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라는 모험 - 미지의 타인과 낯선 무언가가 하나의 의미가 될 때
샤를 페팽 지음, 한수민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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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만남'에 대한 섬세한 탐구서라고 하여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을 통해 만남에 대해 사유할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했다.

또한 이 책은 프랑스 전 서점 베스트셀러이며 아마존 철학 1위라고 하여 더 궁금했다.

게다가 이 책에 나오는 다음 글을 읽으면 구체적인 내용이 더욱 알고 싶어질 것이다.

피카소가 시인 엘뤼아르와 우정 어린 만남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유명한 걸작 <게르니카>를 탄생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카뮈가 『반항적인 인간』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여배우 마리아 카자레스에 대해 품었던 열렬한 감정 덕분이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볼테르가 『캉디드』를 세상에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에밀리 뒤 샤틀레(최초의 여성 과학자이자, 수학자, 사상가이다. 그녀는 볼테르와 더불어 계몽주의 사상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역주)와 지적인 교류를 서로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명한 노래 <완벽한 하루>는 데이비드 보위와 루 리드가 뉴욕에서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10쪽)

문득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생각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의 시 「방문객」 일부

그러니 우리의 만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어마어마한 사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책에 의하면 만남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두 사람의 태도가 빚어낸 산물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연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을 우리가 미리 준비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 책으로 증명해보이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하면서 이 책 『만남이라는 모험』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샤를 페팽. 현재 국립고등학교와 파리정치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또한 《전향과 심리학》, 《철학 매거진》 등의 잡지에 글을 연재하고 철학, 형이상학, 윤리학 분야에서 독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때』, 『실패의 미덕』, 『기쁨』, 『철학 주식회사』 등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책날개 발췌)

우리는 타인들에게 의존한 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만남이란 우리 인생에 덧붙여진 장식품 같은 것이 아니며 부차적인 소품 같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만남은 우리에게 필수적이며 우리의 인격을 빚어내기까지 한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평생 경험하게 되는 모험의 중심에 '만남'이 자리 잡고 있다. (10쪽)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만남의 징후들', 2부 '만남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 3부 '진정한 삶은 만남이다'로 나뉜다.

이 책은 만남에 대한 개념부터 시작해서, 타인과의 만남에 대한 의미 등을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지금껏 '만남'이라는 것을 그냥 우연의 산물이며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면,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사소한 만남조차도 커다란 의미가 있는 특별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철학적 사색과 함께 만남에 대해 되새겨볼 수 있었다. 특히 인류학적 해석, 존재론적 해석, 종교적 해석, 정신분석학적 해석, 변증법적 해석 등 우리 삶에 있어서 만남을 중점적으로 탐색해 볼 수 있어서 의미가 더 깊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어느 한 사람의 능력이나 기회에만 포커스를 두고 보았던 것들을 누군가와의 만남이라는 부분에 집중해서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무언가를 보던 시각을 살짝 바꿔본 듯한 느낌으로 만남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 이 책의 띠지에 있는 "내 자신을 목격하는 일은 오직 타인의 세계에 도달할 때 가능해진다."라는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마르틴 부버의 책 『나와 너』 서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나에게 사랑과 가정이 없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꽃들과 나무들, 불, 돌멩이가 나에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두 사람이 필요하다! 하늘이 파랗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밝아오는 새벽의 여명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하늘과 숲, 그리고 빛과 같이 영원한 것들은 오직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속에서만 그것들의 본래 이름을 찾는 법이다."

이 아름다운 문장들은 시적인 섬세함을 발휘해, 우리가 이 책에서 살펴보았던 견해들을 요약하고 있다. (318쪽)

이 책에서는 우리의 존재 자체부터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만남'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저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고 오로지 홀로 있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홀로 있다면 어떤 가치도 띠지 못하며 어떤 것에도 도달하지 못하지만, 만남으로 이 모든 것이 충분해진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완전한 시작의 문이 열린다고 하니, 저자의 시선으로 만남에 대해 사유해 보면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이 또 다르게 보일 것이다. 만남을 중점적으로 우리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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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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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진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도대체, 왜, 이 책이 계속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보이는가' 하는 데에서 온 호기심에서였다.

