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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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의 사유방식입니다. 존재의 장엄을 복원하려는 당위 언어입니다. 신을 사유함으로써 인간은 장엄으로 가는 숭고의 내재화를 꾀합니다. 타락의 문명에서 숭고는 백전백패의 도정입니다. 그 비장함을 기록한 것이 구약성서입니다.


구약성서의 위엄은 실패하는 인간과 그 삶을 가차 없이 기록한 내러티브라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을 움켜쥐는 기독교·이슬람교의 힘이 여기서 나옵니다. 기독교·이슬람교가 구약성서에 힘입어 현실을 장악했으나 바로 그 때문에 구약성서는 현실 속에 유폐 당했습니다. 장엄을 향해 가는 인간의 숭고는 형해가 되었습니다. 구약성서가 숭고의 텍스트로 길이 남으려면 기독교·이슬람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배철현은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신의 위대한 질문들은 우리와 우주 안에 숨어 있는 숭고함을 일깨울 것이다.(30쪽)


그가 장엄과 숭고를 구별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역사를 납작하게 또는 매끈하게 인식하는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 특히 차별과 수탈의 역사는 인간이 장엄에서 이탈하는 과정입니다. 숭고의 역사는 장엄으로 복귀하려는 피눈물의 시간입니다. 이 두 역사는 동시에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역설을 통렬히 각성하지 않으면 신의 질문은 지금처럼 종교적 도그마의 메아리로 갇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 장엄을 되찾으려는 숭고의 길을 백만 명이 다시 나섭니다. 사이비 기독교 사제에게 영혼이 사로잡힌 채 나라를 망친 이른바 대통령과 그 두호세력한테서 공화국을 돌려받고자 함입니다. 각자 장엄한 신으로 스스로의 숭고를 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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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의 과학화 - 자연주의 출산의 거장이 전하는 21세기 사랑의 의미
미셀 오당 지음, 장 재키 옮김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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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당의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다 읽고 나서 저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쓴 글을 다시 정색하고 들여다봅니다. 그가 분단과 통일 문제를 언급한 것이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분단체제 아래 있는 우리 상황을 그가 어떤 시각에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통일의 당위성을 전제하고 곡진히 충고한 것으로 미루어 나름대로 단단한 성찰에 터했음이 분명합니다. 의사가 정치 담론을 능동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은 우리에게 낯선 풍경입니다. 우리 의사들에게는 그럴 능력도 별로 없고, 있어도 대부분 매판독재분단고착세력과 같은 결의 정치적 견해를 지니므로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고 다시 한 번 미셸 오당의 말을 새겨봅니다.


남과 북, 두 체제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분명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국경을 사이에 두고 수십 년 동안 떨어져 서로 다른 정치적 이데올로기 아래서 서로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의 고리로 합쳐질 것이다. 통일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첫 번째 과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이 ‘사랑이라는 무한한 잠재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통일보다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닌 것이 사람의 통일, 곧 사랑이라는 지적입니다. 이 말은 매우 두루뭉술하게 들리지만 다시없는 도저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서로 다른 생활방식으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이질감을, 사랑 말고 무엇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요. 다름을 녹여 같음으로, ‘따로’를 엮어 ‘함께’로 가는 길에 사랑을 대신할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치가 이러하거늘 최순실의 사주를 받은 이른바 대통령이란 자가 내건 통일 비전은 ‘대박’이었습니다. 대박이란 표현에 깔린 탐욕은 사랑을 살해하고야 채워지는 무엇이 아니던가요. 북한 김정은 정권의 붕괴가 임박한 것처럼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닌 것도, 공식 연설에서 탈북을 부추기는 후안무치를 범한 것도 모두 사랑의 살해를 전제한 망발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사랑을 살해한 자가 휘두르는 폭력입니다. 폭력, 생글생글 웃으며 저지르는 저 오싹한 주먹질이 그 자신이고 그 삶입니다.


