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산책 - 자연과 세상을 끌어안은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을 위한 걷기의 기록
케리 앤드류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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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뒤표지에 보면 이런 말이 눈에 띈다. '여자들도 걷는다'라고 말이다. 여자들도 걷고 자신의 걷기와 생각에 관해 글을 썼고, 수 세기 동안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산책이 남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닌데, '산책'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이긴 하다. 그래서 여성들의 산책에 관한 이 책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은 열 명의 여성 문인들이 걷기에 관해 쓴 글의 넓이와 깊이와 특징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걷기에 대한 시각을 제시한다. 수많은 남성 작가와는 다른, 여성의 감각, 여성의 공간, 여성의 시각을 드러내며 우리가 보유한 편향된 걷기의 역사를 재평가하고자 한다. (책 뒤표지 중에서)

그러고 보면 글을 볼 때 '이 글은 남성의 글' 또는 '이 글은 여성의 글'이라는 느낌이 확연하게 다를 때가 있다. 그래서 여성 문인들의 걷기에 관해 쓴 이 책이 더욱 궁금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기대하며 이 책 『자기만의 산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케리 앤드류스. 엣지힐대학교의 영문학 강사로 여성의 글, 특히 낭만주의 시대 여성 작가들이 쓴 글에 대해 다양한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낸 셰퍼드가 쓴 편지들을 편집하기도 했다. 케리는 열성적인 등반가이자 스코틀랜드 등산 클럽의 회원이기도 하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에서는 3백 년이라는 시간 속을 걸어온 여성들의 역사를 찾아냈다. 이 책에 나온 열 명의 여성은 글을 쓰는 작가이자 관찰자다. 우리는 1717년 출생한 엘리자베스 카터부터 리베카 솔닛과 린다 크랙넬 같은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과 작품과 걷기를 살펴볼 것이다. 물론 언덕과 계곡의 관찰자인 도로시 워즈워스도 있고, 산을 관찰한 낸 셰퍼드도 있고, 도시 산책자인 아나이스 닌도 있다. 단순히 움직이면서 자신의 몸을 쓰는 행위를 즐기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끔찍한 결혼 생활을 열심히 걸으면서 극복한 여성도 있다. 어떤 여성은 걸으면서 건강이 좋아졌고, 또 어떤 여성은 걸으면서 창의력이 샘솟았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순전히 작가 케리 앤드류스 덕분이다. (서문 9쪽, 캐슬린 제이미)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된다. 1장 '엘리자베스 카터', 2장 '도로시 워즈워스', 3장 '엘렌 위튼', 4장 '사라 스토다트 해즐릿', 5장 '해리엇 마티노', 6장 '버지니아 울프', 7장 '낸 셰퍼드', 8장 '아나이스 닌', 9장 '셰릴 스트레이드', 10장 '린다 크랙넬'로 나뉜다.



누군가가 짚어주었을 때 비로소 '아, 그렇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 그동안 걷기와 다양한 사상가들의 철학을 이야기할 때, 니체, 랭보, 칸트, 루소, 소로 등 남성만을 떠올렸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그동안 걷기에 관한 책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남성 산책자들의 예만 들었다는 것이다. 여자들도 걷는다. 그리고 여자들도 걷기와 함께 철학적 사색을 이어가니 그 부분에 대해 더욱 흥미를 느끼며 이 책을 읽어나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동안 당연한 듯 생각하던 것을 살짝 비틀어서 새롭게 바라보는 것 아니겠는가. 주일학교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몇 명을 먹이셨냐는 퀴즈에 정답이 남자 수만 오천 명이라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어린 시절처럼, 남녀 누구나 산책을 하고 거기에서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산책하는 사람에 대해서 쓴 글을 보면 거의가 남자였다는 것도 나름의 충격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나의 시선을 끌었다.



혹시나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이 생소하다면 6장 '버지니아 울프'부터 읽어보아도 좋겠다. 그래도 이름이 익숙하니 무언가 친근한 느낌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 버지니아 울프가 포함된 것은 탁월한 선택인 듯하다. 우리는 전부 생소한 것보다는 무언가 익숙한 이름이 있어야 더욱 관심이 생기니 말이다.

이 책을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시선이 끌리는 작가에 대해 더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아는 작가든 모르는 작가든, 여성 작가의 산책 이야기는 소재 자체가 흔치 않고 독특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니, 그냥 1장부터 시작해도 되겠다. 엘리자베스 카터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 보면 장난기 많고 유쾌하고 엉뚱한 면이 잘 나타나 있으니, 우리 친구들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듯 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이전에는 미처 인정받지 못했던, 열 명의 여성 문인들이 걷기에 관해 쓴 글의 넓이와 깊이와 특징을 보여줌으로써 기존과 다른 걷기에 대한 시각을 제시하려고 한다. (43쪽)

걷기는 운동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명상의 효과도 누릴 수 있지만, 이 책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좀 더 구체적이고 특별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은 저자가 공정하고 엄격하게 세운 기준에 따라 선정했다고 한다. 자신의 걷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돌이켜 본 작가 또는 자신을 작가이자 한 인간으로 이해하는 데 걷기가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걷기가 그들의 삶뿐 아니라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담긴 10명의 여성 작가 이야기가 그동안 여타 걷기 관련 책과는 다른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다. 읽으며 그 작가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되살아난 필치를 느끼며, 그들의 걷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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