그런데 제목만 보고는 소설인가 생각했는데, 자연과학책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더 시선이 갔다.

게다가 《워싱턴포스트》, 《NPR》, 《시카고 트리뷴》, 《스미소니언》 선정 2020년 최고의 책이라는 점과 더불어 이 책을 격찬하는 추천사까지, 나를 뒤흔들었다. 나도 그런 책을 읽고 싶어서 늘 헤매고 있다. 완전히 넋을 잃을 정도로 매혹적인 책 말이다.

이 책이 나에게는 어떤 느낌을 줄지 궁금해하면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에만 해도 나는 이 책에 이렇게 매혹될 거라 생각지 못했으니, 이 책이 전해준 파장에 충격이 크다. 이 책 저책 헤매며 독서를 하는 것은 이렇게 내 마음을 휘어잡을 책을 만나는 과정인 것이니, 이것만으로도 무척 두근거린다.



이 책의 저자는 룰루 밀러.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로, 15년 넘게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NPR에서 일하고 있다. 룰루 밀러의 논픽션 데뷔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기이자 회고록이자 과학적 모험담으로, 혼돈이 항상 승리하는 세계에서 꿋꿋이 버텨내는 삶에 관한 우화처럼 읽히는 경이로운 책이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된다. 1장 '별에 머리를 담근 소년', 2장 '어느 섬의 선지자', 3장 '신이 없는 막간극', 4장 '꼬리를 좇다', 5장 '유리단지에 담긴 기원', 6장 '박살', 7장 '파괴되지 않는 것', 8장 '기만에 대하여', 9장 '세상에서 가장 쓴 것', 10장 '진정한 공포의 공간', 11장 '사다리', 12장 '민들레', 13장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나뉜다.

이 책은 저자 룰루 밀러가 과학자이자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면서 시작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문 분야는 어류로, 그는 새로운 종을 찾아 전 지구를 항해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던은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지치지 않고 일했고, 그 결과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이 모두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한 것이었다(16쪽)고.

그런데 1906년 어느 봄날, 지진으로 그가 수집한 표본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져서, 수백 개의 유리단지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고, 유리단지에 넣어둔 이름표들이 온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바늘을 집어들고 물고기에 이름표를 꿰매 붙였다는 것이다.

저자 룰루 밀러는 이 분류학자가 문득 궁금해져서 그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상세하고 생생하게 풀어가고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혼돈. 그 이야기가 슬며시 마음을 적시며 다가온다.



솔직히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읽기를 주저하며 한참을 책장에 꽂아두었다. 이 책에 담긴 판화 그림의 음습한 느낌과 함께, 무언가 주저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나를 멈칫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추천사가 있다.

"장마다 수록된 독창적이고 정교한 삽화는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어찌 보면 악몽과도 같은 분위기로 우리를 매혹하며, 마치 19세기의 과학 텍스트나 성경을 손에 들고 있는 것 같은 고색창연한 느낌을 이 책에 불어넣어 준다. 흥미진진하게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는 책."

-《워싱턴 인디펜던트 리뷰 오브 북스》

세상 모든 것은 시선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나 보다. 나의 느낌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삽화여서 이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독창적인 개성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이 책에 매혹되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제인 스탠퍼드의 사망 사건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타고 이야기가 진행되니, 더욱 몰입해서 읽어나갔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탄력을 받아 글을 풀어내어 독자를 끌고 가는 재주가 있다. 자연과학 에세이를 소설처럼 읽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놓지 못하고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생학은 1883년 유명한 박식가이자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영국의 과학자가 만든 단어다. 《종의 기원》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골턴은 사촌의 책을 읽고 깊은 영감을 받아, 그 책을 "내 정신 발달 과정의 신기원"이라고 불렀다. 지구에서 생물의 배열을 결정하는 자연선택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자마자, 그는 인류의 지배자 인종을 선별할 수 있도록 그 힘을 조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요컨대 가난, 범죄, 문맹, "정신박약", 방탕함 등 그가 혈통과 관련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특징들을 교배함으로써 말이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살시키는 이 기술을 "우생학"이라고 불렀다. "좋은"과 "출생"을 뜻하는 그리스어를 조합해 만든 단어다. 그리고 그는 자기-다윈의 사촌인!-말을 들어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얼핏 과학적으로 들리는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계획에 관해 이야기했다. (181쪽)