오늘 여기 대한민국, 처절하고 참담한 분단의 반 토막 터전에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사랑의 삶은 너무도 어려워 무한한 잠재력을 소환합니다. 매판세력이 팔아먹어 식민지가 된 나라에서 인욕으로 35년을 살다가 남북으로 찢어져 70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불의한 권력의 수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미 우리의 사랑은 고갈되어 소진에 가까운 상태를 노정하고 있습니다. 목하 우리는 극한을 향해 치닫는 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바 대통령이란 자가 필설로는 다 그릴 수 없는 패악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여전히 국정을 주무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아둔한 고집을 어르고 뺨치거나 뺨치고 어르는 자들이 악용하고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복원해 저 참람한 폭력을 뚫고 사랑의 공화국을 세우려 일어나야 할 때가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이제 모두 사랑의 심장으로 쿵쾅쿵쾅 울리기 시작합시다.


사랑의 박동을 시작하기 위한 마중물 한 잔 여기 올립니다. 저 형언할 길 없는 사랑, 416편지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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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의 과학화 - 자연주의 출산의 거장이 전하는 21세기 사랑의 의미
미셀 오당 지음, 장 재키 옮김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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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사랑을 전파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한 사람·······그의 어머니는·······인간 사회를 벗어나 다른 포유동물과 함께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았다.(205쪽)


  어느 날 아기가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었을 때 마리아는 형언할 수 없는 겸허를 메시지로 받았다. 그녀는 다른 포유동물과 함께 외양간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의 동물적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녀의 동반자들이 말없이 그녀를 돕고 있었다.·······

·······겸허의 메시지를 감지하고 동물인 조건을 받아들여·······어둠 속에서 그녀는 아주 쉽게 일상의 세계와 자신을 분리할 수 있었·······다.(207쪽)


예수는 엄마인 마리아에 힘입어 처음으로 인습을 거부한 평화로운 반역자가 되었다.(208쪽)


사랑의 성육신 예수를 곡진·결곡함으로 대면하기 시작한 것은 40년 전 일입니다. 신학을 공부할 때도 성직의 길을 갈 때도 결코 마주할 수 없었던 예수의 진경이 제게 펼쳐진 것은 한의학 공부를 결심한 뒤 먹고살려고 우유 배달하던 때였습니다. 예수탄신일 새벽 기독교도들이 집집마다 송가를 불러주며 돌고 있던 그 시간, 저는 집집마다 우유를 배달하며 돌았습니다. 동이 희붐하게 터올 무렵 배달이 끝났습니다. 빈 우유 상자를 넣으려고 저장고가 장착된 리어카 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저장고 안이 환하게 빛나더니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찰나적으로 일어난 광경에 저는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내 어둑함으로 돌아온 저장고 안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들여다보았습니다. 곧 이어 깨달음이 들이닥쳤습니다. 예수는 교회 바깥에 있구나! 예수는 신학 너머에 있구나! 그 다음엔 하나의 알레고리가 자리 잡았습니다. 내가 먹고살려고 끌었던 우유 저장고 리어카는 외양간이었구나! 40년 후 예수는 비이은費而隱.


예수의 사랑은 그 어머니 마리아의 겸허를 따라갑니다. 마리아의 겸허는 인간의 경계를 넘어 마소의 외양간으로 갑니다. 마소의 외양간은 인간 언어가 사라져 고요한, 어두운, 그리고 온욱溫奧한 동물적 조건입니다. 동물적 조건은 인간 인습을 거부합니다. 인간 인습의 거부가 평화를 번져가게 합니다. 이 평화야말로 근본적이어서 급진적인 반역입니다. 반역의 이름이 다름 아닌 예수입니다. 반역의 예수는 우리에게 외양간 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외양간 영성의 구현이 하느님나라입니다. 하느님나라 백성은 마소가 풀을 먹듯 살아갑니다. 마소가 풀을 먹을 때에는 풀과 하나입니다. 풀과 하나일 때에는 천지와 하나입니다. 천지와 하나인 삶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아닌 것은 예수가 아닙니다. 예수가 아닌 것이 예수 팔아 돈을 삽니다. 예수 팔아 돈을 산 사특한 모리배 최태민에 빙의된 박근혜-최순실들이 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습니다. 대포폰 들고 프로포폴 주사 맞는 이른바 대통령을 몰아내는 데 필요한 것은 “인습을 거부한 평화로운 반역”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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