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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평점 :
건강과 질병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팠지만 가장 좋았던 순간에 나는 온전했다. 건강했지만 가장 나빴던 순간에 나는 아팠다. 어느 곳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건강과 질병, 좋은 몸 상태와 나쁜 몸 상태는 끊임없이 번갈아가며 전경이 되었다가 후경이 되었다가 한다. 하나는 다른 하나 때문에 존재하며 계속 서로 자리를 바꾸게 되어 있다. 어느 쪽의 단어에도 맘 편한 휴식은 없다.·······회복 중인 사람으로 살면서 내가 좇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반대말이 없는 말, 오로지 그 자체인 말이다.(214쪽)
바야흐로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종자논리 흠결 대신 갖춘 명민한 사유로 모순의 일치, 그러니까 “반대말이 없는 말, 오로지 그 자체인 말”에 육박하고 있다. 여전히 형식논리에 입각한 양극의 입자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일상적 경험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을 일깨울 수 있는 통찰임에 틀림없다.
진실은 이렇다. 가령 빛은 입자이기도하고 파동이기도한데 100% 입자도 100% 파동도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순은 늘 공존하고 있다. “번갈아가며 전경이 되었다가 후경이 되었다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도 문제를 유무 문제로 치환해온 뿌리 깊은 인습 때문이다. 유무의 세계에서는 지배적인 것 하나만 있는 것이고 나머지 모든 것, 특히 모순되는 것은 없는 것으로 의제 또는 강요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병이 없어야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외로(!) 병이 발견되면 과대평가한다. 아주 특별한 무엇이 된다. 병든 사람에게는 당연히 건강이 없어야 한다. 병든 사람에게 의외로(!) 건강이 발견되면 과소평가한다. 아주 미미한 무엇이 된다. 이 대칭의 비대칭은 상실 애착 때문이다. 상실 애착은 건강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병을 그 권리가 상실된 것으로 여기는 오류에 터한다. 이 오류는 거대유일신 이데올로기에서 왔든, 자연이 선하다는 생각에서 왔든 미성숙한 인간 정신을 대변한다.
미성숙한 인간 정신은 한사코 건강을 좇는다. 건강을 좇다가 병들면 호들갑을 떤다. 호들갑 속에 병이 삶의 소중한 일부라는 성찰은 들어설 수 없다. 성찰이 누락된 질병 체험은 건강과 끊임없이 숨바꼭질을 반복한다. 그러는 한 반대말이 없는 말의 상태는 오지 않는다. 반대말이 없는 말의 상태는 건강과 병의 모순이 극적으로 일치하는 바로 그 시공에서 찰나적으로 명멸한다. 찰나적으로 명멸에 영원이 깃든다. 그 찰나 영원이 열반이며 구원이다. 무애다. 무애의 시공에서 “건강과 질병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건강과 질병은 하나다. 버림받은 바리공주와 버린 자를 도리어 살려내는 바리공주가 하나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