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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평점 :
우리는 취약한 생물이고, 인간들은 바로 이 취약함을 공유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희망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취약함을 부정하기보다는 받아 안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취약함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을 때만 또렷하게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또렷하게 분별한다는 것은 어디서, 무엇을, 누구를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 모든 활동의 한가운데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39쪽)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의지를 발휘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고 증명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건강이 필요하다. 반면 아픈 사람은 자신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의지를 전혀 행사하지 않아도 세계가 이미 완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픈 사람은 자유롭다.·······
심장마비를 그저 사고가 한 번 났던 것으로 여겼기에 나는 여전히 건강에 의존했고 건강을 당연한 권리로 여겼다. 건강을 삶의 조건으로 당연시하지 않으면서도 향유하는 방법을 몰랐다. 물론 건강을 선호하기가 쉽다. 그럼에도 건강을 꼭 필요로 하지는 않을 때, 오직 그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40쪽)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우사인 볼트는 타고난 취약함을 받아 안아서 불멸의 스프린터가 되었다. 그에게는 척추측만증이 있다. 코치진은 수술해서 정상(!)적인, 그러니까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들면 훨씬 더 좋아지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좌우 보폭의 차이가 많이 날 경우 24cm가량이나 된다는 사실은 건강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치명적인 단점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건강한 사람은 당연히 24cm 긴 쪽이 정상(!)이라고, 그러니까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환상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은 척추측만증이라는 질병으로 보폭의 차이가 그렇게 난다는 것뿐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보폭의 차이를 달리 해석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24cm나 더 많이 나아가게 됐다고 호들갑을 떨 것까지는 없다.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은 이 현상이 언제든 선물로 바뀔 가능성을 안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언제는 언제인가? “자신의 취약함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을 때”다. 자신의 취약함을 완전히 인식해야 “또렷하게 분별하는 법”을 안다. 또렷한 분별력으로 삶의 “한가운데서 살아 있음을 확인”할 때, “오직 그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자유가 우사인 볼트를 ‘우사인 볼트’로 만들어주었다. 바로 이 자유의 지점에서 질병은 필요가 되고 축하가 된다. 필요하다고 일부러 질병 속으로 걸어 들어갈 일 없다. 축하 받으려고 애써 질병을 짊어질 일 없다. 인간은 본디 “취약한 생물”이고 “취약함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질병은 인연 따라 들어온다. 그 인연을 자유의 기회로 삼을 때, 진정한 향유의 삶으로 번져갈 수 있다.
향유는 소유가 아니다. 소유가 아니면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권리를 주장하지 않을 때, 비로소 “꼭 필요로 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내려놓게 된다. 건강도 깨달음도 자유도 아니 삶 자체도 꼭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는 허령함에서 맑은 향을 낸다. 지금 우리가 구가하는 백색문명은 악취무인지경이다. 남의 것까지 빼앗아서 몽땅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썩어서 그렇다. 이 썩은 냄새를 즐기며 킬킬거리게 하는 퇴폐적 힘은 거대유일신인 돈에서 나온다. 건강도 깨달음도 자유도 아니 삶 자체도 화폐인 세상은 이제 단 하나의 취약함만을 남겨둔다. 돈 없음.
나는 돈이 없다. 돈 없다는 사실을 나는 말갛게 알고 있다. 나는 돈 없음을 말갛게 알 뿐 아니라 돈 없음을 말갛게 산다. 말갛게 살아서 그 삶 전체를 확인한다. 확인할 뿐 의지를 발동시키지 않는다. 내 의지로 돈을 그러모을 만큼 세상이 어수룩하지 않다. 어수룩하지 않은 세상은 내게 선물을 응시하도록 이끈다. 선물은 자신의 취약함을 야젓이 받아 안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거룩한 발자국 소리다. 자박자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