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척 거구의 80대 중반 노인이 비범한 아우라를 뿜으며 한의원에 나타났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병들어 치료 받으러 왔다고 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본인도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판이었습니다. 제자가 강권해 모시고 온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몇 번 이렇게 모셨더니, 한의원 가까이 이르면 만나지 않고도 먼저 한의사 면면을 예지해 발걸음을 돌리시곤 했다. 여기 오시면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며 웃었습니다.


노인이 인정하는 증상은 단 하나였습니다. 손바닥이 뜨거워서 한겨울에도 차디찬 얼음주머니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타 문진의 모든 사항을 ‘아니오.’로 답했습니다. 저는 배, 혀, 맥박을 통해 간결한 정보를 얻어내고 단출하게 설명했습니다. 노인이 말했습니다.


“본디 병도 없고 약도 없느니!”


의자醫者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저도 노인의 말이 지니는 큰 맥락을 익히 아는 바라, 빙그레 웃어드렸습니다. 한의원을 떠나며 제자가 말해주어 비로소 그가 불자 가운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우大愚거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했습니다. 신체 증상이지만 노인의 특성상 그 마음 상태를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좀 더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대우법사의 영적 권위에 흔들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회심의 일방一方을 날렸습니다. 실패였습니다. 탕약을 전량 폐기했습니다.


저는 다시 고민했습니다. 노인의 마음을 고려한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언어 소통을 누락시킨 마음 고려가 실패 요인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저는 언어 소통을 처방의 기조로 삼기로 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르신, 지난번은 제가 탐심에 들었습니다. 이번은 무심탕無心湯입니다.”


제가 무심탕이라 명명한 탕약 한 제를 노인은 생전 처음으로 모두 복용했습니다. 노인은 탕약 효과에 묵묵부답이었으나 측근의 전언에 따르면 탁효가 났음이 분명했습니다. 탁효의 8할은 마음 작용이었을 것입니다. 마음 작용은 무심탕이란 말 한 마디의 작용이었을 것입니다. 무심탕이란 말 한 마디의 작용이 본디 병도 없고 약도 없다 했던 노인 자신의 말을 전복시킨 결과를 낳았을 것입니다. 노인 자신의 말을 전복시킨 결과가 노인을 침묵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 또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우거사 자신이 언어 이외에 어떤 방편도 인정하지 않는 독특한 수행 철학을 지닌 분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마법이 참으로 존재한다면, 유일한 마법은 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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