대다수의 사람들은 골턴의 생각을 무시하고 넘겼지만, 소수의 영향력 있는 과학자들이 열성적으로 옹호했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골턴의 생각을 제일 먼저 미국으로 들여온 이들 중 하나다. 그리고 그는 우생학적 불임화의 합법화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우생학 이야기를 경악을 하면서 보았다. 점점 많은 주들이 불임화법을 통과시키고, 부적합한 사람들에 대한 불임화를 실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 속 표현대로 싹둑, 싹둑, 싹둑!

그러다가 1916년 매디슨 그랜트라는 한 미국 남자가 (나중에 히틀러라는 한 독일 남자가 자신의 "성경"이라고 부르게 될) 우생학 책 한 권을 출판했고, 10여 년 뒤 독일에서 히틀러가 최초의 강제불임화법을 통과시켰다는 것까지, 그 모든 이야기가 그 시절에 일어났던 일이라니, 그리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이자 분류학자인 사람에 대해 조사하며 알게 되는 충격적인 현황이었다니! 나 또한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간다. 결국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다는 사실까지도.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이 무지막지한 깊이와 그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수천 명의 아우성 -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요- 도 무시해버린 남자. (201쪽)

그리고 이 책의 제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연관되는 부분까지,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때로는 책을 읽으며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뒤흔들어버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본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책은 흔치 않은데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을 볼 수 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존경은 시간이 지나며 더 견고해지고, 오늘날 스탠퍼드대학 캠퍼스에 가보면 도서관에 있는 브론즈 흉상과,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심리학부 건물, 화려한 장식의 액자에 담긴 그의 초상화들을 발견할 수 있다(232쪽)는 문장이 이 책에 나오는데, 이 책이 출간되고 여섯 달 뒤, 스탠퍼드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는 학교 학생들과 임직원, 교직원, 졸업생들이 편지와 기사, 온·오프라인 시위로 항의한 결과 내려진 결정이라고 한다.

세상은 얼핏 보면 변화가 없는 듯 벽창호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이렇게 변화할 수도 있는 모습을 보며 거기에서 희망을 본다.

이 책이야말로, 혹시라도 앞부분에서 매력적으로 사로잡히지 못하더라도 꾹 참으며 계속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어마어마한 진실을 접하게 되며, 그것은 책을 읽으며 얻게 되는 경이, 환희, 매혹, 기쁨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책에는 이유가 있다. 그 사실을 이유로 삼아서라도 힘을 얻어 계속 읽어볼 만하다. 특히 이 책은 그렇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스포일러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언급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읽어라, 무조건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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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산책 - 자연과 세상을 끌어안은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을 위한 걷기의 기록
케리 앤드류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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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뒤표지에 보면 이런 말이 눈에 띈다. '여자들도 걷는다'라고 말이다. 여자들도 걷고 자신의 걷기와 생각에 관해 글을 썼고, 수 세기 동안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산책이 남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닌데, '산책'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이긴 하다. 그래서 여성들의 산책에 관한 이 책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은 열 명의 여성 문인들이 걷기에 관해 쓴 글의 넓이와 깊이와 특징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걷기에 대한 시각을 제시한다. 수많은 남성 작가와는 다른, 여성의 감각, 여성의 공간, 여성의 시각을 드러내며 우리가 보유한 편향된 걷기의 역사를 재평가하고자 한다. (책 뒤표지 중에서)

