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남성보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만 그것을 참아내는 능력은 남성에 비해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더 많은 부위에서 더 오래, 더 강한 통증을 느낀다.(300-301쪽)


남성이 폭력에 준하는 신체 접촉 행위를 한 뒤, 아프다 소리치는 여성에게 엄살떤다며 놀리는 일은 거의 한평생 이어지는 우리의 경험이거나 목격담이다. 이런 풍경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무감각이 결코 사소할 리 없다. 여성의 산통에 가 닿는 감각이 남성에게 끝내 생기지 않는다는 진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는 통증 일반에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사실 통증은 근원적 문제다. 통증은 인간에게 숙명의 무게를 지닌다. 인간인 한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종교와 정치, 그리고 의료가 비롯한다. 인류가 통증을 이종異種으로 인식한 문명을 건설하면서 모든 종교와 정치, 그리고 의료에는 통증을 적대시하는 전통이 자리 잡는다. 적대시는 전략적 악용을 포함한다. 무통을 미끼로 온갖 수탈이 이루어진다.


백색문명이 무통 마케팅으로 타락의 극한으로 치닫고 있을 때, 인류의 큰 스승들은 통증을 열린 문으로 알아차리는 전복의 진리를 제시했다. 동종同種 인식의 지평에서 통증 문제는 해결 아닌 해소, 축출 아닌 연대의 길을 연다. 통증의 진리 역시 비대칭의 대칭구조로써 전체상을 드러낸다. 통증의 진리는 의자와 환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존재의 문제다.


존재 차원의 문제로 다시 묻는다. 통증에서 왜 여성은 남성과 다른가? 이론과 사색이 아닌 경험의 깨달음 하나만 꺼내 답에 갈음한다. 젖먹이는 일 말고 모든 육아 활동을 전담하면서 1년 여 동안 나는 딸아이 곁을 지켰다. 이 때, 아기 키우는 사람은 아기보다 여름에는 더 덥게, 겨울에는 더 춥게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전 방위 유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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