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샀다. 책 내용이 좋아 덥석 사느라 그랬는지, 앞 면지가 심하게 접히고 구겨진 채로 날개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 생각 않고 반품하면 그만이지만, 비록 일부 하자는 있더라도 정성들여 만든 600쪽 가량의 책이 폐품 처리 되어버린다면, 이만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싶어, 출판사에 전화를 했다. 책도 살리고 면지를 깔끔하게 손보는 길이 있는지 문의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죄송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현재 상태에서 내 힘으로 손보아 소장하기로 마음먹고 통화를 끝냈다.



우선 접히고 구겨진 부위를 손으로 펴는 일부터 시작했다. 손가락 머리와 손톱을 써서 가급적 반듯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자와 칼로 삐져나온 부위를 잘라냈다. 거친 부분들은 소형 가위로 다듬었다. 접히면서 잘려나가 모자란 부위는 어쩔 수 없으므로 그대로 두었다. 그 결과, 일부러 들추지 않는 한 하자를 알 수 없는 겉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작업을 하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묻는다. 반품하지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 나는 되물었다. 이 책 한 권을 만드는데 목숨을 바친 나무가 몇 그루 쯤 될 것 같으냐? 애쓴 사람이 몇 명 쯤 될 것 같으냐? 간호사가 고개 끄덕이다 나가며 이의 한 자락을 남겨둔다. 그렇긴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내 이런 자세를 보통은 ‘사물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해둔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대부분 비웃을 테니 말이다. 더 나아간 내 속말은 ‘신을 경외하는 것’이다. 신을 경외함으로 삼가 옷을 꿰매던 손이 오늘은 책을 고쳐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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