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만만치 않지만, 2016년 여름 더위는 대단했다. 한의원 냉방기기가 맥을 못 추었다. 환우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 여름이 다 갈 무렵,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6년째 세 들어 있는 한의원 건물이, 여름에는 창문을 통해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고, 겨울에는 그 반대여서 ‘신의 한 수’라 여기며 좋아했다. 작년 여름, 비로소 알아차린 사실인데, 창문으로 직사광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구 자전축이 변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일상에서 이리도 선명하게 감지될 수 있을까, 갸웃 의심 했으나, 설마하고 지나갔다.


사실은 사실이었다. 북극점이 최근 10여 년 동안 1m가량 동쪽으로 이동했다. 북극점 이동은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지구 전체의 무게 배치가 바뀌어 일어났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내게는 어떤 묵시록적 ‘베임’의 감각이 일어났다. 날카로운 통증이 하나의 옹골찬 각성을 일으켰다. 물론 이전부터 기후변화를 포함한 생태학적 문제에 등한하지는 않았지만, 와락! ‘녹색’의 화두를 정색하고 들어야겠다는 절박함이 살을 찢고 들이닥쳤다는 말이다.


나는 의자醫者다. 의자로서 이 시대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일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작업을 하려 한다. 내 눈에 이 시대는 이환罹患morbidity 포르노 시대다. 병듦의 선정煽情 독재라는 말이다. 병듦의 선정 독재가 자본주의를 일으켜 극한 파편으로 밀어간다. 자본주의는 다시 병듦의 선정 독재를 극한 파편으로 밀어간다.


여기서 의학은 무엇인가. 이치에 입각해 말한다면 의학은 이환의 제국에 맞서 혁명하는 논리와 실천이어야 맞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이 그 누구랴. 의학, 특히 주류서구의학은 도리어 이환의 제국이 부리는 마름으로서 수탈체제의 거대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이를 백색의학이라 부른다.


백색의학의 백색은 크게 세 가지 함의를 지닌다. 하나, 권력집단이 혁명 운동에 가하는 탄압으로서 백색공포의 백색이다. 둘, 자본주의의 백색이다. 셋, 화학합성약물의 백색이다.


백색의학에 맞서 이환 포르노 시대를 혁명할 논리와 실천의 창조로 나는 녹색의학을 제시한다. 그 동안 온갖 잡다한 마케팅에서 이 말을 써온 것이 사실이다. 익히 알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을 다시 정의하여 혁명의 언어로 거듭나게 하려 한다.


녹색의학의 녹색은 크게 세 가지 함의를 지닌다. 하나, 권력집단이 혁명 운동에 가하는 탄압인 백색공포에 맞서는 자유의 저항 녹색이다. 둘, 자본주의에 맞서는 평등 공존의 녹색이다. 셋, 치료를 가장한 화학합성약물의 공격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 치유의 길을 열고자 하는 녹색이다.


대략 이런 방향과 내용을 담고, 흐르는 대로 생각을 펼쳐보려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digression’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이런저런 지면, 하다못해 술자리에서 했던 말들도 나와 돌아다닐 것이다. 그때 했던 말과 어긋나는 말도 할 것이다. 함께 어우러져 이 묵시록적 상황에서 내가 흔쾌히 결곡히 쉴 숨 길, 할 말 길, 갈 짓 길을 열었으면 좋겠다. 이환 포르노의 시대에 녹색의학 이야기가 혁명의 격檄으로 헌정되면 그 아니 영광이랴. 할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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