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사용 긴장성 손상RSI은 힘줄, 관절, 근육을 긴장시키는 특정 동작을 계속 되풀이하는 경우에 일어난다.·······

  여성은 반복 사용 긴장성 손상에 더욱 취약하다. 대부분의 사무기기가 남성을 대상으로 설계된 것을 부분적 이유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남성보다 많이 종사한다.(264쪽)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 하면 으레 떠올리는 통속한 이미지만으로도 백색문명은 충분히 통속하다. 통속한 눈에는 “대부분의 사무기기가 남성을 대상으로 설계된 것”이란 사실이 들어오지 않는다. 통속한 눈에는 “여성은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남성보다 많이 종사한다.”는 사실이 들어오지 않는다. 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 사실에서 비롯한 RSI를 백색문명이 주목할 리 없다. 주목했다면 사무기기 시장 풍경이 달라졌으리라. 주목했다면 직업의 남녀불평등구조가 달라졌으리라. 이 부질없는 이야기를 부질없이 하는 까닭은 뭔가.


이치를 따지자면 우리 이야기는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백색문명이 자기보전의 근간으로 먼저 남녀불평등구조를 만들었고 그 구조의 유구함이 저 도저한 통속함으로 쌓인 것이니 말이다. 통속함에서 놓여나려면 본진으로 단도직입해야 한다. 백색의사가 그 눈으로 RSI에 주목한대봐야 오십 보 백 보다. 자신이 빠져 있는 문명의 함정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인문의 눈을 떠야 한다. 의사이기 전에 인간인 근원 조건으로 진입해 사유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 발을 앞으로 들어 넘어질 위기 속에 투신부터 해야 한다.


그 다음, 허공에 띄운 발을 더 앞으로 내밀고 몸 전체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위기를 증폭시킨다. 마지막으로, 안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른 발로 힘차게 기존의 땅을 뒤로 밀어 위기를 극대화한다. 그러면 먼저 나간 발이 새로운 땅에 닿으며 새로운 안정을 준비한다. 새로운 안정은 찰나적이다. 바로 다음 순간 다른 무너짐이 시작되니 말이다. 그렇다. 근원에 이르려는 자는 끊임없이 걸어 나아가야 한다. 백색문명은 정지, 그러니까 제자리에서 같은 동작을 영원히 반복하려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 백색문명은 RSI 그 자체다.


백색문명이 RSI를 확대재생산하면서 생긴 이익은 0.1%가 가져가고 손실은 99.9%가 짊어진다. 99.9%는 아래로 갈수록 여성이 많아진다. 그 여성은 다시 겹겹의 RSI를 뒤집어쓴 채 살아간다. 녹색문명은 백색문명의 등을 떠민다. 한 발을 앞으로 들어라 촉구한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기울여라 독려한다. 다른 한 발을 뒤로 힘껏 밀어라 손뼉 친다. 그리고 구호를 외친다. 근원을 향하라. 인간을 향하라. 평등을 향하라. 자유를 향하라. 평화를 향하라. 사랑을 향하라. La marche est spiritualité, elle nous connecte à l’uni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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