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코의 문화철학


인간의 사유는 언어적 표현 안에서 가능하다. 언어적 표현을 통해 사유가 이끌려 나오기도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반 현상은 사유의 결과가 언어적 표현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쓰는 언어적 표현들을 보면 주의하고자 하는 대상에 관한 그 시대의 사유를 알아차릴 수 있다.


코에 대한 언어적 표현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아마도 ‘개 코’일 것이다. 냄새를 아주 잘 맡는다는 뜻으로 쓰는데 이 말이 주는 어감은 애당초 그리 좋지 않다. 나중에는 욕설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만다. 코에 대한 부정 언어학은 비단 이뿐이 아니다. 코 묻은 돈. 코 빠뜨리다. 코 꿰이다. 코가 석 자다. 코 떼어 주머니에 넣는다. 코 아니 흘리고 유복하랴. 콧구멍 같은 집에 밑구멍 같은 나그네 온다.······ 다른 감각기관에 비해서 긍정적인 표현이 현저하게 적은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코에 대한 이런 인식은 아마도 냄새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냄새, 또는 냄새 맡는 기능이나 행위에 대한 평가가 그대로 코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냄새란 말 자체가 이미 좋지 않은 느낌을 간직한 채 사회문화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향기”라는 한자어와 기능이 수직 분화되어 정착된 것을 보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냄새난다.”는 표현도 당연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 “향기롭다.”와 대조하면 대뜸 알 수 있다. “냄새 맡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범죄자들의 직감을 표현하는 비유로 동원한다. 이처럼 냄새는 좋은 수식어, 예컨대 “엄마”가 붙지 않으면 좀처럼 좋은 뜻으로 읽히지 않는다.


이것은 순 우리말에 대한 우리사회 특유의 자학현상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냄새 자체에 대한 사회문화적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말을 보면 들어보다, 맛보다, 만져보다, 맡아보다, 와 같이 모든 다른 감각 위에 시각이 있다. 시각만은 못하지만 청각 역시 매우 중요한 감각으로 인식해온 것이 우리의 사회문화적 전통이다. 경청傾聽/敬聽이란 표현도 그렇고, “귀가 보배다.”라는 속담도 그렇다.


물론 우리보다 서구사회가, 근대 이전보다 이후가 훨씬 더 치우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성독재”의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이후 이성은 감성(감성은 감정을 퍼텐셜의 측면에서 이해한 것으로 여기서는 감정과 동의어로 씀)을 계몽 대상으로 발아래 둔다. 감성은 동물적, 원시적, 여성적 본능의 영역으로 비하된다. 여기서 이성에 속하는 것은 시각, 청각, 촉각이다. 감성에 속하는 것은, 당연히 후각과 미각이다. 그런데 미각의 80% 이상이 후각이므로, 결국 이성독재의 시공간에서 희생양이 된 것은, 실질적으로 오직 후각, 그러니까 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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