수자(게이)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로서, 단지 인물들의 나잇대가 20대냐(대도시의 사랑법), 10대냐(1차원이 되고 싶어)의 차이 그리고 분량이 장편이냐 단편이냐 정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믿음에 대하여>는 앞선 두 권과 상당 부분에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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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느껴졌던 (전작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작품의 ‘초점’이었다. <대도시의 사랑법>이나 <1차원이 되고 싶어> 모두 ‘사랑’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믿음에 대하여>는 보다 더 현실적인 소재들과,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듯한 외적 요인에 집중하는 듯했다. 대표적인 예로 표제작 <믿음에 대하여>의 ‘임철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철우’는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코로나로 인해 ‘매출 폭락’이라는 직격탄을 맞는다. 더군다나 이자카야의 주소지도 하필 ‘이태원’이다. 다들 기억할지 모르겠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원의 어느 게이 클럽에서 이른바 ‘슈퍼 전파’가 일어났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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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되었던 사람들 중 강제 아웃팅이 되던 경우도 있었고, 그 때문에 확진되었음에도 검사를 받지 않고 숨어 지내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때문에 그 시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게이들을 싸잡아 욕하기도 했고, 그 탓에 이태원의 상권은 90% 가량이 떨어지게 되기도 했다. 박상영 작가님은 이런 현실적인 요소들을 <믿음에 대하여>에서 여실히 드러내었다. 나는 군 복무 시절, 훈련소에 있을 때 그 소식을 들으며 ‘이 시국에 클럽을 왜 가냐’면서 화를 내었던 기억이 있는데, 실은 클럽을 갔다는 사실 자체에 화를 낸 것이 아니라, 게이들을 싸잡아서 그들이 문제라고 욕을 했던 것 같다. 양심의 가책이 많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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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퀴어 문학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취향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들의 사랑 자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작품 보다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냉담한 시선들을 고발하듯 그려내어 읽는 이로 하여금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믿음에 대하여>는 정말 좋았다. 읽는 동안에는 가독성도 좋고 술술 읽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다 읽은 뒤에는 지금까지의 나 자신의 사고방식을 반성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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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거의 출간되자마자 바로 책을 구매했기 때문에, 사은품으로 ‘북토크 초대권’을 받아 그곳에 가서 작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기자님들과의 일화이다. 작가님은 이 작품으로 문학 기자분들과 많은 인터뷰를 하셨다고 하는데, 이번에 유독 1-5년차의 신입 기자분들을 많이 뵈었고, 그분들께 ‘사회생활의 PTSD를 느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믿음에 대하여>는 사회 초년생들의 애달픈 사회 생활의 시작을 하이퍼리얼리즘 틱한 생생한 묘사로 그려내어 씁쓸한 공감과 위로를 많이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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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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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 최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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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완독하기까지 총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문장을 적는 나도 당황스럽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수록된 작품이자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가 내게는 너무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뭘 말하려는 건지, 다들 감동받았다고 하는데 어디서 감동을 느껴야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고, 그래서 난해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때문에 2020년에 구입하여 첫 작품을 읽은 뒤에 그대로 방치해두고 군입대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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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책을 살 경제적 여력이 마땅치 않은 탓에 알라딘 중고 서점을 애용하게 되었다. 안 읽는 책들을 중고로 내다 팔아버릴 생각에 책장을 뒤져보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출간한지 몇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높은 값을 쳐주는 탓에 곧바로 팔까 생각도 하였으나 한 작품만 읽고 팔기는 조금 아까울 것이라는 생각에 그래도 몇 작품 더 읽어 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좋은 작품을 내다 팔려고 했다니… <쇼코의 미소>만 나와 맞지 않았을 뿐, 다른 작품들은 정말 너무 좋았다. 