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최시형의 가르침에 ‘향아설위向我設位’가 있습니다. 내 밖向壁이 아니라 내 안을 향해 하느님의 길을 닦으라,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겠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포한 일이나, 단하 선사가 불상을 땔감으로 쓴 일처럼 수승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숭배해야 할 우월적·배타적 타자로 외부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의 내부로 스며들어 내가 되고야 만 소미한 바람이며 소리이며 냄새입니다. 이 진리를 놓친 거대종교는 모두 포르노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다시 온 메시아라고 굳게 믿는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다시 온 메시아임을 확인해줄 증인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찾아간 사람은 정신과 양의사였는데 정신질환자로 인식하여 약을 먹으라 하기에 제게로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양의사와 달리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다시 온 메시아라 주장할 수밖에 없는 심리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육중한 자세로 경청한 뒤 보송한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그대가 메시아라는 주장을 저라면 증언해줄 것 같은가요?”


그가 단호하나 간절한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예, 그러실 거라 믿습니다.”


저는 부드러움을 걷어내고 말했습니다.


“다시 올 메시아는 누가 증언하고 말고 할 존재가 아닙니다. 메시아 자신이 삶으로 드러내면, 귀 밝은 영혼들은 침묵 가운데 우레 소리를 듣습니다. 그대가 정녕 메시아라면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떠나 메시아다운 삶을 사십시오.”


순간적으로 그가 각성과 의문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구차한 질문 하나를 덜어주었습니다.


“노동하십시오.”


그에게서 의문의 표정이 지워지는 것을 확인한 뒤, 제가 거래인의 음성으로 야젓함을 갖추어 말했습니다.


“열심히 일해 자신부터 먹여 살리는 시점에서 메시아의 길이 시작됩니다. 제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셔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는 돌아가 노동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나누어 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합니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가 노동의 삶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건 문제 삼을 이유란 없습니다. 자신을 다시 온 메시아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정신질환자로 몬다면 자신을 살아 있는 부처라고 생각하는 허구한 중들은 다 뭐란 말입니까. 그가 자기 자신의 메시아로 살아가는 시간을 저는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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