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빨 기어 다니며 탈 없이 크던 아기가 어느 날 갑자기 열을 펄펄 끓이며 앓는다. 젊은 엄마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할머니가 웃으며 말해준다. “아유, 우리 강아지가 걸으려나보다!” 아기는 앓고 난 뒤 영락없이 걸음마를 시작한다. 온 가족이 함께 아기의 한 걸음 한 걸음에 환호하며 행복감에 싸인다.


아기의 열병과 걷기 사이에 어떤 의학적 인과가 존재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질병 자체를 환호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일은 아무래도 이상하지만 질병을 삶의 큰 맥락에서 해석함으로써 지혜를 얻고 행복을 예감하는 일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질병을 두고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에 따라 인간은 사뭇 다른 결의 삶을 산다. 삶의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질병은 질병을 앓는 사람과 그를 치료하는 사람과 그를 돌보는 사람을 함께 깨달음으로 이끄는 큰 수레大乘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그 큰 수레를 보지 못한 채, 각기 괴로움과 시큰둥함과 마지못함으로 허정허정 걸어가는 것뿐이다.


바야흐로 한 생각 크게 돌이킬 때가 왔다. 질병 인식 패러다임 전체를 뒤집어엎어야 한다. 인류가 당면한 생명의 위기는 창궐하는 질병 때문이 아니라 백색의학의 잘못된 질병 인식, 거기 터하여 치료약이랍시고 뿌려대는 화학합성물질 때문이다. 이제 질병은 백색 독극물로 때려잡을 적이 아니다. 인류 구원의 서사narrative를 실을 큰 수레다. 이 큰 수레를 끌 주체는 백색 요법 포르노와 독극물을 거절한 질병인민이다. 만국의 질병인민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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