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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평점 :
·······어느 날 밤, 조각나는 듯 느끼는 데서 빠져나갈 출구를 발견했다.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창에 비친 풍경과 마주쳤고, 멈춰 섰다. 진정 환영과도 같았다. 창밖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나무 바로 위쪽의 가로등이 나무 그림자를 서리 낀 창문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곳에, 암흑과 고통밖에 없는 듯했던 한밤중의 창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름다움의 얼굴을 볼 때 우리는 제자리에 있게 된다. 모든 것이 조화로워진다.·······
질병에 얼굴이 있다면 그 가로등 불빛의 아름다움이 질병의 얼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밤에 창문에서 본 것은 질병의 얼굴이 아니었다. 진통제 약효를 뚫고 나온 통증이 악몽을 만들어냈을 때 악몽 속에서 질병의 얼굴을 본 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 밤의 창문은 신화도 상징도 아니었다. 창문은 오로지 창문이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홀린 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통증 속에 있었지만 통증이 나를 그 자리로 데려갔기에 창에 비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조화가 다시 돌아왔다.(58-59쪽)
무엇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과 그 마음이 몸에 미치는 파장은 우리 삶에서 과연 무엇인가?
풍경은 전에도 있었다. 풍경은 전에도 보았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늘 거기서 보았던 풍경이 홀연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순간은 어떨 때인가?
“여전히 통증 속에 있었지만 통증이 나를 그 자리로 데려갔기에 창에 비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의인법을 소거하고 간명하게 말하면, 통증이 전환의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재앙은 특별한 순간, 즉 전환의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다.”(『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278쪽)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출산을 예로 들며 이런 양의 피드백 과정은 정체 국면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산모가 신체 일부를 잘라낼 때와 똑같은 극한의 진통을 겪어내면서 새 생명을 낳는 이치는 아서 프랭크가 진통제도 뚫고 나오는 암의 통증을 겪어내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에 그대로 적용된다.
아름다움의 발견은 무슨 전환을 가져왔나?
“조화가 다시 돌아왔다.”
단절에서 연속이 복원된 것이다. 이것은 실로 지상至上의 전환이다. 지상의 전환이 아름다움의 감각에서 오다니. 아름다움이란 그러니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름다움이란 실체가 있어 전환의 에너지가 전해진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풍경 속의 나무와 가로등, 그리고 창문이 있어 전환의 구조가 세워진 것이 아니다. 통증에 극진히 주의를 기울였을 때 전환의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아름다움은 소식이다. 그 소식을 듣고 아픈 사람은 돌아갈 길을 찾는다. 돌아갈 길 위에 선 사람에게 소식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라는 품은 너르고 다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