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 인간이면 누구나 행복 추구를 천부인권으로 여긴다. 대한민국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것은 말할 나위조차 없고, 철학과 종교의 난사람들 입에서 매순간 쏟아져 나오는 말이 행복 추구다. 진실은 다르다. 행복 추구는 역사적·정치적 개념이다.


행복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다. 행복은 행복감으로 실재한다. 행복감은 개별적인 것이다. 설혹 함께 향유한다손 치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바는 다르다. 개별적 존재로서 인간을 자각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자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연착륙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어떤 계기에 폭발적으로 자각이 일어나 경착륙되었다. 경착륙은 전쟁·차별·학대·착취·파괴를 결과하면서 도리어 행복 추구를 억압하는 정치체제로 공고히 되었다. 이 억압의 정치에 저항하여 일어난 혁명운동이 비로소 평등한 개인의 행복 추구를 천명하였다.


18세기부터 일어난 민주주의 혁명이 거의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마침내 20세기 말에는 민주주의 진면모가 미증유의 모습을 드러냈다. 드러나는 찰나 그 민주주의는 즉각 퇴행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시 민주주의가 거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와 정략적으로 결합하면서 야기한 행복의 파편화 때문이다. 행복의 역설이다.


행복은 개별적이다. 끝내 개별적이어서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이 이율배반의 진리가 고통스럽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이제 어찌 할 것인가. 개별자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행복은 없는 걸까. 있다. 숭고다. 숭고는 개별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적 참여다. 공적 참여가 장엄을 향해 탱탱 느슨한 연대의 고리를 이룰 때, 숭고와 진정한 행복은 하나가 된다. 바야흐로 숭고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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