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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갑질 공화국의 비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5월
평점 :
땅콩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전반에 만연해있는 '갑질'에 대해 논하는 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책, 먼저 제목을 보면 살짝 이상하다. 개천에서 용 나면 왜 안 된다고 하는걸까? 그것이 갑질 공화국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고 세상을 다시 한 번 낱낱이 살펴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칼로 도려내는 듯한 날카로움을 느끼게 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의 끝을 찾아낸 듯해진다. 제목에서 느낀 의아한 느낌은 머리말을 읽으며 공감으로 바뀌었고, 책을 읽어나가며 불쾌하면서도 시원한 생각이 든다.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것을 콕 짚어내어 해석해주니, 이제야 비로소 '아, 그런 거구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는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다. 그런 확신은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사회에선 '개천에서 난 용'이기 때문이다. (7쪽)
"개천에서 용 난다"는 단순한 속담이 아니다. 그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모델이자 심층 이데올로기로서 무게와 중요성을 갖는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코리언 드림'의 토대지만, 동시에 사회적 신분 서열제와 더불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즉 '갑질'이라는 실천 방식을 내장하고 있다. (9쪽)
우리는 개천에 사는 모든 미꾸라지가 용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이론적 면죄부를 앞세워 극소수의 용이 모든 걸 독식하게 하는 승자독식주의를 평등의 이름으로 추친하는 집단적 자기기만과 자해를 저지르고 있다. (11쪽)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말은 용과 미꾸라지를 구분해 차별하는 신분 서열제를 깨거나 완화시키는 동시에 '개천 죽이기'를 중단하고 개천을 우리의 꿈과 희망을 펼칠 무대로 삼자는 뜻이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말은 '국가'니 '전체'니 하는 말을 앞세워 일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물론 성공을 거둔 뒤에도 희생을 당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 '철면피 심리'를 끝장내자는 뜻이다. (12쪽)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념적,정치적 선악 이분법에 사로잡혀 남 탓만 하기에 바쁘며, '너희들 때문'이라고 하는 증오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모든 문제의 주범은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라고 말한다. 이 책의 시작이자 독자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현실이다. 어떤 논리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책을 읽어나가며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목차만 읽어보아도 무엇인지 모를 화가 치밀어오른다. 자세한 내용이 담긴 글을 읽다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뒷골이 당긴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말도 안되는 일이 즐비하다. 이 또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고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갑과 을이 존재하며, 갑이 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수많은 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것을 추구하며 불에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자신을 소모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떠올리며 '독일 철학자 니체는 "광기란 개인에게는 예외가 되지만 집단에게는 규칙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287쪽)'는 말에 집중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시대의 모습이고 문제점을 깨닫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문제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지도 못하던 때에서, 문제라고 인식함으로 인해 첫 발걸음을 내딛는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갑들의 갑질 문제를 근원적으로 들여다보면 갑질을 조장하는 사회가 보이고, 우리 내면을 조심스레 직면하게 된다. 생각의 살얼음을 깨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틔워주는 책이다. 아프고 불편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