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의 위력이란 참 무시무시합니다.설날이 제 이름을 찾고 연휴가 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단어를 쓰는 이들이 많더군요.신정이라든가 양력설이라든가 하는 것이 없어졌으니 당연히 구정이나 음력설이라는 단어도 없어졌지요.하지만 워낙 습관적으로 써온 구정이라는 단어와 결별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힘든 것을 이런 사례에서도 알 수 있네요.
일제시대에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서 일본총독부가 운운...하면서 거창하게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어요.산업화 시대 때 이중과세라 하여 설날 두 번 지낼 수 없다면서, 새로운 것이 좋으니 신정을 지키라고 했지요.그래서 한때 설날은 구정이라 하여 휴일이 아닌 시절도 있었습니다.동남아시아 유일의 유교국가인 베트남도 설이 있습니다.전쟁사에 유명한 1968년의 설날 대공세를 예전엔 구정공세라고 했습니다.베트남에선 설을 테트라고 했는데 그때가 우리나라는 군사정권 시절이라 테트를 구정이라 했고 그래서 지금도 헌책에는 모두 구정공세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제도사나 외교관련 역사가 아니면 생활사에 관한 일은 알기 힘듭니다.나도 언제부터 구정에서 설로 제자리를 잡았는지 정확한 연도를 알 수는 없군요.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아직도 구정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들이 상상 외로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심지어 기자들도 일부지만 이 단어를 쓰더군요.다행히 지명도가 없는 신문 소속 기자들이긴 합니다만.어린이나 청소년들 역시 부모나 친척들이 하는 말을 따라서 구정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모인 친인척들이 구정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너무 정색하면서 " 일제잔재가 어떻구...군사정권의 잔재가 어떻구..." 하면서 무안주지는 맙시다.명절 직후 법원으로 가는 부부가 많다고 하니 서로서로 좋은 말로 일러주세요.특히 시누이 올케끼리 무슨무슨 잔재라면서 속을 뒤집어 놓으면 명절 분위기 완전 엉망이니 말조심하시고...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표현하는 방법도 중요하니까요.여하튼 결론은 " 무사히 명절을 보내려면 입조심을 해야 한다!" 이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