조해진 작가님의 <단순한 진심>을 읽을 때에도 문장이랄지 표현 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마음을 표현한 문장 하나하나도 마음에 와닿음을 느꼈고,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우울하면서도 따듯함이 느껴지는 수작이었다. 수록된 모든 작품을 톺아보고 싶지만, 늘 그렇듯이 인스타그램에서 허용하는 글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지와 영주>에 관한 이야기만 조금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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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던 터라 우리 아버지의 애통함이 얼마나 배가 되었을지, 어떻게 마음을 감당하셨을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장례식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바이트에 가야했던 나는, 아빠가 술을 드시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눈물을 쏟아내듯 꺼이꺼이 우셨다는 말을 엄마와 동생을 통해 전해들었다. 취기를 빌려서 잠시나마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드러냈을 , 엄마랑 동생은 아빠의 그런 감정적인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당황스럽고, 안타깝고, 위로를 건네고 싶어도 어떤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부모를 잃은 자식이 필연적으로 겪는 통한의 감정은, 영원히 모르고 싶지만 언제가는 닥쳐올 것임을 알기에 너무나 막연하면서도 가장 두려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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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우리와 같이 살게 되었다. 전까지는 할아버지께서 손자 손녀, 특히 나와 동생을 정말 이뻐해주셨고 우리도 그걸 알았기에 할아버지를 많이 따르고 좋아했다. 그러나 같이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은 정도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쌓여만 갔고, 결국엔 그것이 터져 할아버지의 언성은 높아지고 우리는 할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중간에 있던 엄마 아빠도 계속해서 지쳐갔고, 결국 다시 할아버지와 따로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조금은 진솔하게 그때의 마음을 꺼내어보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슬픔보다는 그때 조금 참아볼걸 하는 후회의 마음이 컸던 같다. 그때 당시의 나는 집에 들어가는 싫을 정도로 너무 지치고 힘들었기 때문에, 슬퍼하는 마음이 적은 것에 대한 죄책감은 들더라도 그러한 슬픔이 구태여 생겨나지는 않았다. 사람 마음이란 뜻대로 다룰 없다는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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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을 치르며 조문객들을 맞이하던 우리 엄마의 친한 친구분을 뵈었다. 엄마 역시 시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다는 적지않은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더군다나 할아버지와 손자손녀 사이의 갈등까지 중재해야했기 때문에, 감당해야했던 스트레스가 결코 작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우리 아빠한테 그런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도 없기에 동네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방법으로나마 짜증과 스트레스 속에서 잠시 벗어날 있으셨다. 때문에 친구분은 우리가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이야기 서로가 힘들었던 양측의 마음을 대강 알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친구분은 장례식장에서 만난 우리 엄마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시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너희가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너희 마음 편할 있도록 정을 떼고 싶으셨나보다. 그래서 마지막엔 너희에게 모질게 대하셨나보다.” 

다른 어떠한 장황한 말보다도 우리 가족에게 위로가 되는 한마디였다. 우리 엄마나 동생과 나는 물론, 아빠도 말을 전해들으며 격하게 동의하셨고, 더불어 본인의 부모님께 마지막에 예를 다하지 못한 같은 후회와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낼 있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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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를, 조금은 부끄럽고 자책스러운 나의 속마음을 적은 이유는 <한지와 영주> 읽으면서 우리 할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지영주 아무에게도 열지 못한 마음을 서로에게 처음 열어보이며 사랑의 감정을 느꼈지만, 둘은 필연적으로 이별의 시간이 닥쳐올 것이었기에한지 어느 순간부터영주 외면하기 시작했고영주 그런한지 보며 많이 슬퍼하지만 덕분에 그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있게 된다. 누군가는 작품을 읽으면서한지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있겠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조금은 것도 같았다. ‘한지역시영주와의 사랑이 깊어지는 경계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도 깊어진 상태에서 이별하게 된다면 이별의 고통이 더욱 커질 것임을한지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별이라는 참으로 어려운 같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는 행복했던 기억마저 고통스럽게 느껴질 있다는 ,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시금 체감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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