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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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나온 신문 기사 하나는·······백혈병을 앓는 10대 두 명을 비교한다. 한 아이는 마음을 터놓는 환자의 모범과도 같다. 슈퍼마켓에서 낯선 사람이 아프냐고 묻자 이 소녀는 가발을 들어 올리며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아이는 친구와 의사를 피하면서 더는 치료를 받지 않으려 한다.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기사는 “열린” 태도의 소녀는 살아남을 것이고 “사람들을 멀리하는” 소년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암시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교묘한 속임수를 쓴다. 각 아이의 삶에서 사회적 맥락은 사라진다. 이 두 사람에게는 모두 다른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의 역사가 있으며, 바로 이 역사 때문에 이들은 다르게 행동한다.·······백혈병은 이유 없이 발생하지만, 백혈병에 대응하는 아픈 사람의 태도는 그냥 생겨나지 않는다. 백혈병이라는 질환이 왜 생겼든 이 질환에 대한 반응은 주변과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된다.(195-196쪽)


아이의 삶에서 사회적 맥락을 사라지게 한 속임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이 신문 기사 독해를 끝낼 수는 없다. 근원 지점을 향해 더 나아가야 한다. 우선 이 부분을 음미해보자.


한 아이는 마음을 터놓는 환자의 모범과도 같다. 슈퍼마켓에서 낯선 사람이 아프냐고 묻자 이 소녀는 가발을 들어 올리며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슈퍼마켓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가발을 들어 올리며 백혈병 치료를 받는다고 말하는 10대 소녀를 과연 마음을 터놓는 환자의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을 과연 열린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 문화권에서는 이 풍경을 모범적 자기 개방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리 없을지 모른다. 내 눈에는 이 풍경이 미국 문화권 특유의 과잉 또는 과시적 자기 노출로 읽힌다. 저 과잉 또는 과시적 자기 노출은 미국식 자본주의 쌍끌이기선저인망의 기축이 되었다. 긍정주의와 DSM시리즈 말이다.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아서 프랭크가 툭 치고 지나간 저 기사를 낸 신문은 긍정주의 기관지다. 긍정과 부정을 날카롭게 대비시킨 다음 긍정의 구원을 설파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가 속는다. 긍정 마인드 가지면 백혈병도 낫는다더라! 금방 들통 난다. 그 위대한 긍정의 힘이 어째서 백혈병에 걸리지 않게는 하지 못했더란 말인가.


아이의 삶에서 맥락을 사라지게 하는 문제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긍정: 부정의 이분법 위에 긍정 일변도 형식논리를 구축한 서구문명의 형식논리 자체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종자논리 문제다. 종자논리에 대한 성찰이 어정뜨면 아무리 사려 깊은 지성도 한 방에 뚫린다. 아서 프랭크 역시 여기서 주저앉고 만다.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으면 어떤 상황과 마주치는가. 바로 이 쏠림이다.


백혈병은 이유 없이 발생하지만, 백혈병에 대응하는 아픈 사람의 태도는 그냥 생겨나지 않는다.


아서 프랭크는 시종일관 병이 이유 없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해한다. 개인의 책임, 그러니까 병을 일으키는 성격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임을 모르지 않는다. 백혈병에 대응하는 아픈 사람의 태도는 삶의 맥락에서 생겨난다 하면서 어찌하여 백혈병 자체는 삶의 맥락과 전혀 무관하다 하는지, 그것을 나는 모르겠다. 어떻게 이유 없이 백혈병이 발생하는가. 이유 없다는 말이 생리학적 차원이 아님은 그도 나도 아는 사실이다. 결국 문제는 삶의 맥락이다. 나는 아서 프랭크와 달리, 백혈병도 삶의 맥락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맥락이란 “다른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의 역사”이며 “상호작용”이다. 병 자체도 사회역사적 실재임은 필연이다.


사회역사적 실재인 병이기에 아픈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사회는 그 이야기를 듣는다. 권리이자 의무의 쌍방향적 연계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마음의 파동을 주고받는 것이다. 사회역사적 실재인 한, 몸의 병은 마음의 파동을 결코 비껴갈 수 없다. 어떤 마음 상태가 몸의 병을 일으키는 단일한 원인이 되거나, 어떤 마음 상태가 몸의 병을 치료하는 단일한 힘이 되는 경우를 일반화해서는 안 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 이유에서 어떤 마음 상태든 몸의 병의 발생 및 치료와 무관하다는 주장 역시 타당하지 않다. 몸과 마음은 비대칭의 대칭이라는 진리를 구성하는 각각의 축으로서 역동적 교집합 관계에 놓이는 것이 필연이다. 이 교집합이 몸과 마음이 각각의 병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야기 영역이다.


이야기가 병에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지는 기계적으로 말할 수 없다. 회복 또는 치료만이 선이라고 단언하지 않는 한, 관건은 병을 겪는 사람 자신이 삶 전체에서 병을 어떤 위치에 놓느냐, 다. 실은 바로 그 판단을 바루기 위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인간을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숭고의 한 모습일진대 회복 또는 치료 여부와 무관하게 병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이 진리를 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아서 프랭크의 다음 말에서 장엄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


아픈 사람은 아픔으로써 이미 그 책임을 다했다.”(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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