그러고 보면 글을 볼 때 '이 글은 남성의 글' 또는 '이 글은 여성의 글'이라는 느낌이 확연하게 다를 때가 있다. 그래서 여성 문인들의 걷기에 관해 쓴 이 책이 더욱 궁금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기대하며 이 책 『자기만의 산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케리 앤드류스. 엣지힐대학교의 영문학 강사로 여성의 글, 특히 낭만주의 시대 여성 작가들이 쓴 글에 대해 다양한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낸 셰퍼드가 쓴 편지들을 편집하기도 했다. 케리는 열성적인 등반가이자 스코틀랜드 등산 클럽의 회원이기도 하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에서는 3백 년이라는 시간 속을 걸어온 여성들의 역사를 찾아냈다. 이 책에 나온 열 명의 여성은 글을 쓰는 작가이자 관찰자다. 우리는 1717년 출생한 엘리자베스 카터부터 리베카 솔닛과 린다 크랙넬 같은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과 작품과 걷기를 살펴볼 것이다. 물론 언덕과 계곡의 관찰자인 도로시 워즈워스도 있고, 산을 관찰한 낸 셰퍼드도 있고, 도시 산책자인 아나이스 닌도 있다. 단순히 움직이면서 자신의 몸을 쓰는 행위를 즐기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끔찍한 결혼 생활을 열심히 걸으면서 극복한 여성도 있다. 어떤 여성은 걸으면서 건강이 좋아졌고, 또 어떤 여성은 걸으면서 창의력이 샘솟았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순전히 작가 케리 앤드류스 덕분이다. (서문 9쪽, 캐슬린 제이미)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된다. 1장 '엘리자베스 카터', 2장 '도로시 워즈워스', 3장 '엘렌 위튼', 4장 '사라 스토다트 해즐릿', 5장 '해리엇 마티노', 6장 '버지니아 울프', 7장 '낸 셰퍼드', 8장 '아나이스 닌', 9장 '셰릴 스트레이드', 10장 '린다 크랙넬'로 나뉜다.



누군가가 짚어주었을 때 비로소 '아, 그렇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 그동안 걷기와 다양한 사상가들의 철학을 이야기할 때, 니체, 랭보, 칸트, 루소, 소로 등 남성만을 떠올렸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그동안 걷기에 관한 책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남성 산책자들의 예만 들었다는 것이다. 여자들도 걷는다. 그리고 여자들도 걷기와 함께 철학적 사색을 이어가니 그 부분에 대해 더욱 흥미를 느끼며 이 책을 읽어나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동안 당연한 듯 생각하던 것을 살짝 비틀어서 새롭게 바라보는 것 아니겠는가. 주일학교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몇 명을 먹이셨냐는 퀴즈에 정답이 남자 수만 오천 명이라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어린 시절처럼, 남녀 누구나 산책을 하고 거기에서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산책하는 사람에 대해서 쓴 글을 보면 거의가 남자였다는 것도 나름의 충격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나의 시선을 끌었다.



혹시나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이 생소하다면 6장 '버지니아 울프'부터 읽어보아도 좋겠다. 그래도 이름이 익숙하니 무언가 친근한 느낌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 버지니아 울프가 포함된 것은 탁월한 선택인 듯하다. 우리는 전부 생소한 것보다는 무언가 익숙한 이름이 있어야 더욱 관심이 생기니 말이다.

