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제약회사 - 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
피터 괴체 지음, 윤소하 옮김 / 공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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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약의 유해성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임상의는 심각한 유해반응을 당국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1% 정도만 보고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들은 바쁜데다, 유해반응이 약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무시해버리곤 하는데, 그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유해반응을 보고하는 의사는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을지도 모른다. 제약회사에서 계속 사람을 보내 환자에 대해, 그리고 환자가 복용하는 다른 약 등에 대해 온갖 질문을 하며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약의 위해성에 진짜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피해자를 제외하고는 말이다.(217-218쪽)


  약을 안전하게 처방하는 데 필요한 모든 약 정보를 임상의가 알아낼 수 없으므로, 당연히 의사들은 의학적 오류를 많이 범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규제당국이 약을 하나하나 별개로 볼 뿐, ‘의사들이 자기가 사용하는 약들에 관한 모든 경고를 다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규제당국에 중요한 건 이뿐이다. ‘우리 잘못 아님. 우리는 경고했음.’(233쪽)



의사에게 신약을 설명·소개하는 제약 회사의 신약 정보 담당 영업 사원을 detail man이라 한다. 악마는 detail에 있다는 말과 미묘하게 어울린다. detail을 놓칠 수밖에 없는 임상의의 조건과 이것을 악용하는 제약회사와 규제당국의 detail은 비대칭의 대칭을 이룬다. 제약회사와 규제당국은 악마 짓도 이렇게 야비하게 한다. 의사는 돈에 낚여 자의 반 타의 반 저들의 악마 짓에 부역한다. 그 틈에서 환자가 죽어간다.


이 틈은 환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벽이나 다름없다. 환자에게는 무섭도록 큰 허방이다. 왜냐하면 의사를 신뢰한 결과 빠져드는 죽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죽음의 순간까지 환자들은 의사, 그러니까 제약회사, 그러니까 규제당국이 악마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죽이는 자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채 죽는 일보다 더 참담한 일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병으로 죽는 사람이 겪는 이중고다.


제약회사와 규제당국이 한통속이라는 것의 실상은 단순한 부패동맹을 넘어선다. 자본이 권력을 먹어 권력을 사적 형태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러다가는 기업이 정부를 통째로 사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사회의 경우 삼성이 권력의 일정 부분을 매수한 측면을 두고 ‘삼성 장학금’이라 표현한다. 공동체 전체가 거대 기업의 독점 망에 걸리는 일이 꼭 상상만은 아니다.


종교적 권위를 지닌 의사가 처방하는 약으로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다면 이외로 상상은 간단하게 현실이 된다. 사실상 SSRI나 ADHD 약은 이미 이런 기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른바 양극성장애에 일단 포획되면 한평생 저들의 백색화학합성물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이 광경을 가까이서 목도한 바 있다. 앞으로 속수무책 당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자꾸 떠드는 거다. 부디 경고의 소리가 널리 퍼져가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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