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학이 근원과 연대하는 일은 연대 자체로 하나의 극복운동이다. 연대는 연속을 복원하는 일이다. 연속은 불연속, 그러니까 단절의 악을 관통한다. 단절의 악을 체계로 만든 것이 백색문명이다. 백색문명을 스티브 테일러는 타락the Fall-자아폭발ego explosion이라 묘사한다. 백색문명을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분리의 이데올로기/흐름이라 표현한다. 백색문명을 거대 음모로 각색하고, 그 가짜 음모의 하수인 노릇하며 거들먹거리는 세력의 야심을 염두에 두어, 나는 이를 이간離間문명이라 이름 짓는다.


이간질은 악의적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는 짓이다. 이간문명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 사이를 갈라놓음으로써 상호연계의 네트워킹을 거세한다. 역동적 네트워킹 대신 가짜 초월, 사이비 보편을 옹립한다. 그렇게 옹립되어 마침내 완성된 초 일극집중구조의 유일신이 바로 돈이다. 돈의 지배체제인 백색문명, 그 하부단위인 백색의학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다름 아닌 녹색의학이다. 녹색의학은 돈의 노예로 살기를 거절하는 결단이다. 녹색의학은 삶을 선물(찰스 아이젠스타인)이게 하는 운동이다.


선물을 쌓아 올려 만들어내는 것이 공동체다(찰스 아이젠스타인의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102쪽). 녹색의학은 녹색출산, 녹색장례, 녹색농업과 연대하여 이런 열린 공동체를 향해 간다. 폐쇄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아라한집단을 꿈꾸지 않는다. 아라한집단은 자기들만 깨달았고 자기들만 깨끗하다고 기만하는 병든 게토이기 십상이다. 병든 게토는 공동체를 입자로만 생각한다. 파동으로서 공동체도 있다. 입자와 파동을 가로지르며 중재하는 존재가 의醫다. 의는 무당이자 술이다. 나는 무당이자 술로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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