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피의 두께는 여성과 남성이 동일하지만, 태아 때 표피의 발달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디다. 에스트로겐이 표피 성숙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미숙아로 태어난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보다 더 약하고 생존하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274쪽)


미숙아로 태어나 생애 첫 2개월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양육된 여성 청년과 숙의치유를 진행하고 있다. 이 시기에 어머니와 주고받아야 할 접촉과 교감의 누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심신 전체가 움푹한 상처를 입었다.


그는 좀처럼 이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무엇보다 상처가 구체적인 삶의 결함으로 나타나는 것을 못 견딘다.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근거 없는 높은 기준에 비추어 스스로를 학대한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여기는 사람 원망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주위 사람들한테 끊임없는 온정을 요구한다. 자신의 질병 상태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보다 끝없이 집착하는 유아적 태도에 얽매인 채다. 자신에게 있는 것은 팽개치고 없는 것을 향해 헛된 포옹을 계속한다. 그런 자신을 구질구질하다며 절규한다.


“진짜 구질구질한 사람은 이미 죽었다.”


내가 또박또박 그에게 해준 말이다. 그가 그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은 그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남자 아이로 태어났다면 하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처도 원망도 집착도 살아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어느 중처럼 덮어놓고 감사하라는 얘기 하려는 거 아니다. 어느 철학가처럼 아프게 야단치려는 거 아니다. 진실의 전경을 보게 하려는 거다. 생의 한 쪽 문이 닫혀 있으면 또 다른 한 쪽 문은 열려 있다. 닫힌 문만 붙잡고 한탄하는 치우침에서 부디 놓여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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