이 책을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시선이 끌리는 작가에 대해 더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아는 작가든 모르는 작가든, 여성 작가의 산책 이야기는 소재 자체가 흔치 않고 독특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니, 그냥 1장부터 시작해도 되겠다. 엘리자베스 카터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 보면 장난기 많고 유쾌하고 엉뚱한 면이 잘 나타나 있으니, 우리 친구들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듯 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이전에는 미처 인정받지 못했던, 열 명의 여성 문인들이 걷기에 관해 쓴 글의 넓이와 깊이와 특징을 보여줌으로써 기존과 다른 걷기에 대한 시각을 제시하려고 한다. (43쪽)

걷기는 운동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명상의 효과도 누릴 수 있지만, 이 책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좀 더 구체적이고 특별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은 저자가 공정하고 엄격하게 세운 기준에 따라 선정했다고 한다. 자신의 걷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돌이켜 본 작가 또는 자신을 작가이자 한 인간으로 이해하는 데 걷기가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걷기가 그들의 삶뿐 아니라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담긴 10명의 여성 작가 이야기가 그동안 여타 걷기 관련 책과는 다른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다. 읽으며 그 작가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되살아난 필치를 느끼며, 그들의 걷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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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는 아이 장애공감 어린이
뱅상 자뷔스 지음, 이폴리트 그림, 김현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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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먼저 제목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래서 제목 한번 쳐다보고 표지 한번 쳐다보면, 표지 그림 속의 아이에게 시선이 가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져서 책을 펼치게 된다.

이 아이는 밝고 맑고 긍정적인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어서 더 집중해본다.

1,2,3,톡톡톡,1,2,3,톡톡톡…

셋 세고 코 두드리기,

횡단보도 하얀 선 밟지 않기,

검은 자동차 피하기,

엄마 생각하지 않기…

강박 행동을 보이며

스스로 정한 규칙과 점수 매기기에 집착하는

열한 살 소년 루이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책 뒤표지 중에서)

과연 열한 살 소년 루이에게 무슨 일이 펼쳐질지 궁금해하면서 이 책 《숨을 참는 아이》를 읽어보게 되었다.



《숨을 참는 아이》는 벨기에 문학상 만화 부분 최고작품상,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그래픽노블 최종후보, 브뤼셀 국제만화축제 그래픽노블 최고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는 1974년부터 매년 1월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만화축제인데, 4일 동안 모여드는 관람객 수만 25만여 명에 이른다.

브뤼셀 국제만화축제는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만화축제인데, 2010년부터 매년 9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의 이야기는 선입견 없이 펼쳐들면 좋겠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루이의 일상을 읽어나가다 보면, 앗, 루이는 우리와 좀 다른 것 같다. 무언가 좀 이상하다. 하지만 적어도 루이가 '이상한' 아이가 아니라 '독특한' 아이라고 접근하며 그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느끼게 되는 데에는 그림의 역할이 크다. 그렇기에 어떤 편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루이는 생각도 많고, 혼잣말도 많이 하며, 무언가 자신만의 규칙을 정해서 그것을 기를 쓰고 지킨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루이라는 아이를 알아간다. 그리고 루이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루이가 보는 세계를 그림을 통해 엿본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읽다 보면 루이에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 책은 그래픽노블이다. 그래픽노블이기 때문에 루이의 세계를 풍성하게 표현해냈다. 글만으로 표현한 것과는 다르게 그림이 함께 있어서 나타나는 이 책만의 개성이 있다. 사랑스러운 책이다.

처음에는 스토리를 따라가며 읽고, 그다음에는 좀 더 자세히 그림으로 표현된 것에 집중하며 머릿속에 루이를 그려본다.

이 책은 사랑하는 가족의 병과 마주한 어린 소년의 두려움과 갈등, 화해와 치유의 과정을 따라간다. 우울증, 강박, 아동방치라는 다소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따뜻한 시선와 유머를 잃지 않는 이야기는, 주인공 루이의 비밀과 마주하는 반전의 순간에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루이의 내일을 응원하도록 만든다.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이런 주제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표현해 내다니, 무겁지 않고 따뜻해서 좋다. 문학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그래픽노블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마음이 몽글몽글 뭉클해지며 감동과 여운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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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의 시그널 - 내 안의 좋은 운을 깨우는 법
막스 귄터 지음, 양소하 옮김 / 카시오페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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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스토리가 아니라, 운이 주인공이 되는 스토리를 이 책을 읽으며 짚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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