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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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는 환자 자신이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몸이 통제할 수 없게 변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질환을 본다. 따라서 질병에 도덕적 실패라는 의미가 실리게 된다.·······몸을 통제한다는 사회의 이상은 애초에 틀렸다·······하지만 사회는 이 이상을 포기하기보다는 몸을 통제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의사를 소환한다.·······

  ·······정말로 해야 할 질문은 누가 통제하느냐가 아니라 통제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다. 질병을 겪으며 배운 교훈 하나는, 통제의 주체가 나 자신이든 의사든 통제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릴 때 더 편하고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몸을 통제하고자 하기보다는 몸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인식하길, 나는 의료인과 아픈 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몸에 경이로워한다는 것은 몸을 믿는다는 뜻이며, 통제의 주체가 몸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경이와 치료는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몸이 경이로워할 때 치료도 잘 진행된다.······

  경이는 언제나 가능하다. 통제는 그렇지 않다. 아픈 사람이 통제 아닌 경이라는 이상에 집중한다면 병에 걸린 몸 안에 살면서도 몸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전부는 아닐지언정 되찾을 수 있다.(95-97쪽)


통제의 이성의지는 대상을 다 안다는 자부심, 또는 몰라도 모르는 부분은 없는 것으로 여기겠다는 자만이나 우위 의식의 발로다. 자만이나 우위 의식은 분석의 능력, 또는 분리의 전략에서 나온다. 백색의학의 필살기다. 백색의자는 분석의 전사요 분리의 모사다.


경이의 감성은 대상을 다 알지 못한다는 겸손함, 또는 알아도 그냥 믿고 맡기겠다는 신뢰감이나 삼가는 정서의 발로다. 신뢰감이나 삼가는 정서는 통섭의 정성, 또는 연속의 열정에서 나온다. 녹색의학이 복원할 필생기다. 녹색의자는 통섭의 사제요 연속의 사도다.


병든 몸을 통제하겠다는 의학은 약한 사람을 착취하겠다는 정치경제학과 동류다. 수천 년 간 지속해온 배제 이데올로기다. 1% 과두가 99% 노예를 수탈하는 디스토피아 체제다. 통제로 얻는 편안함, 만족감, 즐거움은 모두 가짜다. 가짜는 결국 배신이며 허무다.


신뢰며 실재인 편안함, 만족감, 즐거움은 경이에서 온다. 경이는 질병이 가져다주는 지상의 선물이다. 그 선물이 당도했다고 전하는 소식을 우리는 통증이라 부른다. 통증을 무조건 제거하는 백색의학은 그러므로 재앙이다. 재앙의 폐허에서 마지막 응시가 피어난다.


마지막 응시는 통증공동체다. 통증공동체는 질병공동체다. 질병공동체는 경이공동체다. 경이공동체로서 경이 감성을 복원할 때만 인류는 분석과 분리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다. 분석과 분리가 저주로 끝나지 않으려면 ‘아파서 경이로운 몸’을 직면해야 한다. 어떻게?


* ‘재앙 폐허에서 마지막 응시가 피어난다.’는 리베카 솔닛을 변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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