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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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건강에 집착하면서도 아픈 사람들을 주변부에 밀어두고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해두고 싶어 한다.·······가시적이 되는 방법 중 하나는 아픈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54-55쪽)


나는 70년대 초반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고등학생도 교련이란 이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교련이 있는 날은 교련복, 머플러, 각반, 요대를 착용하고 등교했다. 어느 날인가 등교하자마자 갑자기 교련복을 교복으로 바꿔 입고 오라며 귀가 조치가 떨어졌다. 외국 대통령 누군가가 방한하는데 거리가 온통 군복(!) 물결이면 국가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청와대에서 긴급 지시를 내렸단다. 학도호국단을 조직하고 고등학생에게 군사훈련을 시킨 장본인이 병영兵營국가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그따위 해프닝을 벌인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지만 박정희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든 이런 유의 일들이 일어났다.


40년이 지나 그 박정희의 딸이 권좌에 오름으로써 어이없는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엔 거리에서 고등학생 교련복을 치운 해프닝 정도가 아니었다. 바다에서 고등학생 250명의 생명을 치운 제노사이드였다. 제법 써먹을 건더기가 있음과 동시에 미련 없이 버릴 ‘물건’으로서 고등학생만한 약자는 다시없다. 그 중에서도 “주변부에 밀어두고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기 쉽다고 판단되는 더 약한 고리를 떼어내 써먹고 치워버리는 거다. 그 부모와 가족도 빨갱이나 시체 장수, 또는 세금 도둑으로 몰아 치워버리는 거다. 박정희의 딸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던 과두 본진은 여전히 준동하고 있다.


이와 똑같은 일이 병동病棟국가의 의료 권력과 아픈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다. “건강에 집착”하는 사회일수록 아픈 사람은 수탈한 뒤 주변부에 밀어두고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는 ‘호갱’이다. 아픈 사람은 중심부로 나서면 안 된다. 수탈 사실을 감춰야 하니까. 아픈 사람은 눈에 띄면 안 된다. 다시 수탈하기 쉬워야 하니까. 아픈 사람을 이렇게 통제하려고 두 가지 계략을 쓴다. 1. 아픈 사람에게 윤리적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2. 이간離間한다.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조차 없다면 손발을 다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료 버전 세월호사건, 이렇게 적요 진행 중이다.


그러면 여기서 어찌 해야 하는가. 교련복 해프닝을 겪은 세대는 박정희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으로 스스로를 조직했다. 세월호 제노사이드를 겪은 세대는 박근혜를 탄핵시키는 촛불로 스스로를 조직했다. 마찬가지로 “아픈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의료화 포르노 사회의 중심으로 함께 걸어 나와 아픈 사람들 스스로 “가시적”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어떤 고통 속에 있으며, 어떻게 질병을 살아내고 있는지 당당하게 말해야만 한다. 질병이 왜 개인의 책임이 아닌지 정색하고 증언해야만 한다. 아픈 사람들의 연대 내러티브가 공동체 전체를 일깨우는 죽비 소리가 되게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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