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십대 초반 제자들과 술잔 기울이다 왔다. 저들이 대학생이었을 때 만났으니 삼십 년을 넘겼다. 이제는 흰 머리카락 마주보며 소소한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의미 재미 넘어선 화제를 가로질러 생의 어떤 내밀한 향이 흘러간다. 농활 가서 비누 나눠 쓰던, 가투하다 끌려가던, 인사동 카페에서 맑스 읽던 얘기를 다시 꺼낼 때도 훌쩍 지나고 보니 그저 허허하하한다. 좀 더 자주 보자 다짐하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다. 다짐의 틈새로 시간이 스며들면서 저들 또한 내 뒤를 따라 그리 늙어가리라. 평소보다 훨씬 많이 마셨음에도 '은화처럼 맑은' 정신이 잠 맞아들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아, 일요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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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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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범죄는 동전의 양면이다. 한 면은 집단적이고 다른 면은 개인적이다. 그것들은 같은 병리 현상의 산물로, 지위와 부에 대한 욕망 그리고 더 사실적으로 느끼려는 욕망 등이 공감 능력 부재와 합쳐져서 발생한다.(244쪽)


전쟁과 범죄를 동전의 양면이라 표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전쟁은 그냥 어떤 유형 또는 양상의 범죄다. 범죄는 악이다. 악은 정신병이다. 그 정신병은 타락 또는 자아폭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하였다. 역사의 문제니까 역사에서 푼다. 역사를 신뢰하는 단 하나의 근거다.


역사를 신뢰하는 것은 창조주나 역사의 신 따위 개념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경험, 그 경험을 기억하고 성찰하는 인류, 그 인류를 다시 변화시킬 생태적 조건들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내는 내러티브에 가 닿을 그리움을 소환하는 것이다.


그리움은 냄새에 실려 전해진다. 냄새는 아득한 태고의 감각을 깨운다. 태고의 감각은 부비고 부둥키고 부르르하고 부글거리는 경계 감각이다. 포갬과 쪼갬이 맞물리는 마주 가장자리 느낌이다. 마주 가장자리 느낌은 “지위와 부에 대한 욕망” “사실적으로 느끼려는 욕망” “공감 능력 부재”의 독을 달여 약으로 바꾸는 주술이다.


인류는 이 마지막 주술에 힘입어 과학의학이 포기한 정신병, 로고스 윤리학이 포기한 악, 정치경제학이 포기한 범죄, 그러니까 저 잔혹한 전쟁을 녹여낼 수 있다. 문재인과 김정은, 그리고 트럼프의 만남은 이 주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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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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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요한 사람이 됨”으로써, 성공하고 유명해짐으로써, 다른 사람의 존경과 찬사를 받음으로써,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권력 또는 성공(215쪽)


한국사회를 묘사할 수 있는 낱말은 기본적으로 두 개다: “완전” 또는 “대박”


완전 대박 난 극소수 매판지배층이 암암리에 공공연히 유포시킴으로써 이 두 낱말은 절대다수의 절대표제어가 되어버렸다. 완전을 향한 헛꿈 또는 불완전의 완전 인식이 저들의 삶을 더욱 불완전하게 밀어붙인다. 대박을 향한 헛꿈 또는 쪽박의 대박 인식이 저들의 삶을 더욱 쪽박 나게 밀어붙인다.


불완전 쪽박 인생들은 완전 대박, 그러니까 “권력 또는 성공” 쪽으로 부나방처럼 영혼이 휜다. 불가항력이다. 아니, 억울해서 “중요한 사람이 됨”으로써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할 수 없다. 자기계발 책자에 목을 매서라도 ‘뜨고’ 싶다. 이 들끓음은 처연하다 못해 오히려 바들바들 웃음을 게워내게 만든다. 전방위·전천후로 나대고 들이대고 촐싹대고 웃기고 개기고 뻐기고들 자빠진 일상에서 허우적거린다. 부유하는 찰나적 행복감 하나 건지려고 서슴없이 망가지며, 대놓고 인두겁조차 벗어버린다.


이 요지경에서 고고히 썩고 있는 집단은 기본적으로 둘이다: 양의 또는 대덕


양의洋醫는 권력으로 생명을 볼모잡은 성공의 대명사다. 정치경제학 저 너머 하늘성채에서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안와전두엽이 썩어가고 있다. 대덕大德은 권력으로 영생을 볼모잡은 성공의 대명사다. 정치경제학 저 너머 하늘성채에서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안와전두엽이 썩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적폐의 양대 밀본이다.


작은 looser 절대다수와 큰 winner 극소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보다 더 엄청난 일치가 있다. 정신적 불화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근원적 일치 말이다. 어찌 할까? 소미한 사람은 자신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 틈부터 내면 된다. 대단한 사람은 자신을 위대하게 여기지 않는 틈부터 내면 된다. 그 틈에서 솔솔 배어나는 불온한 야만이 권력과 성공의 뼈를 녹일 테니 말이다.


불온한 야만은 힘이 아니다. 소식이다. 그나마도 소리 없는 소식. 듣고 싶은가. 외양간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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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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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획득하고 소유하려는 우리 욕망은 우리 내면의 불화를 넘어설-또는 완화할-행복의 원천을 찾으려는 욕망에서 분출한다.·······이 점에서 향락주의도 중요하다.·······향락주의와 물질주의는·······돈이 많을수록 우리가 쾌락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로 연계된다.·······향락주의의 목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불행을 잘 살고 있다는 웰-빙 의식으로 지워버리는 것이다.·······그러나·······물질주의와 향락주의는 우리를 절대 완벽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흥분감은 매우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적 불화는 항상 존재하는 반면, 쾌락단추를 누를 때 나오는 “활기 넘치는” 소리는 잠시 후에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게 된다.(212-214쪽)


처음 서초동에서 한의원 열 때, 인테리어 공사 계약한 분이 술자리에서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인테리어에 지나치게 돈 쓰지 쓰지 마세요, 원장님. 뿌듯한 느낌, 그거 6개월 지나면 사라집니다.” 돈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반납하는 업자의 말이라 잊히지 않는다. 불같은 사랑도 180일이면 식는다는데 무엇인들 그렇지 않으랴.


물질이든 향락이든 실체 아니다. 그것들이 일으키는 행복, 안정, 충만, 이 모두 감정 실재다. 매달릴수록 빠르게 지나간다. 빠르게 지나갈수록 맹렬히 매달린다. 제약 불가의 이 허기증은 자아폭발의 총아인 돈의 마술이다. 마술이라고 해서 부인하거나 억압하면 없어지는 허탄한 것은 단연 아니다. 인간 정신에 질병으로 자리하고 있다.


질병은 견고한 고통의 영지를 지닌다. 거기 금강궁을 지은들 극락이 되겠는가. 거기서 송로버섯을 먹은들 천국이 되겠는가. 금강궁도 송로버섯도 고통의 영지에 뿌려지는 거름일 뿐이다. 정신과 금욕이 길인가? 아니, 그 역시 또 다른 극단의 거름이다. 붓다의 중도가 작은 수레의 길이다. 큰 수레의 길은 공동체적 향유와 전인적 참여다.


공동체적 향유와 전인적 참여가 지나치게 이상적인가. 아니, 지상에 이미 존재했었다. 그 핵심을 누락시킨 채 근대민주주의가 벤치마킹한 이로쿼이맹약이 바로 그것이다. 자아폭발이 구축한 개인·로고스·정치경제를 전복할 공동체·에로스·생태학의 나선형 복원 운동은 이미 지하 진원에서 시작되었다. 코 ‘개’날카로운 생명은 그 향을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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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도움 주시는 분이 전혀 계시지 않아 저 혼자 온갖 방법을 동원해 해독(!)해봤습니다. 일단 원형을 대부분 보존한 채 정자체로 바꾼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맞춤법 정도만 손 보고 한글 음을 단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어려운 낱말 풀이>


귀한: 소중한 편지

귀방: 소중한 방문

작일: 어제

명조: 내일 아침

감패: 고맙게 여겨 기억함

여불비: 여불비례의 준말로 예를 다 갖추지 못했음을 뜻하는 겸양 문구

재배: 두 번 절함



*


아마도 100년이 채 안 된 편지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문화적, 정치적 식민지를 거친 우리만의 풍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금 전 어떤 분이 알려왔는데 1920년대 프랑스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공진항을 수행했한 2등서기관 손병식의 메모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환'으로 읽은 글자가 '식'이었습니다.^^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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